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실러의 오를레앙의 처녀

필자 (匹子) 2022. 2. 10. 11:08

친애하는 P, 오늘은 프리드리히 실러 (1759 - 1804) 의 극작품, 「오를레앙의 처녀 (Die Jungfrau von Orlean)」에 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 작품은 1801년 라이프치히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실러는 1800년 6월에 작품 「마리아 슈투아르트」를 완성한 직후, 바로 이 작품의 집필에 들어갔습니다. 이 작품은 로트링겐 출신의 시골처녀 요한나 티바우트 (1411년경 출생)의 파란만장한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339년에서 1453년 사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오랜 시기 동안 전쟁을 치렀습니다. 프랑스 군대는 1429년에서 1430년에 연승을 거두었는데, 이 시기에 요한나는 영국군의 수중에 들어가, 1431년에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게 됩니다.

 

친애하는 P, 프리드리히 실러는 추측컨대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를 읽은 바 있고, 무명의 프랑스 역사가 피타발 (Pitaval)의 『아주 유명하고 재미있는 법적 사건들』(1792 - 1795)의 독일어 번역본을 접한 것 같습니다. 나아가 볼테르의 우스꽝스러운 서사시 「오를레앙의 처녀 La pucelle d’Orleans」 역시 실러에게 무척 친숙한 작품이었습니다. 실러는 다른 극작품과는 달리 역사적 사건에 충실한 대신에 -오를레앙의 처녀의 개인적 삶에 집착하여- 순수한 비극을 집필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작품의 서두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은 희망이라고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프랑스의 농촌 현실입니다. 요한나는 신의 사명을 느끼고, 가난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자신의 고향을 떠납니다. 프랑스의 왕 샤를르 7세는 군인들과 함께 야영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와 프랑스 장군들은 절망적인 전쟁 상황에 참담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프랑스 군대가 드디어 승리를 구가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아름답고도 강인한 프랑스 처녀가 군대를 이끌고 싸워서 승리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요한나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궁궐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신의 임무를 왕에게 전합니다. 신의 임무란 “적을 섬멸하고, 샤를르 7세에게 왕관을 씌우기 위해서 라임스로 향하게 하는 것”을 가리켰습니다. 그리하여 요한나는 군대의 맨 앞에서 열심히 싸워 승리를 구가하게 됩니다.

 

용기 넘치는 프랑스 기사들이 그미에게 구애하지만, 요한나는 이를 거절합니다. “나는 다른 일 하라고 부름을 받았어요./ 순수한 처녀만이 그것을 성취할 수 있어요./ 나는 높은 신의 뜻을 따르는 전사입니다./ 어떠한 남자에게도 신부일 수 없어요.” (제 3막 4장) 말하자면 그미는 신의 충실한 여사도로서, 자신이 어떻게 될지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 어떤 비밀스러운 흑기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는 이제 요한나에게 더 이상 전쟁에 참여하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흑기사는 아주 멋진 전사이며, 아울러 건전한 남자로서 나무랄 데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그녀는 흑기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뻔합니다. 그러나 그미는 이를 극복합니다.

 

다시 요한나는 흑기사의 말을 듣지 않고, 전쟁터에 나갑니다. 그미의 칼 앞에 수많은 영국 장수들이 피 흘리면서 쓰러집니다. 이때 그미를 대적한 영국의 전사는 라이오넬 경이었습니다. 아니, 사내가 어떻게 이렇게 준수하고 멋질 수 있을까? 비록 전쟁터인데도 라이오넬은 싸우는 대신에 자신에게 구애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요한나는 그의 용모에 반하여, 순간적으로 연정 (恋情)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그미는 라이오넬 경을 검으로 쓰러뜨리지만, 그를 차마 죽이지 못합니다. 요한나는 쓰러져 신음하는 라이오넬을 살려두고 자신의 진지로 되돌아옵니다.

 

신의 사명을 철저히 지키지 못한 이 사건으로 인하여, 요한나의 운명은 180도 전환됩니다. 샤를 7세가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고, 황제로서의 왕관을 쓰게 됩니다. 거대한 잔치를 벌이는 자리에서 요한나의 아버지는 만인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딸을 비난합니다. 즉 요한나는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이때 요한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합니다. 그미의 침묵은 많은 사람들의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만듭니다. 결국 추방당합니다. 그미는 샤를 7세의 어머니, “이자보”가 다스리는 지역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자보는 아들과 의견 대립 끝에 영국 황제와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요한나는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이때 자신의 팔에 묶인 사슬이 풀리게 됩니다. 그녀는 다시금 프랑스 군대를 위하여 전쟁터로 향합니다. 이때 그미는 영국 군인의 칼에 찔려 치명상을 당합니다. 죽어가는 그미의 눈앞에는 찬란한 천국의 상이 떠오릅니다. 그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숨을 거둡니다. “고통은 순간적이고, 기쁨은 영원하도다.”

 

친애하는 P, 줄거리가 재미있었는지요? 작품의 비극적 특성은 무엇보다도 요한나의 인간성 그리고 그미에게 주어진 계명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됩니다. 신의 계명은 “어떠한 적도 용서하지 말고, 누구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나는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합니다. 적군의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자, 그미는 계명을 어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라이오넬 경을 만나기 전까지 그미는 신의 뜻을 잘 따랐습니다. 그미는 동정심 없이 적을 섬멸했으며, 주위의 사랑 고백을 거절해 왔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미가 순간적으로 라이오넬을 만났을 때, 유혹에 사로잡힌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 그미는 신을 생각하지 않고,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인간성과 부딪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그미는 자발적인 자신의 감정에 의해서 지상의 이해관계 그리고 예언녀의 역할을 저버리게 된 것입니다.

 

요한나는 두 가지 사항 (신의 뜻을 이행하는 일, 라이오넬의 구애를 받아들이는 일)을 동시에 실천할 수 없습니다. 이로써 그미의 죽음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종결시키고 싶은 행위로서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친애하는 P, 실러의 “오를레앙의 처녀”는 다른 작가들의 동일한 작품과는 주제 상으로 약간 다릅니다. 한스 마이어가 말한 바 있듯이, 요한나는 모든 타부를 모조리 거부한 인물입니다. 탁월한 여전사가 다름 아니라, 일개 시골 처녀이며, 갑옷을 걸친 여자이고, 나아가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이며, 경건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