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레싱의 민나 폰 바른헬름 (2)

필자 (匹子) 2021. 10. 4. 08:52

7. 레싱 문학의 위대함은 극작품의 구성에 있다. 레싱 문학의 강점은 한마디로 말해서 극작품의 구성에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은 텔하임 소령과 민나 사이의 얽혀있는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로서 우리는 막간극을 들 수 있습니다. 레싱은 막간을 이용하여, 프랑스 장교, 리코 델라 마리니예를 등장시킵니다. 막간 장면을 통해서 레싱의 희극은 오히려 비극적 모티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코는 우연히 여성들의 방에 잘못 들어와, 텔하임 소령을 찾는다고 말합니다. 텔하임에게 전해줄 소설 작품 한 권을 들고 왔는데, 만약 그가 소설을 읽으면, 매우 기뻐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리코는 자신이 텔하임과 마찬가지로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상실하고, 거지 신세가 되었다고 꾸며댑니다. 프랑스 장교는 텔하임의 처지를 원용하여 민나로부터 후원금을 뜯어내려 한 것이었습니다. 리코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돈을 받아 챙깁니다. 이 장면은 우스꽝스럽기 이를 데 없는데, 극작가는 이 장면을 통하여 고트셰트 연극이론을 은근히 비판하려 하였습니다.

 

8. 민나의 기지: 놀라운 것은 극작품의 여주인공이 놀라운 기지를 발휘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미는 텔하임 소령을 찾아가서 다음과 같이 거짓으로 말합니다. 즉 자신 역시 가정적으로 불행해졌으며, 어디에도 기댈 곳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텔하임이 등장하기 전에 민나는 여관 주인에게서 구입한 반지를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자신의 반지를 어딘가에 깊숙이 감추어 놓습니다. 주위의 친구들은 민나와 결혼하여 자신의 행복을 누리라고 텔하임에게 종용하지만, 그는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않습니다.

 

이때 민나는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텔하임에게 되돌려줍니다. 그러면서 그미는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즉 텔하임이 결혼을 포기함으로 인하여 삼촌으로부터 한 푼의 유산도 못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민나는 텔하임을 배반자라고 책망합니다. 약속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내가 배반자가 아니고 무엇인가요? 하고 일갈합니다. 이때 텔하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당신의 불행은 나를 몹시 분개하게 만들었습니다. (...) 당신을 위해 어떠한 일이라고 감행할 만큼 나는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어요.”

 

9. 모든 우여곡절이 해결되는 해피엔딩: 텔하임은 민나를 구제하려는 기개에 사로잡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는 수비대장 파울 베르너를 찾아가서 거액을 빌립니다. 그 돈이 있으면, 자신이 저당 잡힌 반지를 되찾을 뿐 아니라, 가난하게 된 민나 폰 바른헬름을 도울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이때 텔하임은 리코를 통해서 중편 소설을 수령하게 되고, 왕궁으로부터 공문 한 통을 받게 됩니다. 편지에는 텔하임이 자신의 권한을 되찾게 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소령의 직책 및 귀족의 신분이 바로 그 권한이었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는데도, 민나는 모든 것을 모른 척하면서, 자신의 잔꾀를 끝까지 비밀에 붙입니다. 텔하임 소령은 민나의 삼촌이 찾아와서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을 때에 이르러 비로소, 모든 내막을 간파하게 됩니다. 민나는 약혼반지를 다시 자신의 손가락에 끼게 됩니다. 결국 사람들은 두 쌍의 결혼식을 앞두게 됩니다. 텔하임 소령은 꿈에 그리던 약혼녀 민나와 결혼하게 되고, 주인공의 친구인 파울 베르너는 민나의 하녀인 프란치스카와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11. 비극적 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희극적 요소: 친애하는 L, 작품이 재미있었는지요? 그러나 문학 작품의 가치는 줄거리와 주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작품의 진행 과정에 의해서 판가름 나는 법입니다. 특히 레싱의 극작품은 더욱 그렇습니다. 괴테는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 제 7권에서 이 작품을 “7년 전쟁에 대한 가장 훌륭한 문학적 결산”이라고 총평하기도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극작가는 극의 형식, 표현 그리고 전개 과정 등을 세심하게 고려했습니다.

 

관객은 인간적 결함 그리고 악덕에 대해 더 이상 조소하지 않았습니다. 레싱은 자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했습니다. “소극은 오로지 사람들을 웃기게 만들려 한다. 구슬픈 희극 작품은 오로지 관객을 감동시키려 한다. 나는 두 가지 모두를 원한다.” 실제로 관객은 등장인물의 행동, 기지 그리고 해학 등을 접하고 공연 중에 자주 웃음을 터뜨리곤 하였습니다. 대사의 내용은 매우 기발하고 의미심장한 유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천박한 위트가 아니라, 삶의 깊은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위트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관객은 “배”로 웃지 않았고, “머리”로 웃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레싱의 작품은 문학적으로 그리고 연극사적으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2. 분단의 아픔 그리고 제반 갈등을 극복하는 요소는 무엇보다도 사랑이다: 또 한 가지 사항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전쟁을 고발하고 평화주의를 신봉하는 레싱의 자세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당시의 독일은 수많은 공국들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부산과 광주의 시민이 7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였다고 가정해 보세요. 작센과 프로이센은 같은 민족인데, 7년 동안 서로 처절할 정도로 전쟁을 치른 것입니다. 레싱은 같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의 문제를 프로이센 남자와 작센 여자 사이의 만남과 이별의 문제로 다룬 것입니다.

 

이러한 문학적 수법은 이후에 반복됩니다. 200년 후에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i』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여자, 로자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팔레스티나 출신의 모모를 키웁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티나 사이의 민족적 증오의 문제를 구명하려고 했습니다. 친애하는 L, 우리는 레싱의 작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자기 앞의 생”에 관한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 앞의 생은 세상에서 증오하는 인간을 사랑으로 끌어안는 연습의 과정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민나 폰 바른헬름의 연극 상연을 CD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13. 작품 수용의 역사 (1): 「민나 폰 바른헬름」이 1767년 9월 30일에 함부르크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을 때, 대부분의 관객들은 거의 열광적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함부르크의 시 당국은 이 작품에 공연 금지처분을 내렸습니다. 극작가는 은근히 군인의 명예를 비아냥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공연금지의 처분은 몇 달 후에 해제되었습니다. 18세기 후반의 문학 연구가들은 레싱의 작품을 명예와 사랑의 대립관계로 해석하였습니다. 텔하임과 같이 꽉 막힌 군인은 어떠한 타협도 용인하지 않는 군인의 전형이며, 이로 인하여 작품 내에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이 작품을 사회적 신분구조의 측면에서 해석하곤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텔하임 소령이 자신의 직위와 신분을 일시적으로 상실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왕의 사절이 재판 진행을 파기하고, 텔하임의 신분을 보장했을 때, 모든 갈등 구조는 일거에 해결되고 맙니다. 아닌 게 아니라 텔하임 소령은 장교의 명예를 중시하고 도덕적 위신을 앞세우는 사람입니다. 그는 알거지이지만 민나의 도움 그리고 파울 베르너의 도움을 거절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사내입니다. 놀라운 것은 민나가 외삼촌으로부터 거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은 왕의 사절단의 전갈과 동시적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입니다.

 

 

14. 작품 수용의 역사 (2): 20세기에 이르러 「민나 폰 바른헬름」은 다른 각도에서 해석되었습니다. 가령 작품은 2005년 12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안드레아 브레트 Andrea Breth의 연출로 새롭게 공연되었는데, 연출가는 작품을 현대적 의미로 각색하여 이 공연에서 군인의 자존심과 명예가 아니라, 돈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구성하였습니다. 이로써 연출가는 인간의 삶에 중요한 것이 돈이 아니라, 깊은 우정 그리고 참다운 사랑이라는 점을 강하게 부각시켰습니다. 나아가 레싱의 작품은 뮤지컬 극, 영화 그리고 방송극으로 개작되어 지속적으로 공연되고 있습니다. 2000년 12월 하일브론에서 뮤지컬 공연이 초연되었는데, 2001년 4월까지 무려 22회에 걸쳐 지속적으로 공연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최근에 윤도중 교수에 의해서 번역되어 지만지 고전선집 (0310)으로 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