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2) 하인제의 아르딩겔로

필자 (匹子) 2023. 3. 3. 08:59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축복 받은 섬에서 이상 국가를 건립하다: 아르딩겔로는 다시 사랑하는 여인을 둘러싼 결투에 휘말려 사고를 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급작스럽게 로마를 떠나야 합니다. 인간과 인간은 소유물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사랑하는 임의 소유를 따지면서 서로 싸우곤 합니다. 아르딩겔로는 이러한 갈등과 질투 그리고 투쟁에 진절머리를 느낍니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하여 두 사람 사이의 편지 교환은 끝이 나고 맙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의 모험적 삶은 계속되어, 아르딩겔로가 축복 가득한 섬을 발견하는 것으로 정점을 이룹니다. 아르딩겔로는 그곳의 축복의 섬에서 이상 국가를 건설합니다. 이상 국가는 여성 공동체로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곳 사람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사랑과 연애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축복받은 섬의 기본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의 생명력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일, 혹은 욕구는 동일한 것입니다. 그것은 모둔 사물에게 고유한 권한을 부여합니다.” 하인제의 소설은 고대에 출현한 이암불로스의 『태양 섬』 그리고 이에 착안한 캄파넬라의 유토피아 『태양의 나라』를 연상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인습적인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가 철폐되어 있고, 여성 공동체의 찬란한 생활방식이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7. 질풍과 노도와는 다른 방식의 갈망, 예술을 통한 찬란한 삶의 선취: 이로써 분명히 나타는 것은 지상의 천국의 가능성, 바로 그것입니다. 하인제의 작품은 질풍과 노도가 지니고 있는 염세주의를 떨치고 밝고 향락적인 요소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현실적이냐, 몽환적이냐? 하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이 주어진 현실에서 얼마나 부자유를 떨치고 자유로운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질풍과 노도의 문학이 주어진 계율에 대한 격정적인 저항에서 하나의 방법론을 찾았다면, 하인제는 무엇보다도 찬란한 미의 영역에서 자유로운 삶의 본질을 발견하려고 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자유를 찾는가? 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유의 본질 내지 자유로운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상을 찾는 과업입니다. 하인제는 이를 사랑의 삶 그리고 예술에서 발견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삶과 예술 속에는 하인제에 의하면 이미 미래의 개인적 사회적 행복이 선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8. 작품은 발전 소설 그리고 사건 소설로 명명될 수 있다.: 주인공이 여러 과정을 겪는다는 점에서 혹자는 "아르딩겔로"를 교양소설로 명명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스스로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교양소설 속의 주인공은 으레 참담한 환경에서 여러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변모 발전시키지 않습니까? 그래서 작품은 발전소설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확고한 이념을 미리 설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르딩겔로』는 사건 소설로 명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괴테는 향락주의적 특성 때문에 하인제의 소설을 나쁘게 여겼습니다. 실러 역시 『아르딩겔로』를 “예술적 품위가 결여된 작품”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하인제의 작품은 실러에 의하면 “단순한 욕망만 끓어오르게 하는 시적 비약”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에 비하면 낭만주의자들 그리고 하이네 등은 하인제의 소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자신의 시, 「빵과 포도주 Brot und Wein」를 친구인 빌헬름 하인제에게 헌정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카를 F. 구츠코 (Gutzkow)의 『발리, 절망하는 여인』 (1835)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습니다.

 

9. 작품의 가치: 니체 역시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인제의 소설을 거론했습니다. 구동독의 연구가들은 『아르딩겔로』를 도래하는 “프랑스 혁명의 시대 이전에 나타난 모반자”라고 평했습니다. 요약하건대 하인제의 작품은 주어진 현실의 제반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대신에 마치 만화경 속과 같은 휘황찬란한 현실을 묘사하였습니다. 그것은 일견 도덕과는 전혀 다른 찬란한 시테라 섬에서의 선남선녀의 향유의 삶을 연상시킬 정도로 방종하게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엄청난 현실 비판의 자세가 은폐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르딩겔로의 이상 국가는 폭정의 억압 뿐 아니라, 위로부터 하달되는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이라는 계율의 억압을 처음부터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작품은 사변적이고 주어진 인습에 충실한 독일 문학의 전통을 거부하기에 충분한 정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