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하인의 '낯선 연인' (1)

필자 (匹子) 2022. 5. 16. 11:13

 

1. 기이하고도 놀라운 명작: 친애하는 H, 문학 작품은 일견 뜬금없는 공상적 이야기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주어진 사회의 깊은 문제를 은근히 보여주는 수단입니다. 만약 특정한 작품이 주어진 사회의 핵심적 난제를 교묘하게 꿰뚫고 있다면, 그 작품은 명작의 반열에 오를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오늘은 크리스토프 하인의 중편소설 「낯선 연인 Der fremde Freund」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982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하인의 두 번째 산문으로서, 동독에서 발표된 이후에 서독에서 “용의 피 Drachenblut”라는 제목으로 루흐터한트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습니다.

 

크리스토프 하인은 1944년생의 구동독 출신의 작가로서 대학에서 철학과 논리학을 공부한 뒤에 80년대 초까지 주로 극작품을 집필해 왔습니다. 이로써 하인은 하이너 뮐러 Heiner Müller, 폴커 브라운 Volker Braun과 함께 동독을 대표하는 3대 극작가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 하인은 극작품의 공연 문제로 불편함을 느껴서, 8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산문 작품들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극작품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갈등 구조를 명시적으로 부각시키고 이를 등장인물에 의해서 대립시키는 반면에, 사회의 문제점을 은근히 감추는 데에는 부적격하기 때문입니다.

 

2. 소설의 프롤로그: 소설의 프롤로그는 놀라운 꿈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꿈속에 어느 여인은 두 개의 발코니 사이에 서성거리면서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려고 합니다. 저쪽 편에는 그미가 사랑하는 듯 보이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미가 건너오는 것을 도와주려 합니다. 발코니 아래에는 칠흑 같은 심연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붙잡았으나, 이러한 장면은 두 사람 모두에게 위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왜냐하면 발코니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상대방의 손을 당기다가 두 사람 모두 무시무시한 심연 아래로 떨어져 죽을 것 같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팔을 자신의 손으로 꼭 잡고 있는데, 그의 손톱이 서서히 여인의 팔의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 서서히 핏방울을 뚝뚝 떨어지게 합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여인은 차라리 그의 손을 놓아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제각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장면은 구동독의 주어진 체제 하에서 사랑하는 남녀가 결코 자신의 완전한 사랑의 행복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3. 여주인공 클라우디아: 작가는 여주인공을 의도적으로 39세의 이혼녀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어떠한 흔적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인은 “연대기 서술자”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클라우디아는 동베를린의 어느 종합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사입니다.

 

그미는 첫 번째 결혼에서 실패한 뒤에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미가 첫 번째 결혼에서 실패한 까닭은 처음부터 자식 낳기를 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미에게는 남편과의 성행위 자체가 미래의 삶을 결정짓게 하는 계기였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동독에서는 1972년부터 낙태가 합법화되어 있었습니다. 클라우디아는 과거에 두 번의 낙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한 기억은 참으로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출산의 거부는 남편과 자신의 동침을 방해하여 두 사람의 성적 만족을 충족시키지 못했는데, 이는 결국 이혼으로 이어집니다.

 

클라우디아는 이혼한 다음에 최소한 직업적 삶에 있어서는 성공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미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자신과 주위 환경으로부터 어떠한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클라우디아는 모든 감정 내지 정서적 요구사항으로부터 등을 돌립니다. 이러한 무감각한 태도는 의사로서 일할 때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환자들에게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해주지만, 어떠한 사람과도 인간적 따뜻함을 나누지 않습니다.

 

4. 용의 피, 혹은 캄정을 차단시키는 껍질: 놀라운 것은 클라우디아가 행여나 어떤 예기치 않은 경험으로 자신의 삶이 변화될까봐 전전긍긍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미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마디로 클라우디아는 자기중심적인 깍두기입니다. 그미는 동베를린의 높은 빌딩의 원룸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미는 이웃이 누구인지 전혀 관심이 없고, 부모와의 만남 역시 끊은 지 오래됩니다. 모든 행동은 내가 원하는가, 내가 원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클라우디아는 친구와의 만남 역시 꺼려합니다. 그미가 신경을 쓰는 것은 자신이 맡은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은 주어진 그대로 머물러야 합니다. 따라서 그미는 철저하게 감정의 소통을 거부하고 “성격 갑옷 Charakterpanzer”을 쓴 채 살아갑니다. 타인에게 상처입지 않기 위해서 기만당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Lindner: 1645) 그렇기에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삶이 한꺼번에 급작스럽게 변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가령 그미는 자신의 남자친구 헨리 좀머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다지 슬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헨리의 죽음은 처음부터 자신과 무관하다는 것을 애써 강조합니다. 따라서 여주인공은 자신이 그의 죽음으로 인해 충격을 받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