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체호프의 '벚꽃 정원' (3)

필자 (匹子) 2019. 1. 25. 10:20

 

 

 

 

9. 작품에 반영된 희망의 요소: 우리는 등장인물 안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극작품에서도 그러하듯이 「벚꽃 정원」에서는 한 명의 여성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길을 개척해 나갑니다.안냐가 바로 그 인물입니다. 그미는 트로미포프를 사랑하는 17세의 처녀에 불과합니다. 

 

처음에 그미는 어머니가 벚꽃 정원의 소유주라는 사실에 대해 내심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냐는 트로미포프에게 영향을 받은 뒤에 러시아의 전통 그리고 재산에 더 이상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그미는 더 이상 벚꽃 정원에 대해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고 고백하며 이곳을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제 3막 마지막 장에서 그미는 벚꽃 정원을 상실한 슬픔에 가득 찬 어머니를 달래줍니다. “다른 곳에서 새로운 정원을 가꾸어요. 이것보다 도 풍요로운 정원을 말이에요.”

 

제 4막 마지막에서 안냐는 정말로 흔쾌히 고향을 떠납니다. 한마디로 안냐는 인간적 선량함 그리고 어머니의 매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로파친이 지닌, 노동에 대한 진지한 의지를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안냐가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가? 에 관해서는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최소한 안냐에게서 노동의 의지 그리고 새롭게 살아가려는 포부 등을 읽을 수 있으며, 또한 그미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혁명은 체호프에 의하면 피비린내 나는 투쟁 끝에 이룩하는 사회적 전복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 스스로 변하여 자신이 처한 현실적 공간을 더 낫게 만들려는 집요한 노력에 의해 이룩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착취와 억압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인간은 타인에 의존해서 사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 살아가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10. 마지막 사족의 말씀: 사람들은 체호프의 극작품이 드라마틱하지 않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사실 극작품 속에는 극중 진행과정에서 필요한 속임수라든가, 사건의 극적인 변환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관객은 작품의 진행과정은 지루할 정도로 순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벚꽃 정원」은 관객을 무조건 우수에 사로잡힐 것 같은 체념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체호프의 작품은 우리에게 동시대인들을 혼란에 빠뜨릴 거대한 시대적 전환의 면모를 예리하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등장인물은 시대적 사건에 대응하는 상징적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작품은 러시아의 거대한 혁명 이전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전환의 사회 속에서 처신하는 인간형을 노골적으로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아직도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극작품은 희극이지만,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진실은 무척 슬프고도 우울한 과거의 모습을 재현시켜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