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제거스의 '결투' 뮐러의 '볼로콜람스커 국도 III' (2)

필자 (匹子) 2022. 5. 21. 09:12

(앞에서 계속됩니다.)

 

5. 안나 제거스의 창작 의도, 숨어 있는 영웅 발굴하기: 안나 제거스는 이 단편을 통해 두 가지 사항을 분명히 밝히려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빈프리트와 같이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던 자들이 과거에 저지른 죄과를 분명히 밝히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밝혀지지 않은 영웅을 찾아내는 일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작가는 뵈트허와 같은 나치에 저항하고, 약자를 돕던 자들의 희생정신 내지는 숨은 영웅적 행위를 찬양하려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뵈트허 교수는 나치로부터 핍박당하면서도 자신의 지조를 꺾지 않은 우직하고 올바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 헬비히가 생각하는 뵈트허 교수는 사회주의의 재건의 시대에도 일신의 편안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올바르고 정의로운 학교를 위한 개혁 운동에 헌신적으로 참여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뵈트허와 같은 교수는 제거스에 의하면 비록 힘없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동독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숨어 있는 영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6. 뮐러의 작품의 배경이 되는 두 가지 현실적 상황: 그런데 뮐러의 작품 속에는 제거스 소설의 상황이 약간 변화되어 있습니다. 사건은 두 개의 시점으로 나누어집니다. 그 하나는 1934년 드레스덴에서의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1953년 6월 17일 동베를린 노동자 데모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후자부터 먼저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 ‘나’는 현재, 그러니까 1953년 6월 17일 동독 정부의 어느 분과 위원장으로 근무하는, 신념에 가득 찬 공산주의자입니다.

 

‘나’는 동베를린 서서히 번져나가는 데모 소식을 대리인으로부터 접하게 됩니다. ‘나’는 노동자 데모를 파시스트들의 폭력 행위로 규정하고, 소련군의 탱크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대리인과의 갈등입니다. 대리인은 분과 위원회에 속한 부하 직원인데, ‘나’의 위원장 자리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말하자면 그는 노동자들의 데모를 배후에서 조종하며, 자신의 상사인 ‘나’가 항복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비상사태의 본질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대리인과 자신 사이의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국한시켜 바라볼 뿐입니다.

 

7. 드레스덴 대학의 강사로 일했던 주인공과 그의 제자인 대리인 사이의 대립: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 ‘나’의 관점에 의해 묘사되고 있습니다. 대리인은 주인공의 제자입니다. 실제로 과거, 1934년에 주인공은 드레스덴 대학에서 자연 과학을 가르치던 강사였는데, 노동자 출신의 학생이었던 대리인을 직접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도움으로 인해 대리인은 수학 기말 시험에 간신히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대리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 차례나 주인공을 배반하였습니다.

 

첫째로 대리인은 1934년에 나치에 동조하며, 주인공을 당국에 밀고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주인공은 오랫동안 감옥 생활을 보내야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 주인공은 그의 잘못을 불문에 붙이면서, 그가 일자리를 얻도록 다시 도와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은 대리인이 저지른 과오를 고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직장을 얻도록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리인은 주인공의 은혜를 망각하고, 현재 주인공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주인공의 높은 직책을 차지하려고, 배후에서 몰래 노동자 데모를 조종하고 있습니다.

 

8. 문제는 현실적 감각을 상실한 주인공의 시각이다.: 하이너 뮐러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과 대리인 사이의 갈등 구조입니다. 이 갈등 구조는 현재 현실과 과거 현실 사이에서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의 주관적 입장에서 묘사되며, 대리인의 입장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인공이 무조건 선하고 대리인이 무조건 악하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작품은 이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지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삶은 수많은 색깔의 팔레트로 이루어져 있어서, 우리는 특정 인간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때로는 옳겠지만 피상적일 수 있다는 것을 추론해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비상사태를 대하는 주인공의 축소화된 시각 자체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얽혀, 모든 사안을 대리인과의 힘겨루기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구동독의 국가의 전체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뿐 아니라, 대세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합니다.

 

9. 편집적 사고는 대세를 그르친다.: 자고로 한 가지 특정한 사고에 골몰하는 사람이 폭넓고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이를테면 사마귀 한 마리를 노려보는 까지를 바라보는 장자를 생각해 보세요. 게다가 주인공에게는 현실 감각이 없습니다. 하이너 뮐러는 『오류 선집 Gesammelte Irrtümer』에서 구동독의 개혁 가능성의 세 가지 시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첫째는 1953년 동베를린 노동자 데모의 시기이고, 둘째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의 시기이며, 셋째는 고르바초프가 권좌에 오른 80년대 중엽의 시기라고 합니다.

 

동독은 세 가지 찬스를 모조리 상실했다고 합니다. 작품 「볼로코람스커 국도 III」역시 이러한 맥락 하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뮐러의 견해에 의하면 만약 정부가 당시에 사태를 정확히 간파하고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적극적 자세를 취했더라면, 현재 (1985년) 동독 상황은 그렇게 나빠지지 않았으리라고 합니다. 어쩌면 뮐러는 특정한 한 가지 사고에 골몰하다가 대세를 그르친 자신을 경멸하기 위해서 이 글을 집필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