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 (1)

필자 (匹子) 2023. 2. 20. 12:02

1. 『갈릴레이의 생애』의 다양한 판본: 브레히트의 가장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인 ?갈릴레이의 생애 Leben des Galilei?는 여러 원고로 집필되었습니다. 각 원고들은 주제상의 편차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정교하게 기술된 이 작품은 브레히트의 작품들 가운데에서 가장 난해한 것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 1원고는 1938/ 39년에 덴마크에서, 제 2원고는 1945/ 47년에 미국에서, 마지막 제 3원고는 1954/ 56년에 집필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 1원고를 덴마크 판으로, 제 2원고를 캘리포니아 판으로, 제 3원고를 베를린 판으로 명명합니다. 특히 제 3원고는 제 2원고에 비해 내용상으로 커다란 차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 1원고와 제 2원고는 작품의 형상화에 있어서 그리고 주제에 있어서 엄청난 이질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 1원고와 제 2원고만 비교하면 족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제 2원고와 제 3원고와의 비교 작업은 독문학 연구가의 일감이 될 뿐, 일반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내기에는 너무 전문적입니다.

 

2. 갈릴레이의 유연한 자세: 제 1원고를 집필할 무렵, 브레히트는 향락적으로 생활하면서 자연과학에 열광하는 연구가인 갈릴레오 갈릴레이 (1564 - 1642)의 학문적 열정 그리고 이른바 법망을 빠져나오는 유연한 자세를 무척 높이 평가했습니다. 갈릴레이는 인민을 위해서 비밀리에 혁명에 가담하는 선구적 지식인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갈릴레이는 교황청에서 자신의 주장을 번복한 다음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렇듯 제 1원고를 쓸 무렵, 주인공 갈릴레이는 혁명적 지식인으로서, 스스로 살아남으면서, 아울러 진리를 전파하는 인물로 간주되었습니다. 따라서 제 1원고에서의 주인공은 브레히트가 모범으로 삼으려던 긍정적인 인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레이의 유연한 행동은 진리를 전파하면서 살아남는 극작가 자신의 자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이를 접한 브레히트는 원자폭탄 투하 그리고 그 결과를 매우 끔찍한 사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3. 양날의 칼로서의 자연과학 연구, 갈릴레이는 배반자인가? 예컨대 알프레드 노벨이 탄광 속의 석탄 및 광물 개발을 위해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였지만, 그게 폭탄으로 사용될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발명품 다이너마이트로 인하여 목숨을 잃게 되었을 때, 노벨은 쓰라린 고통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연구가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연과학의 기술은 마치 칼과 같아서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서 때로는 요리 도구인 식칼로, 때로는 살인 도구로 사용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자연과학은 양날의 칼입니다. 그것은 인류의 지상의 행복에 크게 기여할 수 있지만, 잘못되면 인류 전체를 재앙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브레히트 역시 주인공 갈릴레이를 긍정적인 인물, 혹은 부정적인 인물로 고찰했습니다. 이를테면 갈릴레이는 너무나 거대한 학문적 열정으로 인하여 정작 견지해야 하는 현실 정치적 견해를 연마하는 데 소홀했습니다. 제 5장에서 페스트가 창궐하는 피렌체를 떠나지 않고, 일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은 채 연구 자재, 문헌 그리고 연구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4. 1원고와 제 2원고의 주인공은 전적으로 다르다.: 제 1원고에서 갈릴레이는 권력자를 속이고 살아남으면서, 진리를 전달하는 혁명 투사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브레히트는 1945년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가한 원폭투하의 소식을 접합니다. 이때 브레히트는 갈릴레이와 자연과학 탐구 자체를 회의하기 시작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 2원고에서 갈릴레이는 배반자로 묘사됩니다. 말하자면 갈릴레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동족과 인민을 배반하는 인간형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다른 인간의 안녕을 저버리는 이기주의자가 바로 갈릴레이입니다.

 

제 3원고에서도 이러한 부정적인 특성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브레히트는 제 2원고 그리고 제 3원고의 제 1장 그리고 제 14장을 대폭 수정하였습니다. 가령 투쟁하는 지하 운동가의 면모는 삭제된 반면에, 부도덕한 타협주의자 내지 배반자의 면모가 부각된 것입니다. 따라서 제 1원고의 주인공이 긍정적이고 참된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제 2원고 그리고 제 3원고에서는 부정적이고 사악한 배반자 사악한 기회주의자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5. 극작품의 특성:작품은 도합 14개 (15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가는 연대기의 순서대로 기술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갈릴레이의 삶을 일직선상으로 평행하게 서술하지는 않았습니다. 장면들은 때로는 하루에 일어난 일을 세밀하게 다루기도 하고, 때로는 몇 년을 건너뛰기도 합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주제를 고려하여 극을 진행시키려는 작가의 비판적 의도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제 1장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46세의 파도바 대학의 수학 교수입니다. 그가 받는 500 스쿠디의 돈으로 생활하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그의 삶의 방식은 근검절약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향락적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연구를 위한 자금 지출을 아끼지 않습니다. 갈릴레이는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을 들여와서 더 좋게 제작하여, 마치 자신이 그것을 직접 발명했다고 발표합니다. 그밖에 그는 강의 외에 별도로 개별 가정교사 직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부유한 루도비코를 가르치는 대가로 더 많은 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6. 극작품의 제 1장 (1): 놀라운 것은 어린아이, 안드레아 사르티를 가르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교육 방법의 측면에서 놀랍기 이를 데 없습니다. 갈릴레이는 태양과 지구의 운행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서 의자 등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초에 갈릴레이는 이미 지동설을 하나의 명백한 사실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제자를 시켜서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을 수입하여, 그것을 개량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치 자신이 그것을 발명한 것인 양 내외적으로 알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갈릴레이의 공명정대함과는 거리가 먼 교활한 특성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가 망원경을 통해서 달 그리고 목성의 달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로써 그는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이론적으로 소개된 바 있는,비밀스러운 우주의 시스템, 즉 지동설을 직접적으로 검증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오관 가운데 하나인 눈을 통해서 태양계의 움직임을 직접 관찰하게 된 것입니다. 가령 극작품은 갈릴레이의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써 점층적으로 변합니다. “왜냐면 신앙이 수천 년 동안 앉아 있었던 곳에는 이제 의심이 자리하고 있네.”

 

7.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자연과학: 브레히트는 이데올로기와 자연과학 사이의 대립 관계를 제 8장에서 놀랍게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세계의 질서를 처음부터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기독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신의 의지에 창조된 객체에 해당합니다. 이에 비하면 자연과학은 자연의 법칙을 추적하여,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찾아냅니다. 자연과학이 천체의 운동법칙을 탐구할 때부터, 기독교의 세계관과 마찰을 빚게 됩니다.

 

자연과학의 연구는 그 자체 귀납법적으로 자연을 연구하는 행위이므로, 예정조화설로서 정착되어 있는 신의 의지로 만들어진 세계관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하여 자연과학자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신뢰하는 수사 계급과 첨예하게 다른 의견을 내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극작품에서 하나의 대립으로 부딪칩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세계 질서가 기득권 내지 권력자의 수구 보수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면, 세계의 다른 시스템을 발견하여 이를 정립하려는 자연과학자의 연구는 개혁적 사고 내지 진취적 유토피아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8. 8장, 키 작은 수사와의 대화: 키 작은 수사 한 사람은 갈릴레이를 찾아옵니다. 그의 이름은 풀간치오였는데, 그의 가족들은 로마 교황청이 제시한 삶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왔습니다. 가톨릭이라는 항구적인 필연성이 대부분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자신의 신앙은 지금까지의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키 작은 사제는 다음과 같이 항변합니다. 만약 자신이 서 있는 지구가 한낱 작은 돌덩이에 불과하다면, 이는 땀과 인내, 배고픔과 복종 등을 호소하는 신앙의 진리에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작은 사제는 천체를 연구하는 일이 기독교의 고매한 정서에 위배되고, 인간의 복된 삶을 누리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자연과학 연구에 상당한 흥미를 느끼고 있지만, 자연과학의 연구를 지속하면 그럴수록, 자신의 기독교적 세계관의 의미가 자꾸 퇴색되는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앙의 실질적 그리고 명목적 가치는 자연과학 연구의 실질적 그리고 명목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9. 갈릴레이의 반론, 진주조개의 비유: 이때 갈릴레이는 진주조개의 비유로써,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반론으로 제기합니다. 진주조개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모래알 등을 점액 낭에 품고 있습니다. 진주조개는 진주가 형성되는 동안 서서히 죽어갑니다. 모래알은 기독교 신앙이고, 진주조개는 일반 신앙인들을 가리킵니다. 즉 일반 사람들은 마치 진주조개와 같이 중세의 믿음을 고수하며 내세를 위하여 현세에 불행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갈릴레이는 이를 설명하면서 외칩니다. “빌어먹을 놈의 진주. 나는 병든 조개가 아니라, 모래알 없는 건강한 조개를 선택하겠소.”

 

당시의 가톨릭 신앙은 갈릴레이의 견해에 의하면 마치 진주와 같은 것으로서 저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사람들을 현세에서 불행하게 살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천체의 메커니즘을 연구한다는 것은 인류가 현세에 행복을 누리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신앙에만 집착하면, 인간은 이를테면 강물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기계 장치 하나도 발명하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뒤이어 갈릴레이는 다음과 같이 대꾸합니다. 진리는 누가 뭐래도 진리라고 합니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인 180도는 교황청의 요청에 따라 변경될 수 없는 법입니다.” 결국 키 작은 사제는 갈릴레이의 말에 감복하여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데 가담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