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브레히트의 "두 아들"

필자 (匹子) 2023. 2. 20. 12:16

(작품 줄거리)

브레히트의 단편, 「두 아들」은 미국에서 씌어졌다. 사람들은 1946년이라고 추측한다. 단편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1945년 1월 히틀러 전쟁이 끝나기 전에 튀링겐 지방의 어느 농부 여자는 꿈을 꾼다. 출병하여 전선에 근무하던 아들이 어머니, 하고 자신을 부르는 것이었다. 비몽사몽간에 그미는 정원으로 나갔는데, 펌프 옆에서 아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젊은 남자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젊은 소련군 포로였다. 소련군은 포로로 잡혀서 힘들게 사역하고 있다. 며칠 후에 그미는 숲에서 일하는 포로들에게 음식을 날라주었는데, 이때 젊은 포로의 얼굴은 분명히 자신의 아들의 그것은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아들로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인상은 자주 발생한다. 어느 날 젊은 소련 포로가 몹시 아팠을 때, 그미는 배고픔 때문에 몸이 약해진 소련 포로에게 칼로리 많은 음식을 가져다주려고 한다. 그런데 전쟁 상이군인인 오빠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오빠는 전쟁 포로를 철저한 규칙에 따라 다루었던 것이다. 그미는 지금까지 들은 소문에 의하면 모든 러시아 사람들이 저열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미는 동부 전선에 있는 자신의 아들에 대해 몹시 걱정하고 있다. 어느 날 저녁에 그미는 여러 명의 소련 포로가 눈덮인 정원에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란다. 사실 포로들은 어디론가 탈출하려고 했다. 그미는 젊은 포로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양철 집게 그리고 외투를 전해 준다. 기이하게도 이제 그미는 더 이상 그를 자신의 아들로 착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미는 오로지 낯선 젊은이 한 명을 도와줄 뿐이다.

 

어느 날 아침, 그러니까 2월 말 경에 누군가 자신의 창문을 두드린다. 그미의 아들이 찢겨진 SS 대원의 옷을 입고 밖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의 군대는 이리저리 흩어져 버렸고, 러시아 군대는 불과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한다. 아들이 귀환했다는 사실은 다른 곳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두 사람은 생각한다. 여자 농부, 오빠 그리고 그미의 아들은 말하자면 이웃 사람들끼리 비상 모임을 개최한다. 그리하여 남자들은 전쟁 포로들을 처치해야 한다고 경정한다. 왜냐하면 만약 포로들이 자기 군대로 되돌아가면, 이곳 사정 및 귀환한 독일 군에 관한 것을 전하리라고 그들이 믿었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여자 농부의 아들은 포로들을 한 사람씩 유인하여,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저녁에 사람들은 포로들에게 술을 한 잔씩 권했다. 말하자면 그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계획이 채택되자 아들은 어머니가 부들부들 떠는 것을 목격한다. 러시아 포로들은 독일 농부들로부터 술을 얻어 마신다. 그들은 술을 거나하게 마신 뒤, 아주 우울한 노래를 부른다. SS 대원인 그미의 아들이 포로들을 차례로 죽이기 위해서 수용소로 갔을 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포로들은 마치 그들이 술 취한 척 꾸몄던 것이다.

 

12시가 지나자 소련군이 침입한다. 여자 농부의 아들과 오빠는 술에 취해서 처마에 누워 있다. 여자 농부는 소련군을 맞아서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다음날 아침 소련군은 그곳을 떠난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강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자신은 퇴군하는 독일군에 가담하여 계속 싸우고 싶다는 것이다. 여자 농부는 아들에게 그것은 패망하는 행위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길을 가로막고, 강제로 떠나지 못하게 한다. 아들은 어머니를 짚단 쪽으로 밀친다. 그미는 일어나서 채로 사용하는 막대기로 전쟁에 광분한 아들을 내리친다. 다음날 아침 그미는 아들을 묶은 채 전쟁 포로수용소로 그를 넘긴다. 그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작품 해석)

장편 소설 (掌篇 小說)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의 어느 혼란스러운 상황을 아주 간략히, 그러나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이 시대를 체험한 사람이라면, 당시 국가 사회주의의 선동 선전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당시에 히틀러 정권은 러시아인들이 잔악하고 살인 욕구로 가득 찬 인간이라고 떠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SS 대원인 독일 남자는 어떠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총을 놓지 않으려고 굳게 결심하고 있다. 그러니까 개별적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다음과 같은 시구를 읊었다. “우리가 죽어야 한다면, 독일은 분명히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젊은 남자 역시 이러한 슬로건의 희생자이다. 러시아인들은 잔악하고 살인 욕구로 가득 차 있다 - 이러한 선동 선전은 독일인들로 하여금 현실을 정확하게 간파하지 못하게 만들고, 무조건적으로 전쟁에 광분하게 만든다.

 

갈등의 해결은 결코 정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는 작가의 과거 체험, 전쟁에 대한 작가의 태도 그리고 이야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브레히트는 사건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리고 있지 않으며, 모든 비판적 사고를 독자에게 떠맡기고 있다. 소설 속의 핵심사항은 다음과 같다. 모성을 지닌 어느 여성은 어려움과 절망 그리고 출구 없는 상태를 극복하는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 그미는 국가 사회주의의 선동 선전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 평범한 농부이다. 그미는 인간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불확실함을 느낀다. 다만 그미에게서 확실하게 남아 있는 감정은 무엇보다도 자식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희생정신이다. 그미의 아들은 동부 전선에 있는데,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미가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해서는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자식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미는 항상 불안을 느낀다.

 

바로 이러한 모성적인 본능으로 인하여 그미는 다른 위험한 젊은 남자, 즉 병든 전쟁 포로를 자신의 아들 모습으로 착각하여 바라본다. 이는 분명히 환시나 다름이 없다. 낯선 젊은 사람에 대한 도움은 어떠한 사고에도 종속되어 있지는 않다. 그미의 오빠는 포로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더 잘 처신하는지 모른다. 또한 그미의 아들 역시 동정심, 인간성 등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아들이 살인 계획을 세웠을 때 그는 어머니가 부들부들 떠는 것을 바라본다. 그미는 밤에 무슨 일에 벌어질지를 알고 경악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러시아 군인들이 쳐들어 왔을 때, 그미는 아들의 SS 유니폼을 태워버린다. 그미는 혼자서 러시아 군인들을 접대한다. 그러는 동안에 이전에는 그렇게 용감하던 남정네들은 술에 취해서 어디선가 드러누워 자고 있다. 그미가 소련 군인들의 식사를 준비할 때, 두려움을 느꼈는지, 아니면 내심 그들을 경멸했는지에 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미로서는 한 가지 목표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아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 그미는 아들의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맞선다. 말하자면 그미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전혀 모성적이지 않은 마지막 절망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삶을 원하는 어머니의 본능은 영웅적 사고 내지 거짓 영웅적인 그리고 정치적 사고보다도 더 강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