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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브렌타노의 고드비, 혹은 어머니의 석상 (2)

필자 (匹子) 2021. 2. 22. 09:40

제 2부의 서문에서 젊은 작가 마리아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소설의 정황은 마치 어떤 흔들거리는 도구처럼 주어져 있다. 그것은 어떤 치유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독자들의 마음속에 죽음의 공포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마리아는 모골이 송연해짐을 일순 느낍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모든 편지에 기록된 날짜를 삭제합니다. 친애하는 C, 이제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맑게 개인 가을날 마리아는 고드비가 머물고 있는 농장으로 향합니다. 고드비는 이제 노인이 되었고, 마치 모든 것을 깨달은 현인처럼 조용하기만 합니다. 마리아는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던집니다. 제 1부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매듭을 풀어달라는 게 마리아의 부탁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수께끼는 끝내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브렌타노는 마치 루드비히 티크의 극작품을 연상시키도록 서술합니다. 소설의 주인공 고드비는 마리아의 작가적 역량 부족을 훈계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젊은 작가는 마구잡이로 상상의 나래를 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드비는 소설의 제 1부에 묘사되었던 공간으로 마리아를 직접 데리고 갑니다. “이곳이 바로 내가 소설의 제 1부에서 빠졌던 연못이야.” 고드비는 자신이 살았던 여러 곳을 보여주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물론 그녀 (오틸리에)는 약간 초연한 듯 나쁘게 묘사되었어.” 이로써 제 1부에 씌어진 고드비의 삶은 주인공에 의해 수정되어 이후 이어지는 스토리 속에 첨가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소설을 가급적이면 일찍 끝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소설 집필에 싫증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고드비의 서술은 모든 등장인물들의 세부적인 관계를 열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건의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C, 이러한 유형은 18세기 후반의 여러 통속소설에서 등장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젊은 마리아로서는 인습적 방식의 소설 집필에 신명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은 소설의 주위 환경을 이탈리아로 이전시키려 합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에우제비오가 날고, 프란체스코 그리고 오틸리에 등이 그의 뒤를 이으며, 두 사람 뒤에는 피라미드식으로 세 사람이 따를 테지. 나의 아버지, 몰리 호테펠트 그리고 나이든 요셉이. 아듀, 마치 두루미 떼가 날아가듯이, 그렇게. ‘행복한 여행은’ 하고 나 (마리아)는 말한다, ‘다시 반복되지 말지어다!’.”

 

마리아는 있는 힘을 다해 사건을 재구성하다가 그만 병들어 죽습니다. 결국 고드비 스스로 소설을 끝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내용은 지극히 단편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인간 삶에는 얼마나 많은 여백이 존재하는지 당신도 아시겠지요? 극도의 고뇌와 즐거움은 글로 기술되지 않고 당사자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되는 법입니다. 친애하는 C, 소설의 줄거리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장년의 고드비는 어느 날 라인 강 근처에 위치한 성으로 여행합니다. 그곳에서는 G. 백작 부인이 딸과 함께 외로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백작 부인은 “약간 경박하지만 몹시 명랑한” 여성이었습니다. 고드비는 그미와 어떤 아무런 제어 없는 감각적 사랑에 빠집니다. 주지육림 (酒池肉林)의 나날은 고드비의 근심을 떨치게 하지만, 모든 것을 망각하게 하는 마취의 삶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치르체의 마술에 의해 돼지로 변신하여, 그미의 욕정의 제물이 되어 수년을 살아간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만 고드비는 그미와 함께 지내는 생활을 결코 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친애하는 C, 장년의 남자가 젊은 여성으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듣게 될 때의 심정이 어떤지 아십니까? 이러한 상황은 당사자에게 “즐거움이 뒤섞인 혼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어느 날 G. 백작 부인의 천진난만한 딸 비올레트는 마흔이 넘은 고드비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비올레트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경건하고 순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파멸시킬지 모르는 성적 욕망을 내면에 지니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기에 그미는 무의식적으로 고드비를 유혹합니다. 그것도 육체적 욕망이라는 신비로운 제단을 마련한 뒤에... 술에 취한 주인공은 그미의 젊은 육체를 마음껏 향유합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깨어난 고드비는 자신의 행동을 몹시 후회합니다. 젊은 여자의 신세를 망쳤다는 죄의식 때문일까요? 아니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을까요? 고드비는 백작 부인과 비올레트가 살고 있는 라인강 근처의 성을 황급히 떠납니다.

 

어린 비올레트는 자신이 능욕 당했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하고 오랫동안 괴로워합니다. 그미는 창녀가 되어, 자신의 삶을 한탄하면서 살아갑니다. 수 년 후 이탈리아에 머물게 된 고드비는 비올레트와 재회합니다. 그는 충격을 받게 되어, 그미를 자신의 영지로 데리고 가서 간호해 줍니다. 비올레트는 허약한 몸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 많은 짧은 생애를 마감하게 됩니다. 친애하는 C, 비올레트의 죽음은 주인공의 마음을 완전히 순화시킵니다. 고드비의 영혼은 자신과 함께 했던 성욕과 이기심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드비는 비올레트의 시신을 땅 속에 고이 묻습니다. 그미의 “석상”은 자신의 어머니의 무덤 곁에 위치하게 됩니다. 작가는 짧은 에필로그에서 “세상을 떠난 마리아의 삶에 관한 몇 가지 말씀”을 첨가합니다. 고드비는 그의 시 선집을 간행합니다. 시선집 속에는 클레멘스 브렌타노에게 바치는 한 편의 헌시도 실려 있습니다.

 

친애하는 C, 브렌타노의 작품은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서술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 소설이라고 명명될 수 있습니다. 소설은 복합적인 서술 방식 그리고 비밀스러운 주제 등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자들에 의해서 칭송 받던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 연작,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루신데?, 장 파울과 티크의 소설 등을 연상시킵니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장편 소설에 관한 편지」에서 “이야기, 노래 그리고 다른 형식의 문학예술 등을 뒤섞은 장편”을 진보적이고 전세계적인 문학 작품이라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브렌타노는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소설 속에다 소네트, 칸소네 그리고 시가 등을 첨가시키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C, 또 한 가지 사항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작품 속에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용해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설의 내용 속에는 브렌타노의 가족 그리고 친구 등의 체험이 반영되어 있는가 하면, 그들 각자의 세계관이 아무런 수정 없이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고드비는 마치 미로를 헤매듯이 자아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방황합니다. 마지막에 그는 어느 유형의 휴식에 당도하지요. 이는 브렌타노가 실제로 체험한 사랑의 원리에 입각한 것입니다. 브렌타노는 훌륭한 문학 가문 출신의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문학적 객기에 이끌려, 많은 여성들을 사귀고, 눈물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말년에 그는 자신의 방탕으로 인하여 비극을 맞게 된 여성들의 일대기를 추후 접하면서, 못내 가슴 아파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