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신화와 유토피아, 그 일치성과 불일치성 (1)

필자 (匹子) 2022. 4. 4. 11:43

1. 고대 유토피아의 두 가지 방향: 친애하는 L, 신화와 유토피아 사이의 관련성은 아직도 학문적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서양의 신화가 과연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유토피아와 상관관계를 지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찾기 어렵습니다, 서양의 학자들은 고대의 유토피아를 구명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의 방향을 추적해 왔습니다.

 

첫째로 유토피아의 모범으로 인정받고 있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플라톤의 『국가』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데, 이는 고대의 많은 범례에서 “국가주의의 유토피아 archistische Utopie”의 틀을 추적하도록 자극합니다. 다시 말해 더 나은 삶은 어떤 바람직한 국가의 틀 내에서 실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토피아의 근원의 모델은 플라톤의 『국가』가 아니라,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발견됩니다. 그 까닭은 플라톤의 작품 속에 계층주의 내지 관료주의의 특성 그리고 결정론적인 요소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해서 우리는 이후의 플라톤의 장에서 자세하게 언급할 것입니다.)

 

둘째로 고대의 유토피아의 수많은 범례 그리고 그 기능은 플라톤의 『국가』 속에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고대의 신화 속에서 상당 부분 발견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황금의 시대에 관한 고대인들의 갈망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황금의 시대에 관한 갈망이 주로 가난한 천민들에 의해서 유래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고대의 특권층에 속하는 관료주의자들은 대부분 글을 알고 있었는데, 굳이 “놀고먹는 나라 Schlaraffenland”에 관해서 꿈꿀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점이 어째서 가난과 착취가 없는 찬란한 문헌이 고대 사회에 많이 발견되지 않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2. 신화와 유토피아 사이의 관련성: 신화와 유토피아 사이의 기능을 추적할 때 우리는 “신화에 반영된 유토피아의 상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으며, 유토피아 연구에서 어떠한 척도로 규정될 수 있는가?”하는 물음과 봉착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화와 유토피아의 사고 사이의 관련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신화와 유토피아를 구분할 때 분명히 시간이라는 전제조건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신화는 주로 고대 내지 중세 사회에서 태동한 신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자고로 유토피아는 어떤 더 나은 삶에 관한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꿈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꿈은 특정 인간이 처해 있는 구체적 현실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유토피아가 이러한 유형의 꿈이라고 하더라도, 나중에 부분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충분히 주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토피아 속에 도사린 실현의 가능성이 나중에 실패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결과론적으로 추적하여 모든 가능성을 폄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신화는 어떤 다른 특성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신화 속에도 인간의 원초적 갈망이 도사린 것은 사실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신화는 부분적으로 유토피아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화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토피아와는 전혀 이질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 신화와 황금의 시대를 추적하는 동안 우리의 일차적 관심은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화 속에 담겨 있는 고유한 특성은 과연 무엇일까요?

 

3. 황금의 시대, 태고에 관한 찬란한 상: 물론 고대 사람들도 더 나은 세상에 관한 꿈을 꾸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동양의 대동 (大同)에 관한 사고 그리고 무릉도원의 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서양의 경우 황금의 시대, 아틀란티스 그리고 성서의 에덴동산 등에 관한 신화가 범례로 채택될 수 있습니다. 헤시오도스는 이미 기원전 700년경에 황금의 시대에 관한 신화를 언급했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가장 오래된 상으로서 고대의 문학 작품에서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 사람들의 더 나은 세상에 관한 꿈을 모조리 나열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중시해야 할 사항은 신화와 전설 속에 도사린 고대인들의 갈망을 일차적으로 이해하는 일일 것입니다. 황금의 시대에 관한 이야기는 기원전 3 세기에 활약한 고대 작가, 아라토스 Aratus에게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플라톤 역시 황금의 시대에 관한 다양한 버전을 알고 있었으며, 로마 시대에 이르러 오비디우스 역시 걱정 없는 삶을 가능하게 했던 태고 시절의 찬란한 삶을 자신의 『변신 이야기 Metamorphoses』에서 시적으로 묘사한 바 있습니다. 찬란한 삶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성서에 언급되는 에덴동산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아무런 노력과 수고 없이 얼마든지 지상의 열매를 따먹고 살아갑니다.

 

4. 죽음 이후의 상과 종교의 탄생: 인간은 누구나 안락한 삶을 갈구합니다. 이러한 삶은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기를 애타게 바랍니다. 그리하여 나타난 것이 바로 죽음 이후의 세계 그리고 영생에 대한 갈망의 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시인들은 광대무변한 자연 앞에서 거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며, 어떤 믿음을 통해서 그들의 근심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달래려고 하였습니다.

 

종교가 탄생한 것도 바로 이러한 불안의 극복 그리고 영원히 그리고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은 인간의 갈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영생에 대한 갈망이 어쩌면 영원한 삶을 꿈꾸게 했으며, 이로 인하여 종교가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테면 기원전 2000년경에 나타난 길가메시 Gilgamesh의 서사시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과 같은 태고의 문명은 영원한 삶을 갈구하는 믿음과 종교 없이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신, 죽음 그리고 신앙 등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찬란한 삶에 대한 기억은 태고 시절의 삶으로 떠오르고, 찬란한 삶에 대한 기대감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