45 동독문학

서로박: 하인의 '낯선 연인' (5)

필자 (匹子) 2022. 5. 20. 21:36

18. 주변 인물들과 가부장적 남성 중심사회 (1): 클라우디아가 분열된 이중적 자아를 지닌 채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까닭은 그미가 구동독이라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고 애틋한 사랑의 삶에 관한 어떠한 구체적 사항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구동독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내세우면서 평등한 삶을 추구해 왔지만, 사회 심리적 측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삶을 추구하려는 남녀들을 전혀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방해해 왔습니다.

 

오로지 여성에게만 금욕과 순결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자기기만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가해 왔습니다. 다른 한편 레닌과 같은 권력을 지닌 남자들은 모든 창녀들을 달콤한 마돈나라고 아름답게 포장하곤 하였습니다. 이에 관해서 클라라 체트킨이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Zetkin: 19).

 

일단 『낯선 연인』을 중심으로 네 명의 주변인물을 예로 들겠습니다. 첫째로 클라우디아의 친구이며 동료인 안네는 네 명의 자녀를 둔 여성으로서 14세 나이 많은 남편과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삶에서 고통스러운 것은 남편의 성폭력에 시달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미는 남편이 빨리 늙어서 성 능력이 떨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야 자신이 원치 않는 동침으로부터 벗어날 것 같았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클라우디아의 여동생 이레네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미는 로슈토크에서 여교사로 일하는데, 기술자, 한네스와 결혼하여 5세가 된 딸을 두고 있습니다. 남편이 실직한 다음부터 그미는 공공연하게 고개를 수그리는 남편을 사회적으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헐뜯곤 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이레네는 자신의 형부인 힌너와 사랑에 빠져 부도덕한 짓을 저지릅니다. 그미가 형부를 좋아하게 된 까닭은 어쩌면 허영심의 발로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힌너는 사회주의 통일당에 가입하여 수석 의사로 발령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레네의 성적 욕망을 채워줄 뿐 아니라, 성취에 대한 대리 만족의 욕구를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19. 주변 인물들과 가부장적 남성 중심사회 (2): 셋째로 우리는 크라머 부부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샤를로테 크라머는 클라우디아의 대학 동창으로서 베를린 대학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남편 미하엘은 제약회사 실험실의 책임자인데,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아내를 성적으로 만족시켜주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샤를로테가 남편과 이혼하려고 작심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세 아들의 교육을 물심양면으로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미는 남편 몰래 젊은 애인을 사귀며 시간이 허용하는 대로 바람을 피웁니다.

 

넷째로 우리는 클라우디아의 조수인 간호사, 카를라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미는 미혼인데, 병원 대표 주치의사와 결혼하려고 온갖 사랑의 모험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미의 유혹이 하룻밤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자, 카를라는 피임에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실제로 구동독에서는 80년대부터 피임 알약을 상용화하도록 조처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카를라는 알약 복용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먹는 알약은 여성의 몸매를 뚱뚱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클라우디아는 그미가 자궁 내 피임 도구를 설치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상기한 모든 사례는 클라우디아와 헨리 사이의 애정 관계를 뒷받침하는 자료들로서, 국가와 사회적 강령이 개개인의 사랑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는가? 하는 사항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0. 작품의 가치: 크리스토프 하인의 『낯선 연인』은 한 인간의 내밀한 사랑의 삶을 천착함으로써 구동독의 사회적 문제를 꿰뚫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작품은 귄터 드 브륀 Günter de Bruyn의 『부리당의 당나귀』와 매우 유사한 특성을 드러냅니다. 드 브륀의 작품의 경우 사랑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기회주의적 보수성 내지 무사인일주의를 지적하고 있다면, 하인의 『낯선 연인』은 무엇보다도 구동독에 온존하고 있는 금욕적 가부장주의 그리고 이로 인한 횡포 등을 지적하려고 하였습니다.

 

작품은 일견 감정 소통이 차단되고 사랑의 삶을 구가할 수 없는 냉정하고 차가운 여성을 조명하고 있지만, 이는 피상적 사항에 불과합니다. 작가는 이른바 남녀평등을 실현했다고 공언하는 구동독이라는 사회주의 사회가 얼마나 남성적 가부장주의로 무장해 있는가를 극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자를 때리게 몰아가는 것은 수세기 동안 이어진 채 거의 관습화된 낭성적 우월감이다.” (Hein: 160). 요약하건대 낯선 연인은 비록 제도상으로는 경제적 평등 그리고 성적 평등에 도달했다고 공언하는 구동독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남성 위주의 가부장주의의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 주경식: 크리스토프 하인의 『낯선 연인』에서 소통 불능의 문제, 실린 곳: 독일어문학, 제 34집 2006, 249 – 270.

- 하인, 크리스토프: 낯선 연인, 전영애 역, 현대소설사 2001.

- Hein, Christoph: Der fremde Freund, Berlin u. Weimar 1982.

- ders,: Drachenblut, Darmstadt u. Neuwied 1983.

- Grunenberg, Antonia: Antonia Grunenberg: Geschichte als Entfremdung. Christoph Hein als Autor der DDR, in: Klaus Hammer (Hrsg.): Chronist ohne Botschaft. Christoph Hein. Ein Arbeitsbuch. Materialien, Auskünfte, Bibliographie, Berlin und Weimar 1992.

- Lindner, Gabriele: Der fremde Freund von Christoph Hein, in: WB., 29/ 1983, H. 9. S. 1641 – 1646.

- Zetkin, Clara, Erinnerungen an Lenin, Berlin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