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망각될 수 없는 명작, 볼로콜람스커 국도 III: 친애하는 J, 오늘은 하이너 뮐러의 「볼로코람스커 국도 III」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85년 그리고 86년 사이에 발표된 것으로서, 도합 다섯 단락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다루려는 뮐러의 세 번째 작품에는 “결투 das Duell”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다섯 작품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뮐러가 처한 현실적 정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소설가 안나 제거스 (1900 - 1983)의 단편 「결투 Das Duell」를 원전으로 하여 집필된 것입니다. 작품의 핵심사항을 파악하려면, 우리는 우선 그미의 단편집, 『약한 자들의 지략 List der Schwachen』에 실려 있는 결투의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략이란 살아남기 위한 술수 뿐 아니라,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정의로운 행위와 관련되는 말입니다.
2. 주인공 헬비히가 기억하는 뵈트허 교수: 제거스의 단편은 3인칭 소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인공 헬비히는 현재 60년대 구동독에서 높은 관직에서 일하는 남자입니다. 그는 이제 작고한 은사인 뵈트허 교수를 회고하면서, 전후 시대에 보내던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 봅니다. 당시 헬비히는 드레스덴 기술 대학에 다니던 대학생이었습니다. 물론 성실한 편이었으나, 무척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기초를 튼튼하게 닦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헬비히는 번번이 학점 취득에 실패했습니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수학의 기초가 탄탄하지 않아서 기말 시험에 합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수학은 치밀함과 정교함 그리고 논리적 사고를 요하는 학문입니다. 그렇기에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과목입니다. 이때 그는 카를 뵈트허 교수라는 훌륭한 은사를 만나, 개별적으로 수학의 가르침을 받은 다음에, 나중에 좋은 성적을 취득합니다.
3. 기회주의적인 학장 빈켈프리트: 그렇다면 어째서 뵈트허는 헬비히 등의 몇몇 낙방한 학생을 불러 모아 있는 힘을 다해 가르쳤을까요? 물론 여기에는 학생에 대한 애정 및 교육열이 도사리고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열등생을 가르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숨어 있었습니다. 드레스덴 기술 대학에서는 교수 사이에 여러 가지 갈등 내지 헤게모니 다툼이 있었습니다. 뵈트허 교수는 진보적 세력으로서 학내의 여러 가지 개혁을 지지했는데, 이로 인하여 학장인 빈켈프리트와 갈등 관계에 처해 있었습니다.
빈켈프리트 학장은 과거의 히틀러 시대에 나치에 동조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기회주의적인 정치교수, 즉 “폴리페서 Polifessor”로서, 급기야는 학장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동독에 전후 시대에 나치 청산에 관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독은 뉘른베르크 재판 등으로 사람들의 범행을 비교적 철저하게 구명한 데 비하면, 구동독에서는 나치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발터 울브리히트는 소련의 경제적 지원이 없는 가운데,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려면, 전문가를 대폭 발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과거에 어떠한 일을 했는가? 하는 사항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문가들을 대거 발탁하여 산업 전역에 배치하였습니다.
4. 정치범으로 수감되었던 뵈트허 교수: 그런데 뵈트허 교수는 학장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인물입니다. 그는 나치 시대에 정치적 문제로 나치에 의해 고발당하여,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감옥에서 정치법으로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교수와 학장은 나치 시대 뿐 아니라, 사회주의의 재건이 시작된 이후에도 공교롭게도 서로 다른 의견으로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빈켈프리트 학장은 눈 위의 가시와 같은 뵈트허 교수에게 한 가지 조건을 부여합니다. 즉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성적이 기대 이하로 나올 경우 교육 개혁을 위한 뵈트허의 제안을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 조건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뵈트허 교수는 그 조건을 수락합니다. 그리하여 선택된 학생이 바로 헬비히였습니다. 요약하건대 열등생을 가르쳐서 기말 시험에 합격시키게 하는 일은 뵈트허 교수에게는 학장과의 보이지 않는 결투와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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