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체호프의 '벚꽃 정원' (1)

필자 (匹子) 2019. 1. 25. 10:19

1. 체호프의 명작: 오늘은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의 4막 희극인 「벚꽃 정원」을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체호프는 의사 수업을 받았지만,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문학 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1880년부터 1904년까지 그가 발표한 작품은 도합 600편이 넘습니다. 문학사가들은 체호프야 말로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사회 그리고 이곳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가장 냉정하게 서술한 작가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주어진 현실에 대한 비판적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지요. 작품은 1904년 1월 17일 모스크바 예술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벚꽃 동산”이라는 제목으로 얼려져 있지만, 나는 의미와 주제를 고려하여 “벚꽃 정원”으로 수정하려 합니다. 

 

작품은 1900년 전후의 러시아의 영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지의 오래된 저택은 대단히 넓은 벚꽃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곳 영지의 주인은 류보프 안드레에브나 라네브스카야라는 이름을 지닌 여인인데, 약 6년 전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지 1년 후에 라네브스키야는 프랑스로 떠나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미의 아들마저 실수로 인하여 강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주인공의 5년 동안의 외유는 가난을 체득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미의 딸, 안냐는 여주인공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작품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제 1막에서는 벚꽃 정원이 조만간 팔리리라는 여러 정황이 포착되고 있으며, 제 2막은 벚꽃 정원이 조만간 매각되리라는 것을 시사해줍니다. 제 3막은 벚꽃 정원이 팔리는 모습을 다루고 있으며, 제 4막은 벚꽃 정원이 팔린 이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2. 여주인공과 벚꽃 정원: 제 1막은 라네브스카야의 귀향으로 시작됩니다. 도착 직후에 그미를 사로잡은 것은 찬란하게 만개해 있는 벚꽃이었습니다. 이때 라네브스카야는 유년의 기억에 압도당합니다. 그미의 기억은 여러 고립된 형상으로 뇌리에 떠오르지만, 고립된 형상들은 그미의 마음속에 과거 삶의 편린들을 떠오르게 해줍니다. 그미는 처음부터 과거의 추억이 담긴 벚꽃 정원을 보존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도착 직후에 라네브스카야는 커다란 빚을 떠안게 됩니다. 몇 년 동안 가족들은 땅을 은행에 잡히고 그 돈으로 생활비를 지출해야 했습니다. 

 

그미의 남동생 가에프 역시 재물을 굴릴 줄 모르는 향락주의자로서 영지를 담보로 돈을 대출하여 남용해왔던 것입니다. 가족들은 거대한 벚꽃 정원을 매각하지 않으면, 이자를 갚을 길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로파친이라는 이름을 지닌 남자가 근처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적으로 대단한 수완을 지닌 상인으로서, 근래에 농업 경영을 통해서 상당히 많은 재산을 모은 젊은이였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로파친의 아버지가 수십 년 간 여주인공의 부친의 하인이었음을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왕년의 부잣집 딸은 오늘날 가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고, 왕년의 하인 아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신흥 갑부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3. 벚꽃 정원의 매각: 로파친은 다음과 같이 옛 친구인 라네브스카야에게 제안합니다. 즉 토지를 매각하는 대신에, 일부의 토지를 개간하여, 사람들에게 대여하는 게 어떨까? 하는 게 바로 그 제안이었습니다. 특히 여름철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휴가를 즐기고 농사짓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라네브스카야는 깊이 숙고한 다음에 결국 로파친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일부 토지를 여행객들에게 소작으로 내놓아봐야, 그저 푼돈만 벌어들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미는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에 여주인공은 한 가지 계략을 씁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안냐의 하녀로 일하던 바르야를 로파친의 신붓감으로 내세웠던 것입니다. 만일 로파친이 그미와 결혼하게 되면, 그들은 가족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벚꽃 동산은 가족의 소유로서 팔리지 않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로파친의 신분은 어느새 상승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로파친에게 바르야에 대한 호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파친은 그미와의 결혼이 주위의 경제적 문제와 묘하게 꼬여 있음을 알아차리고, 이에 대해 거부했=감을 느꼈을 뿐입니다. 어쨌든 로파친과 바르야는 서로 호감을 지니고 있음에도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벚꽃 정원은 경매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경매에 직접 가담하여 벚꽃 정원을 자신의 소유로 차지한 사람은 놀랍게도 로파친이었습니다. 작품은 이러한 과정을 소상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벚꽃 정원을 소유했던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고, 이곳의 터줏대감인 87세의 노인, 라카이 피르스 Lakai Firs만 계속 거주하게 됩니다. 라네브스카야와 그미의 가족들이 벚꽃 정원을 떠날 때, 벌목공들의 도끼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도끼 소리는 마치 과거의 세상이 사멸하기라도 하는 듯이 커다란 굉음으로 퍼져나갑니다.

 

4. 벚꽃 정원 그리고 독특한 인물들 (1): 벚꽃 정원은 작품 내에서 다양한 의미를 드러냅니다. 그것은 특히 꽃이 만개할 무렵에는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다른 한편 벚꽃 정원의 몰락은 과거 문화의 황폐화 현상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로파친이 이곳의 땅을 구매하여 벚꽃 나무를 허물게 하는 것은 무작정 부당한 처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벚꽃 정원은 더 이상 실용 가치가 없는 아름다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원은 사람들이 휴식을 즐기는 공원으로 사용될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과일 재배 농장으로 변모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로파친이 벚꽃 나무를 유실수로 바꾸지 않는다면, 아름다움은 그냥 몰락하고 말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 체호프는 여주인공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으며, 로파친의 견해에 따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주인공은 자신의 땅을 벚꽃 정원을 자신의 추억이 깃든 아름다운 공간으로 마냥 보존하려 하는 반면에, 로파친은 끔찍할 정도로 실용주의적 자세로 땅을 활용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작가는 여주인공의 딸 안냐의 태도를 동정합니다. 안냐는 벚꽃 정원에 애착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 처음에는 땅을 다른 사람에게 불법적으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법적 투쟁마저 감수하려 합니다. 가령 안냐는 나이 많은 대학생 트로미포프를 깊이 연모합니다. 여기에는 죽은 남동생 문제가 깊이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트로미포프는 과거에 죽은 남동생을 애지중지 가르치던 가정교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