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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뷔히너의 렌츠

필자 (匹子) 2019. 10. 9. 21:42

친애하는 J, 위대한 천재 작가는 불과 서너 편의 작품만을 남깁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명작으로 읽히곤 합니다. 가령 게오르크 뷔히너 (1813 - 1837)의 단편 「렌츠」가 그러하지요. 이 작품은 1839년에 유작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뷔히너는 작품의 제목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부인 미나 예글레는 1837년 9월에 뷔히너의 복사본을 카를 구츠코 Karl Gutzkow에게 송부했는데, 1839년 1월 『독일 전보 Telegraph für Deutschland』에 “렌츠. 게오르크 뷔히너의 유작.”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뷔히너의 동생 루드비히 뷔히너 (1824 - 1899)는 이 원고를 토대로 1850년에 유고집을 간행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뷔히너의 친필 원고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뷔히너가 이 작품을 집필한 시기는 1835년 초입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모스크바에서 비명횡사한 비련의 작가, 야콥 미하엘 라인홀트 렌츠 (J. M. R. Lenz, 1751 - 1826)입니다. 렌츠는 1778년 1월 20일부터 2월 8일 사이에 발더스바흐 Waldersbach라는 지역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이때 그를 보살펴 준 사람은 요한 프리드리히 오벌린 (Johann Friedrich Oberlin, 1740 - 1826)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벌린은 그곳에서 목사, 사회개혁가 그리고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렌츠는 정신 착란의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렌츠의 증세가 심해지자 오벌린은 그를 데리고 스트라스부르로 데리고 가서 치료받도록 알선해 줍니다. 뷔히너가 단편을 집필하기 위하여 참조한 것은 오벌린의 보고서 그리고 괴테가 남긴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이었습니다.

 

괴테는 자서전에서 작가 렌츠의 겉으로 드러난 돌출 행동을 기괴한 것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에 반해서 뷔히너는 1835년 자신의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기록한 바 있듯이 불행한 시인의 현재 상태를 사실에 근거하여 충실하게 묘사하려고 했지요. 오벌린은 자신의 보고서에서 렌츠의 겉으로 드러난 기이한 행동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뷔히너는 병자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 속에 어렴풋이 비치는 내면세계를 꿰뚫어보려고 노력하였지요. 물론 뷔히너가 오벌린의 보고서를 토대로 단편을 집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연대기적 서술을 생략하고, 렌츠의 주관적 시간관념을 중시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나아가 작품에 등장하는 자연묘사 그리고 자연 체험 등은 오로지 뷔히너의 독창적 사고에 의한 것입니다. 나아가 기독교에 대한 주인공의 비판적 태도 그리고 친구 크리스토프 카우프만 Christoph Kaufmann과의 예술에 관한 대화 등도 작가 자신의 상상력에 의해서 끌어낸 것들입니다. 뷔히너는 렌츠의 병적 상태를 포괄적으로 설계한 셈인데, 그 치밀함, 정밀함에 있어서 독일 문학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놀랍습니다.

 

뷔히너는 렌츠가 산 속으로 잠입했다고 묘사합니다. 그런데 이는 주인공의 의식 상태의 전환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잿빛으로 세상을 응시합니다. 축축한 서리로 뒤덮인 자연은 등장인물의 냉담한 심정 상태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입니다. 렌츠는 빛에 의해서 밝은 모습으로 꿈틀거리는 자연 풍경을 접하기도 합니다. 그는 방랑하면서도 자연이 유희하며 드러내는 놀라운 힘에 탄복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세상은 렌츠 자신에게 너무나 갑갑할 정도로 압박을 가합니다. 그러면 그는 자신이 우주의 무한 속으로 무한하게 나아가는 것을 갈망하기도 합니다. 작가의 문장 역시 때로는 간결하고, 때로는 끝없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주인공의 심적 상태의 변화불측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정상에 올랐을 때 렌츠는 어둠 속에서 거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힙니다. 유아독존으로 인한 고독감 그리고 무엇에 의해서 쫓기고 살아간다는 피해망상이 그를 괴롭힙니다. 이러한 내적 심리는 자연에서 드러나는 겉모습과 마구 뒤엉켜 있습니다. 수많은 기억들이 언제나 순간의 상들로 주인공의 뇌리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발트바흐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렌츠는 비로소 안정을 되찾습니다. 어느 목사가 그를 반갑게 영접합니다. 렌츠는 목사의 집안에서 어린 시절 행복했던 나날을 떠올립니다. 그는 본능적으로 금식하다가 쓰라린 굶주림의 고통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거의 기절 상태에서 분수에 자신의 몸을 던진 다음에야 비로소 제 정신을 차리곤 합니다.

 

오벌린과 함께 지내면서 그의 심리적 상태는 무척 호전됩니다. 렌츠는 오벌린이 신도들을 도와주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의 눈에는 가난하게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의 삶이 무척 자연친화적으로 비칩니다. 렌츠는 낮에는 평온하게 지내지만, 어둠이 엄습할 때에는 으레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두려움에 몸을 떱니다. 조만간 자신이 심한 병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벌린과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주인공은 자연을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야 어둠과 함께 엄습하는 끔찍한 힘에 대해 자기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자연 속에 신이 계신다고 굳게 믿는 태도야 말로 자신의 병적 증세를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처럼 보입니다. 오벌린이 설교하는 동안에 렌츠는 성서를 읽으면서 자신을 달랩니다. 신앙생활은 비록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끝없는 평온의 달콤한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그렇지만 기도가 끝나면 다시금 절망과 자기 연민의 감정이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릅니다. 이때 렌츠는 다시금 고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의식하고 괴로워합니다.

 

 

 

어느 날 친구인 크리스토프 카우프만이 자신을 찾아옵니다. 이때 렌츠는 그와 함께 예술에 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눕니다. 소설 속의 대화는 작품의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작용합니다. 그는 관념론의 추상적 특성을 맹렬하게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모조리 도외시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뷔히너의 예술적 입장이 백일하에 드러나는데, 이것은 그의 정치적 관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뷔히너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누리고, 평등하게 살아가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술은 이러한 요구 사항을 완전히 관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한계점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술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현실에 결핍된 무엇 그리고 인간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변화를 위한 갈망뿐이라고 합니다. 렌츠는 현실이 아니라, 예술에서 자기 동일성을 발견합니다. 카우프만이 “부친에게 돌아가라.”하고 말했을 때, 주인공은 대화를 더 이상 계속하지 않습니다. 시민주의의 삶은 자신을 거의 미치게 만드니,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요양하며 살아가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대꾸합니다.

 

카우프만과 오벌린은 스위스로 떠나게 됩니다. 렌츠는 이들을 배웅해주고 다시 발트바흐로 되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어느 초가에서 젊은 처녀 한 사람이 열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렌츠는 그미를 바라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발트바흐로 향하게 한 것은 어느 처녀의 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병든 처녀는 놀랍게도 렌츠의 눈에는 때로는 자신의 어머니로 비치다가, 프리데리케 브리온으로 비쳤습니다. 그미는 괴테에게 버림받은 뒤 스트라스부르에서 렌츠와 약혼한 처녀가 아닙니까? 폰디 마을에서 처녀 한 명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렌츠는 마치 참회하는 자라도 되는 듯이 얼굴에 재를 바르고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여자 곁에서 마치 그리스도처럼 죽은 자를 살려내려고 헛되이 애를 씁니다. 순간적으로 기절한 뒤 다시 깨어난 렌츠는 자신이 신을 우롱했다고 생각합니다.

 

 렌츠의 병적 징후는 점점 강화되는데, 이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어느 풍경은 마치 거인처럼 달빛 아래에서 어두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데, 렌츠는 이러한 상을 신께서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의 의식 속에는 공허함, 추위, 냉담한 태도 등이 자리합니다. 이것들은 자기 자신을 괴롭히려는 광적인 욕구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오벌린은 스위스에서 돌아와 렌츠와 대화를 나눕니다. 그는 렌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은 종교적 구원의 약속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낮에 렌츠에게 엄습하던 절망감은 밤이 되면 과도한 양으로 그를 괴롭힙니다. 그의 병적 증세는 심각해집니다. 불과 짤막한 순간에 마음의 평정을 느낄 정도입니다. 렌츠는 자살을 기도합니다. 오벌린은 정신을 차린 주인공을 스트라스부르로 송치하게 합니다.

 

 

 

 

 

사진은 야콥 미하엘 라인홀트 렌츠의 가정교사의 공연 장면이다. 렌츠는 이 작품 외에도 훌륭한 극작품을 많이 집필했으나, 결국 러시아에서 객사하였다. 

 

「렌츠」는 오랫동안 미완성 작품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작품의 주제 역시 과거에는 허무주의와 관련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는 오늘날에 이르러 바뀌게 됩니다. 작품은 그 자체 완성본이며, 작품의 주제는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렌츠의 고립, 고독 그리고 소외감은 “자신이 갈구하는 바를 도저히 실천할 수 없을 때 느끼는 괴로움”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뷔히너는 지식인 작가 한 사람을 등장시켜, 그가 사상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낙후한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의 이상을 도저히 꽃피울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려 했는지 모릅니다. 그게 아니라면 두 가지 해석이 남습니다. 첫째로 뷔히너는 렌츠의 심리 상태를 도덕과 부도덕의 차원에서 재단하지 않음으로써, 렌츠에 대한 오벌린의 견해를 반박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이를테면 오벌린은 자신의 보고서에서 “렌츠는 부도덕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심리적 질병에 걸렸다.”고 기술했습니다. 둘째로 뷔히너는 렌츠의 정신 상태가 신앙심과 무관하다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렌츠의 정신 착란은 어떤 정치적 의미를 지닙니다. 19세기 초 유럽에서. 특히 수많은 제후국가들로 구성되었던 낙후한 독일에서 진취적 사고를 지닌 젊은 작가가 감옥에 가지 않은 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항만 첨가하겠습니다. 1973년 페터 슈나이더 Peter Schneider는 소설 『렌츠』에서 학생 운동의 실패 그리고 한계를 진단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