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괴테의 에그몬트

필자 (匹子) 2021. 10. 30. 11:0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7 - 1832)의 5막극 「에그몬트」는 1788년에 발표되었으며, 1791년 3월 31일 바이마르에서 처음 공연되었습니다. 작품은 1775년에 집필되어, 1787년까지 지속적으로 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작품 자체가 주제의 측면에서 일원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릅니다. 괴테는 예수회 교도인 파미아누스 스트라다 (F. Strada)의 "10년간의 벨기에 전쟁" (1651) 그리고 에마누엘 폰 메테렌 (E. v. Meteren)의 "네덜란드 전쟁의 고유한, 완성된 기록" (1627)을 읽고 작품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극작품의 등장인물은 품위와 자유롭고도 관대한 정신을 지닌, 그러나 현실 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추상적인 인물 에그몬트 백작입니다. 그는 죽음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력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용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그몬트」를 통해서 괴테는 역사극을 기술하려는 게 아니라, 하나의 성격극을 완성하려고 했습니다. 에그몬트 백작의 성격은 강직하다기보다는 꽉 막혀 있다고 말하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 등장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의 성격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제 1막 첫 장면에서 주인공의 인물에 관한 내용이 제 3자에 의해서 묘사되고 있습니다. 브뤼셀의 수공업자 그리고 군인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에그몬트 휘하에서 프랑스 군대에 대항하여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서 주어진 현실적 상황이 은근히 암시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에스파냐 왕의 지배하에 있는데, 탁월한 여자 총독 마르가레타 폰 파르마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그미는 수사들과 힘을 합해서 독일 내의 저항 세력, 특히 루터의 신교주의를 억압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교도들은 에스파냐로부터의 독립을 애타게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에그몬트의 입장입니다. 그는 신교도로 자처하지만, 실제로 에스파냐 권력층과 조우합니다. 여자 총독은 에그몬트에 대해서 호의적인 태도를 베풉니다. 왜냐하면 에그몬트의 “경쾌함, 자유로운 삶 그리고 선한 견해” 등은 여러 모로 이용가치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르가레타는 에그몬트를 높이 평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합니다. 다른 한편 에그몬트는 네덜란드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손상될까 몹시 근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이러한 근심은 몹시 추상적이며, 냉정한 현실 감각에서 비롯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에그몬트의 자유 예찬론은 어쩌면 신교의 모반 행위보다도 더 강력하게 총독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주인공의 연인이자 낮은 시민 계급 출신인 클레르헨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자유만 부르짖는 에그몬트를 몹시 걱정합니다.

 

제 2막에서 에그몬트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앞장에서 나타난 바 있듯이 주인공은 모순된 존재로서 세 가지 측면에 걸쳐 환경과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인민들로부터 은근히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에그몬트 백작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구세주”처럼 영접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권한을 쟁취하기 위해서 백작을 이용하려고 하는데, 정작 백작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에그몬트는 자신의 고향에서 대단한 지지를 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비서와 대화를 나누면서,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의 행위를 관대하게 처벌하려고 합니다. 백작은 고향 사람들이 어떠한 이유에서 소란을 일으켰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에그몬트는 스스로 에스파냐 왕의 신하로 자처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권력자로부터 얼마나 위협 당하고 있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백작의 이러한 어정쩡한 태도는 빌헬름 폰 오라니엔과의 토론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제 2장의 가장 중점적인 내용은 에그몬트와 비서의 대화에서 나타납니다. 비서는 에그몬트의 어정쩡한 태도에 대해서 “천진난만한 아이, 그래 아이야, 아이 이상은 못된다니까!!”하고 몰래 중얼거립니다. 뒤이어 친구 오라니엔이 등장하여 주인공에게 경고합니다. 즉 친구는 “자신의 지방을 떠나라”는 여자 총독의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라니엔의 견해에 의하면 주인공이 일단 도피하는 게 주어진 처지에서는 최선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알바 공작이 네덜란드의 지도자들을 모조리 체포하리라고 합니다.

 

실제로 알바 공작은 에그몬트에게 초대장을 보낸 바 있습니다. 오라니엔은 알바 공작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인공에게 권고하지만, 에그몬트는 이를 단호하게 묵살해버립니다.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오히려 알바 공작의 노여움을 부추기며, 이는 전쟁의 빌미가 된다는 게 바로 주인공의 답변이었습니다.

 

끔찍한 파국은 이미 제 2막 마지막 장면에 고스란히 주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극예술의 규칙과는 달리 제 3막은 지엽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작가, 괴테는 제 3막에서 주인공 에그몬트의 삶을 규정하는 두 가지 세력, 즉 정치 그리고 사랑을 제각기 다른 장면을 통해서 대립시키고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에서 여자 총독, 마르가레테는 역사적 순간을 결정짓습니다. 즉 그미는 골치 아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총독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그미의 비서 마키아벨에게 알립니다. 그러나 에그몬트는 낮은 계급 출신의 연인, 클레르헨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유유자적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음 장면에서 어떤 극도의 긴장감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즉 여자 총독, 마르가레테의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결단으로 인하여 네덜란드는 순식간에 전쟁을 치러야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에그몬트는 너무나 태연하고도 유유자적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온 알바 공작은 초대에 응하려고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에그몬트를 체포하게 합니다.

 

친구 오라니엔은 떠나기 전에 끝내 주인공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것을 편지에 남깁니다. 알바 공작 그리고 그의 부하 사이의 대화는 다음의 사항을 알려줍니다. 즉 에그몬트 백작의 목숨이 끝나게 되었다는 게 바로 그 사항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정치적으로 어떠한 견해를 피력하든 간에, 에그몬트의 처형은 이미 기정사실화 되어 있습니다. 알바는 절대주의의 권력을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끔찍한 형 집행도 용납될 수 있다는 게 알바의 지론이었습니다.

 

알바는 에그몬트와의 대화를 통해서 단 한 가지 사항을 확인합니다. 에그몬트와 같은 네덜란드의 토착 세력들은 억압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며, 그저 자신들의 전통적인 특권을 유지하려고 애쓸 뿐이라는 사항 말입니다. 다른 한편 에그몬트는 알바에게 자유에 대한 자신의 추상적인 견해를 피력합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바 공작의 부하가 그의 칼을 빼앗았을 때 비로소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습니다.

 

제 5막에서 주인공 에그몬트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주인공은 사태의 심각성만을 의식했을 뿐, 자신의 이상적 국가관이 알바 공작의 권력 앞에서 전혀 먹혀들지 않고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다만 주인공의 애인, 클레르헨만이 거의 정신 나간 상태로 거리를 누비면서, 사람들에게 폭동의 필요성을 외칩니다. 거의 절망적으로 그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용기 그리고 위험을 떨치려는 과단성이라고 고함지를 뿐입니다. 에그몬트의 구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클레르헨은 독약을 먹고 자살합니다.

 

알바 공작의 아들, 페르디난트는 클레르헨의 죽음을 주인공에게 전합니다. 바로 그때 에그몬트는 비로소 자신이 처형되리라는 것을 예감하게 됩니다. 결국 페르디난트는 에그몬트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가 잘못된 것임을 안정하며, 주인공 에그몬트를 사면합니다. 그러나 에그몬트는 자신의 사면을 어처구니 없게도 권력자의 선한 행동으로 받아들입니다. 화를 면하게 된 주인공은 순간적으로 잠이 듭니다. 꿈속에서 자유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유는 놀랍게도 죽은 클레르헨의 면모를 띄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자유는 주인공에게 월계수를 건네줍니다.

 

마지막 장면은 실러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한 느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물론 실러는 에그몬트 연극 공연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생전에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실러에 의하면 에그몬트 연극은 여자 총독의 태도 그리고 클레르헨의 행위 등을 전혀 부각시키지 못했는데, 이는 작품의 주제를 약화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괴테 역시 실러의 이러한 비난을 용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괴테는 정치적 측면 그리고 개인적 주관적 측면 사이의 관련성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괴테는 에그몬트를 통해서 바이마르 궁전에서의 실제 정책을 은근히 비판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