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신화와 유토피아, 그 일치성과 불일치성 (2)

필자 (匹子) 2022. 4. 5. 10:47

5. 축복의 섬에 관한 문헌들: 일단 우리는 유토피아와 관련하여 축복의 섬에 관하여 언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대 문학은 황금의 시대에 관한 찬란한 상으로서 어떤 축복의 섬을 자주 형상화하였습니다. 물론 호메로스 또한 기이한 섬을 묘사하였습니다. 요정 치르체가 머물고 있는 아이올리아 섬, 외눈박이 거인이 살고 있는 섬 그리고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는 연꽃 섬 등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차례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축복의 섬은 기원전 2세기 루키아노스 Lukian에 의해서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되었습니다.

 

축복의 섬은 루키아노스에 의하면 대서양 어디엔가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섬에는 육체 없는 에테르와 같은 존재들이 살고 있는데, 수도의 물품들은 온통 금과 은으로 이루어져 있고, 건물의 벽에는 온갖 보석들이 박힌 채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밀이 자라는 들판에서는 완성된 빵이 저절로 튕겨져 나옵니다. 루키아노스는 그밖에 디오니소스 섬을 묘사하기도 하였습니다. 디오니소스 섬은 포도나무로 뒤덮여 있는데, 그곳 개울에서는 언제나 사향포도주가 흐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고대 문학에서 섬이 항상 축복의 공간으로 묘사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 Vergil는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 망망대해 속의 어떤 섬을 악덕과 적개심, 폭력과 투기 내지는 질투가 자리하는 공간으로 묘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주인공 아이네이스는 지하 명부의 하데스 세계, 영웅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상향을 차례대로 방문하고 있습니다.

 

6. 아틀란티스에 관한 전설: 솔론 Solon과 밀레토스 출신의 디오니시우스 Dionysus는 이상적인 사회에 관한 가장 막강한 원형으로서 아틀란티스를 서술하였습니다. 나중에 플라톤은 이에 관해서 보고하고 있습니다. 약 9000년 전에 아테네 그리고 아틀란티스 왕국 사이에 거대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아틀란티스 국가는 지브롤터 해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약 5800 평방 마일의 거대한 섬이었다고 합니다. 거대한 권력의 제국을 형성한 아틀란티스는 심지어는 이집트와 그리스를 위협할 정도였는데, 거대한 지진으로 인하여 섬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습니다.

 

섬의 수도 아틀란티스는 거대한 곡식 창고 그리고 막강한 병기고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출현한 문학 작품들이 묘사한 바에 의하면 아틀란티스의 학자들은 인위적으로 음식과 음료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자신의 텔레파시를 활용하여 찬란한 황금의 시대를 떠올리면서 모든 재화와 곡물을 풍요로울 정도로 마련하였습니다. 가라앉은 섬 내지 가라앉은 대륙에 관한 신화는 놀랍게도 오랫동안 전해졌으며, 유토피아의 이상 국가에 대한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플라톤은 『국가』를 집필할 때 언제나 오래 전에 대서양에서 가라앉은 아틀란티스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7. 주어진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가상적인 상: 자고로 인간은 주어진 현재의 어떤 무엇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무엇을 갈망합니다. 찬란한 장소에 대한 인간의 꿈 역시 당사자가 처한 처지가 힘들고 각박하기 때문에 뇌리에 떠올려진 것입니다. 마치 거울의 상 앞에는 언제나 실체가 자리하고 있듯이, 유토피아의 상 배후에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온존하는 나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축복의 섬 내지 아틀란티스 등과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신화 등을 주어진 현실적 정황으로부터 구분하여 독립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설과 신화의 내용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간에 주어진 현실의 문제를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별 산화들과 전설들을 그 자체 폐쇄적으로 고립시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신화와 전설이 출현한 현실적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그것들을 추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신화와 전설이 저자 미상인 경우가 많고, 우리가 신화 내지 전설이 출현하게 된 배경으로서의 주어진 구체적 현실에 대한 조건을 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문헌이 보존되고 있는 경우 신화적 내용이 어떤 바탕 하에서 출현하였으며, 무엇을 위해 등장하였는가? 하는 사실을 우리는 기껏해야 부분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플라톤의 『국가』에도 신화적 내용이 등장합니다. 어쩌면 플라톤은 주어진 현실적 상황, 이를테면 특수한 사회 계층의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 이를테면 제국주의 정책을 위한 국가의 선동적 조작 등을 비판하기 위해서 신화적 내용을 도입하기도 하였습니다.

 

8. 유토피아와 신화 사이의 차이점 (1): 일단 우리는 유토피아와 신화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서 세 가지 사항으로 언급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차이점은 신화가 지니는 숙명론적 특징 그리고 유토피아가 지니고 있는 변화 가능성의 특징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토마스 모어 이후에 묘사된 사회 유토피아는 황금의 시대의 상 내지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을 만끽하는 천국의 상을 도입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추적하는 것도 아닙니다.

 

헤시오도스는 인간의 몰락에 관한 핵심적 모티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황금의 시대 다음으로, 은의 시대 그리고 철의 시대가 이어지며, 네 번째, 다섯 번째의 시대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지금은 인류는 철의 시대를 지나치고 있다. 인간은 낮 동안에는 결코 힘든 노동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Hesiod: 82). 헤시오도스는 자신의 주어진 현실을 고려하면서 모든 것을 기록했으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신화적 역사적 유형의 파멸 이론입니다. 이러한 이론에 의하면 태초에는 찬란한 삶이 존재했으며, 역사가 진척되는 동안 인류의 삶은 파멸로 향하여 나락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