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하인의 '낯선 연인' (4)

필자 (匹子) 2022. 5. 19. 21:48

15. 분열된 이중 자아의 원인 (2)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구동독의 이데올로기: 둘째로 클라우디아가 성격 갑옷을 착용하면서 분열된 이중 구조의 성격을 드러내는 까닭은 구동독의 가부장적 금욕주의 뿐 아니라, 여성 학대라는 사회적 경향 때문입니다. 1953년 6월 17일 구동독에서 동베를린 노동자 데모가 끝났을 때 지배 계층은 다음과 같은 강령을 모든 학교에 하달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사랑과 성은 하나의 타부, 즉 금기 사항이라고 말입니다.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은 이 세상에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여성의 성을 차지하고 학대하는 가부장들의 성폭력밖에 없다는 말을 뜻합니다. 가부장적 성폭력은 오랫동안 구동독에서 지배의 수단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이로 인하여 클라우디아는 동년배의 특정 남학생에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는커녕, 어떠한 관심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남자들은 그미에게는 여성을 유린하는 낯선 수컷 맹금들일 뿐입니다.

 

16. 삼촌 게어하르트에 대한 사랑: 물론 클라우디아가 이전에 누군가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령 삼촌 게어하르트에 대한 순진무구한 사랑의 감정이 그것이었습니다. 삼촌은 세심하고, 주인공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미는 반정부의 견해를 지닌 자를 밀고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따라 정부를 비판하는 삼촌을 시당국에 고발하고 맙니다. 이로 인하여 클라우디아는 삼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어린 시절에 이미 접어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당국의 강령을 따르다가, 사랑하는 삼촌을 위험에 빠뜨렸던 것입니다. 개인의 사랑과 사적 감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추상적 강령이 가장 우선시된다는 것을 클라우디아는 실천하고 만 것입니다. 이로써 그미의 심리 속에 남아 있던 인간에 대한 일말의 애호의 감정은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클라우디아는 침묵을 지키는 게 낫다는 것을 은연중에 배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감정을 발설하면, 이는 주위 사람들을 몹시 힘들게 한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156쪽).

 

문제는 그미의 침묵이 차제에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의 성격상의 특징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다름 아니라 여성성의 상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남자와 자연스럽게 포옹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17. 다시금 여성에 대한 사회의 성폭력: 클라우디아는 지금까지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크고 작은 성희롱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령 클라우디아의 반에는 마치 여배우처럼 예쁘고 몸매가 날씬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미의 이름은 루시 브렘이었습니다. 학교 당국은 체육 시간에 학생들로 하여금 체조를 배우게 했는데. 체육교사는 자세를 교정한다는 이유로 루시의 엉덩이를 만지곤 하였습니다. 물론 몇몇 학생들은 교사의 잘못된 행위에 관해서 입방아를 찧었습니다. 이를 접한 체육교사는 오히려 더 큰소리로 호통을 치면서 학생들을 질타하였습니다. (135쪽).

 

놀라운 것은 클라우디아가 어른이 되었는데도 남자들의 성희롱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삼촌 파울은 오래간만에 만났다는 이유로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어른이 된 조카딸의 젖가슴을 그냥 만졌습니다. (110쪽) 클라우디아는 심히 불쾌했지만, 삼촌의 자연스러운 애정표현이라고 이를 애써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구동독에서의 여성에 대한 희롱 내지 학대는 공공연하게 퍼져 있습니다.

 

72세의 환자 도이에씨는 클라우디아를 찾아와서 자신의 성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이때 그는 여의사로 하여금 립스틱을 가져오게 하여, 그미가 보는 앞에서 검붉은 페니스를 종이에 그리면서 희희낙락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13쪽) 이는 자신의 질병과는 무관한 것인데도 도이에씨는 성욕을 자극하는 그림을 그려서 여의사에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요약하건대 작품은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언제나 성적으로 농락당하는 객체로 취급되는, 이른바 성도착 현상을 여러 차례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