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하인의 '낯선 연인' (2)

필자 (匹子) 2022. 5. 17. 20:11

5. 용의 피의 의미: 클라우디아의 살갗은 어떠한 무엇도 통과시키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무장되어 있습니다. 그미는 자신의 살갗을 하나의 견고한 성 (城)이라고 간주합니다. (Hein: 209). 여기서 우리는 “용의 피”라는 제목에 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 신화에 의하면 영웅 지크프리트는 용을 죽이고, 용이 흘린 피에 자신의 몸을 적십니다. 왜냐하면 일설에 의하면 자신의 몸을 용의 피로 씻으면, 어떠한 외부의 공격에도 상처입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크프리트가 용의 피에 몸을 담그기 전에 잔등에 보리수 잎사귀 하나가 달라붙습니다. 이로 인하여 지크프리트의 잔등에는 우연히 용의 피가 묻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아킬레스의 약점이 그의 종아리 아래의 아킬레스 근이었다면, 영웅 지크프리트의 몸에 있는 유일한 약점은 잔등이었습니다. 나중에 적군의 장수, 하겐은 지크프리트의 잔등에 창을 꽂아서 그를 살해합니다. 하인의 작품 『낯선 연인』에서 용의 피는 다름 아니라 주인공 클라우디아의 외부 세계에 대한 감정의 차단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클라우디아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그리고 주위 환경, 사회 그리고 국가로부터 자신의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차단시키고 이를 은폐하는 태도만을 배워왔습니다. 외부 세계에 대한 그미의 이러한 정서적 차단은 어쩌면 현대 문명에 대한 대가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명은 인간 소외를 부추기고, 현대인의 삶을 고립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문명의 발전은 현대인으로 하여금 영혼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했으며, 개개인 사이의 내밀한 소통마저 차단시키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Grunenberg: 78).

 

6. 헨리의 죽음과 클라우디아의 냉담함: 소설은 헨리 좀머의 장례식으로 시작됩니다. 모든 사건은 클라우디아의 기억을 통해서 회상 형식으로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헨리는 약 7개월 전에 그미가 사귄 남자친구입니다. 그의 직업은 원자력 발전소의 건축을 담당하는 일인데, 자신의 직업에 대해 그렇게 신명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헨리는 클라우디아와 마찬가지로 동베를린의 높은 빌딩의 원룸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와 두 자녀는 드레스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들 부부는 직업 상 2년 전부터 별거에 들어갔습니다. 헨리는 자신의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내에게는 또 다른 애인이 있으며, 헨리 역시 이를 개의치 않게 여깁니다. 다만 자식의 교육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만날 뿐입니다. 헨리는 “부드러운 아나키스트”라고 명명될 수 있습니다. 그는 삶 자체에 몹시 지루함을 느끼며, 여행과 자동차 운전을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40킬로 이상을 달리면, 스스로 살아있다는 쾌감을 느끼는 사내가 바로 헨리입니다. 헨리는 구동독의 모든 규격화된, 폐쇄적인 삶의 방식을 수미일관 저주합니다.

 

7.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사람: 헨리는 어떤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 합니다. 그의 이러한 성격은 조용히 균형을 유지하며 생활하는 클라우디아와는 전적으로 대비됩니다. 클라우디아의 입장에서 고찰하자면 헨리는 그미에게는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연인입니다. 언제나 기이한 모자를 쓰고 다니는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아웃사이더를 연상하게 하니까요. 그런데 두 사람 사이의 이러한 거리감 내지 성격상의 차이는 역설적으로 (적어도 헨리에게는) 이른바 가벼운 애정 관계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헨리는 우연히 클라우디아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미에게 식사하자고 제안합니다. 이때 두 사람은 술에 취해서 서로 살을 섞게 되는데, 클라우디아는 무척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사이에 아직 애정이 싹트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는 “상호 책임지거나 부담감을 주지말자.”라는 언약이 있었습니다. (68쪽) 동침이 끝난 다음에 헨리는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즉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사랑을 나누기에는 적절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클라우디아 역시 행여나 다시 사랑에 빠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미는 헨리의 이러한 기이한 제안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됩니다.

 

8. 남성중심주의의 사고를 지닌 헨리: 나중에 클라우디아는 헨리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함께 시골로 여행했을 때 경미한 자동차 사고로 인하여 사실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이때 클라우디아는 또 다시 한 남자에게 심리적으로 상처입고 기만당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때 그미는 어처구니없이 헨리를 비아냥거리고 조소를 터뜨리는데, 이는 그 자체 하나의 히스테리의 반응이었습니다. 일순간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헨리는 클라우디아를 끌고 가서 성폭력을 저지릅니다.

 

여기서도 드러나듯이 헨리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남성 우월주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어린 시절부터 구동독 사회에서 습득한 것입니다. 헨리는 자동차를 다시금 과속 운전하여 하마터면 다시 교통사고를 일으킬 뻔합니다. 이때 클라우디아는 능동적으로 운전석에 앉았는데, 헨리는 손바닥으로 그미의 얼굴을 가볍게 때립니다. 이는 과히 상징적입니다. 클라우디아와 헨리는 젊었을 때 언제나 사랑의 매 그리고 선생의 폭력에 익숙해 있습니다. 이는 구동독이 당근이 아니라, 채찍을 교육방침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