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브레히트의 '앙리 뒤낭의 기이한 병' (1)

필자 (匹子) 2023. 2. 4. 06:49

친애하는 H, 오늘 브레히트의 단편 「앙리 뒤낭 씨의 기이한 병 Die seltsame Krankheit des Herrn Henri Dunant」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작품은 당신에게 두 가지의 중요한 사항을 전해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하나는 앙리 뒤낭과 적십자 운동 및 사회복지에 관한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브레히트가 고심했던 자아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 사이의 모순관계에 관한 문제입니다.

 

작품은 1942년에 집필되었지만, 훗날에야 비로소 발표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1967년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간행된 브레히트 전집에 빠져 있었는데, 이년 후에 “보충 판 Supplement”에 비로소 수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 소개되지 않은 것입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국제 적십자사는 세계적인 기구입니다. 56개국 이상의 나라가 여기에 가입해 있으며, 적십자 회원만 해도 이천만이 넘습니다. 적십자 운동으로 인하여 부상당한 군인은 중립적으로 대우받게 되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 역시 적십자 운동으로 인하여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부상병 모두를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친애하는 H, 국제 적십자사는 오로지 스위스 출신의 어느 평범한 남자에 의해서 발기되었습니다. 은행가 앙리 뒤낭 (1828 - 1910)이 바로 그 남자입니다. 31세의 은행 지점장, 뒤낭은 1859년 초여름에 이탈리아로 여행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프랑스의 장군 멕마온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전도유망한 젊은 경영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일하여 은행장의 신임을 얻는 일이었습니다. 뒤낭은 알제리의 금융시장의 확보를 위해서 영향력 있는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했는데, 나폴레옹 황제 치하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멕마온 장군으로 판단되었던 것입니다. 뒤낭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추천서를 확보하여, 1859년 초여름에 이탈리아 북부로 떠났습니다.

 

 

 

 

당시에 멕마온 장군은 이탈리아의 전쟁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젊은 은행가, 뒤낭은 본의 아니게 전투의 현장으로 향하게 됩니다. 장군을 찾기 위하여 솔페리노라는 지역의 전쟁터를 이리저리 헤매야 했습니다. 이때 그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두 눈으로 생생하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도착한 첫날 저녁에 약 4만에 달하는 전사자와 부상자들이 들판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파괴된 마을의 교회에서는 몇몇 의사들과 간호사들만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부상당한 군인들은 전선을 떠나서 있는 힘을 다해서 마을 교회로 걸어온 자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전선에 투입되어, 부상병들을 야전 병원으로 호송하지 않았습니다.

 

뒤낭은 부상병들이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은 채 들판에 누워서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를 듣었습니다. 이때 그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아낙네들을 모아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왜냐하면 군대는 뒤낭과 같은 낯선 외국인을 야전병원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뒤낭은 솔선하여 팔을 걷어붙인 채 부상병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런데 아군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적군의 부상병을 응급 치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뒤낭은 일단 포로들 그리고 부상당한 적군들을 근처의 학교에다 머물게 조처했습니다.

 

이탈리아의 포로들 가운데에는 의사도 있었습니다. 뒤낭은 이탈리아 출신의 의사들을 야전병원에 일하도록 청원했으나, 이는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적국의 의사라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 뒤낭은 드디어 솔페리노 전투의 승리자인 멕마온 장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뒤낭에게는 자신의 사업에 관한 말을 끄집어낼 겨를이 없었습니다. 추천서를 보여주는 대신에, 그는 이탈리아 출신의 의사들이 프랑스의 야전 병원에 일해야 한다는 것을 장군에게 강하게 피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뒤낭의 이러한 요구는 관철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은 사업적 용무를 완결시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제네바로 돌아온 뒤낭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는 알제리 금융 사업 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오게 된 배경을 가족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가족들은 뒤낭의 은행을 위해서 많은 돈을 투자하였고, 무엇보다도 급전이 필요했습니다. 가령 그의 남동생은 의대를 졸업하여 병원을 개업하려 했으며, 여동생은 결혼을 위한 지참금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주인공이 가급적이면 많은 돈을 버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뒤낭은 체질적으로 사업적 수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가족에게 진 빚을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결심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이탈리아 여행으로 인하여 그는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탈리아 여행은 뒤낭이 자신의 사적인 행복을 누리는 데 악재로 작용하게 됩니다. 뒤낭 역시 어느 아름다운 처녀와 약혼식을 거행한 바 있었습니다. 가정을 꾸려서 행복하게 사는 게 그의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계획했던 사업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자, 뒤낭의 재산은 서서히 축나기 시작했습니다. 후회막급이었지요. 그래서 뒤낭은 마을 교회에서 비명을 지르던 수많은 부상병들을 잊고, 자신의 사업에 몰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심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럽 전체가 전쟁의 분위기에 빠져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의 뇌리에는 장터에 즐비하게 깔려 있던 수많은 시신들 그리고 부상병들에 관한 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뒤낭은 친구들과 자신의 약혼녀들을 멀리 하고, 틈틈이 솔페리노 전투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어로 집필된 그 책은 제네바에서 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