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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그릴파르처의 '금양피'

필자 (匹子) 2020. 1. 14. 21:36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프란츠 그릴파르처 (Fr. Grillparzer, 1791 - 1872)의 극작품 「금양피 (Das goldene Vließ)」는 1821년 완성되어 그 해 비인의 부르크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그릴파르처는 1818년에 이미 「사포 (Sappho)」를 쓴 바 있는데, “금양피”라는 제목에다 “손님 친구” (제 1막), “아르고 호 선원들” (제 4막), “메데이아” (제 5막)을 첨부시켰습니다. 세 편의 작품은 그릴파르처의 메데아 삼부작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극작가는 단막극 「메데이아」를 쓰기 위해 오랫동안 고전 비극을 연구하였습니다. 당시 삼부작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금양피”는 신화에서 나오는 사물로서 “갈망의 가치를 지닌 물건”을 지칭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탐했으며, 나아가 부정한 방법으로 획득하려는 보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릴파르처는 벤야민 헤더리히 (B. Hederich)의 ?세밀한 신화사전? (1724 / 1770) 그리고 오비드 Ovid, 에우리피데스 Euripides 그리고 세네카 Seneca 등의 서사시 내지 극작품들을 독파하였습니다.

 

짤막한 비극 「손님 친구」는 메데이아 이야기의 서곡이나 다름이 없습1니다. 아버지에 의해서 추방당한 젊은 그리스인 프리후스 Phryxus는 금양피를 가지고 야만적인 콜히스로 향합니다. 그는 꿈속에서 듣게 된 신의 계명을 맹목적으로 신봉한 채, 델피 신전에 있는 어느 신의 조상으로부터 보물을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프리후스는 콜히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친절한 영접에 감사하며, 금양피를 보관해 달라고 맡깁니다. 그러나 거칠고 음흉한 아이에테스는 프리후스를 죽여 버립니다. 이로써 콜히스의 왕은 손님에 대한 계율을 어기게 되며,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의 딸 메데이아는 그의 미래를 예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버지, 무슨 짓을 저질렀나요? / 손님을 그렇게 쳐 죽이다니,/ 고통스러워라, 우리 모두 괴로워하노라./ 지하의 안개 속에서 솟아난/ 머리 셋, 피 묻은 머리들/ ... 그들은 와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어요/ 나를 칭칭 동여매요 / 나를, 아버지를 그리고 우리 모두를/ 아버지에 대해 고통스러워해요.”

 

삼부작의 두 번째 부분은 “아르고호 선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을 이끄는 사람은 그리스 영웅 이아손입니다. 이아손은 숙부인 테살리아의 왕, 펠리아스의 부탁을 받고 콜히스를 찾습니다. 그러니까 프리후스를 죽인 자들에게 복수를 가하고 금양피를 찾아오는 게 이아손의 임무였던 것입니다. 콜히스는 그리스의 침입자들에 의해 위협받게 됩니다. 아이에테스와 그의 아들, 압시르토스는 메데이아를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메데이아는 인적이 드문 숲 속에 탑을 짓고 거기 거주하며 마력을 시험하던 터였습니다. 메데이아는 아버지와 남동생에게 도움을 약속한 뒤 콜히스를 방어하기 위해 마력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아손이 선수를 쳐서 그미가 거주하는 탑으로 들이닥칩니다. 이때 메데아는 침입자를 죽음의 신 “하임다르”라고 착각하고, 그에게 자신의 입술 그리고 자신의 고결한 몸을 바칩니다. 그러나 나중에 자신과 사랑을 나눈 자가 그리스인 이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메데이아는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모릅니다. 사랑이란 이아손에게는 “저주받을만한 일에 관한 아름다운 이름”에 불과하지만, 메데이아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메데이아는 마력의 묘약을 통해서 이아손으로 하여금 뱀을 무찌르고 땅 속 깊이 보관된 금양피를 얻게 합니다. 또한 사랑이냐, 가족 내지는 조국이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메데이아는 사랑을 택합니다. 이로써 우여곡절 끝에 남동생 압시르토스가 사망하게 되고, 나중에 아이에테스는 자신의 딸 메데아에 대한 노여움으로 가득 찬 채 자결하게 됩니다. 이로써 메데아는 가족들의 죽음에 커다란 죄의식을 느낍니다.

 

“아르고 호 선원들”의 마지막 이야기와 세 번째 부분인 “메데아” 이야기 사이에는 수년의 세월이라는 간격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숙부 펠리아스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의해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그들의 두 아들과 함께 이곳저곳으로 항해하다가 코린트라는 곳에 당도합니다. 메데아는 비밀리에 해변의 어느 곳에 금양피를 숨깁니다. 이로써 그미는 자신의 야만적인 과거, 마력을 위한 여러 가지 도구들 그리고 금양피 등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려고 합니다. 그미는 크레온 왕이 다스리는 코린트에서 그리스 여자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자신의 과거 때문에 언제나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그리스인들은 메데이아가 검은 마술을 사용하는 끔찍한 여자라고 단죄합니다. 크레온 왕의 딸, 선하고 순수한 크레우사는 메데이아에게 그리스인들의 예의범절을 가르쳐주려고 하나, 번번이 실패합니다. 이아손은 서서히 메데이아로부터 거리감을 취하며, 크레우사에게 추파를 던집니다. 게다가 어떤 소문이 마치 발없는 말처럼 떠돌아다닙니다. 소문에 의하면 메데아는 왕년에 펠리아스 왕을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펠리아스는 사실인즉 금양피를 너무나 오래 바라보다가, 금양피 속에 도사리고 있던 사악한 영혼의 힘에 의해서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메데이아는 자신에게 가해진 온갖 음해로부터 자신을 비호하지 않습니다.

 

이아손은 자신의 명예만을 위해서 그리고 코린트에서 방해받지 않고 살기 위해서 메데이아와 관계를 끊고, 그미를 추방하게 합니다. 그미의 두 아들마저 메데이아로부터 등을 돌렸을 때, 메데이아는 거대한 심리적 상처를 참지 못하고, 노여움 그리고 야성을 다시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미는 크레우사를 살해하고, 두 아들마저 죽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크레온은 이아손마저 추방시킵니다. 마지막 추방의 길목에서 메데아와 이아손은 조우합니다. 이때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 금양피를 델피 신전에 돌려주고, 그곳의 사제의 뜻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릴파르처는 아르고 호의 전설을 새롭게 각색하면서, 신화적 소재를 휴머니즘 이상의 역사철학적 비극으로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행위들은 델피 신전에서의 신의 지혜로부터 스스로를 보존해야 하는 어떤 판단에 종속되고 있습니다. 델피는 휴머니즘 이념의 근원이자 산실이며, 아폴로는 신의 부호이자 휴머니즘을 보호하는 에너지입니다. 만약에 메데아가 잔악 행위를 저지른 뒤 금양피를 델피 신전에 되돌려주고, 사제의 뜻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스인들은 메데이아를 인간으로 영접하지도 않았으며, 이방인으로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미는 야만인 왕의 딸로서 인간 공동체에서 제외 당했습니다. 그미에게 인간적 요소는 배제되었고, 동시대인들과 함께 살겠다는 의지 등은 조금도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절망에 사로잡힌 그미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뒤 신에게 귀의하게 됩니다.

 

작품은 언어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릴파르처는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무운 격을 사용하게 하는 반면에, 메데이아로 하여금 자유 리듬을 사용하게 하고 있습니다. 메데이아의 언어는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격앙되어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독자 혹은 관객은 두 장면에서의 놀라운 독백을 대하게 됩니다. 그 하나는 이아손이 메데이아에게서 사랑을 발견하는 대목이요, 다른 하나는 메데이아가 자식을 죽이려고 결심하는 대목입니다. 그릴파르처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교육 과정에 대해 아주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1848년 단상에서 “새로운 교육의 길은 휴머니즘에서 민족성을 거쳐 야수성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르고 호 삼부작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작품에 묘사되고 있는 델피 그리고 아폴론은 휴머니즘을, 그리스와 콜히스는 민족성을, 메데이아의 자식 살인은 야수성을 상징한다고 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릴파르처는 그리스인 그리고 콜히스 인을 문화적 대립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는 크리스타 볼프에게서 부분적으로 수용되는 대목입니다.) 즉 자유 그리고 충동, 이성 그리고 마력, 빛 그리고 어두움 등이 그러한 대립입니다. 그릴파르처 연구가들은 여기다가 한 가지 사항을 첨가시킵니다. 이는 다름 아니라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을 지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