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레싱의 함부르크 연극론

필자 (匹子) 2021. 8. 23. 14:41

(1) 배우와 연출가는 왜 그리 교만한가?: 친애하는 K, 오늘은 레싱의『함부르크 연극론』에 관해서 논하기로 합시다. 이 글이 연출가를 꿈꾸는 당신의 미래에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레싱이 1767년에서 1769년 사이에 집필한 연출 및 극예술 비평에 관한 문집입니다. 이 작품은 1767년 4월 22일 함부르크 국립 극장이 건립된 것을 계기로 씌어졌습니다. 레싱은 1766년에 발표된 『라오콘』에서 극예술을 회화 예술과 비교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극작품은 “일시적인 회화 (transitorische Malerei)”라고 규정되고 있습니다. 극작품이란 레싱의 견해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분명하고 정확한, 특수한 규칙에 따라 공연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배우와 연출자들은 실제로 교만과 허영 때문에 이러한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레싱은 몹시 분개한 바 있습니다.

 

(2) 독일의 낙후한 연극 상황: 레싱은 당시에 공연되는 52편의 극작품을 연구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그 가운데 34편은 프랑스 극작품인 반면, 불과 18편만이 독일 극작품이었습니다. 그것도 18편 가운데 비극 작품은 고작 3편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크로네크 (Cronegk)의 「올린트와 소프로니아」, 바이세 (Weisse)의 「리처드 3세」그리고 레싱의 「사라 삼손 양」이었습니다. 나머지는 깊이 없는 청년 희극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문제는 고트셰트의 연극론 이후로 프랑스의 의고전주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코르네이유, 볼테르 그리고 프랑스 3류 극작품들이 그것들이었습니다.

 

(3)일의 정치적 후진성 그리고 프랑스 의고전주의 비판: 친애하는 K, 당시의 독일은 수많은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낙후함을 면치 못했습니다. 독일의 문화는 나중에 19세기 말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합니다만, 레싱의 시대에는 프랑스의 문화에 훨씬 뒤져 있었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레싱이 어째서 프랑스 의고전주의를 배격하고, 영국의 셰익스피어를 추종했는가? 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물론 레싱은 무조건 프랑스 의고전주의 극작품을 전적으로 매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령 그는 프랑스의 극작가 피에르 클로드 니브 데라 쇼스 (P. C. Nevelle de la Chausee)를 시민 비극의 선구자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데니스 디드로의 「가정의 아버지」를 가장 훌륭한 희극 작품으로 간주했으니까요. 어쨌든 당시의 공연계에서 주름잡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프랑스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4) 도비냑의 프랑스 연극 이론 비판: 레싱은 독일 연극이 아직도 만개하지 않았음을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발전할 독일 연극을 위해서는 프랑스 연극의 이론과 실제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레싱은 가령 라신 (Racine), 코르네유 (Corneille) 그리고 볼테르의 극작품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프랑스 연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에 묘사된 연극의 특성을 나쁘게 수용했는데, 이는 레싱의 견해에 의하면 상투적이며, 형식적인 내용을 답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레싱은 프랑스 극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만을 비판한 것은 아닙니다. 나아가 그는 프랑스 의고전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F. H. 도비냑 (D’Aubignac)이 1657년에 발표한 책『연극의 실제 (Pratique du théatre)』를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도비냑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거론한 세 가지 일치되는 특성을 이른바 3일치 법칙 (시간, 장소, 행동)을 철칙으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5)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은 잘못 수용되었다.: 따라서 레싱은 코르네이유의 극작품과 논문을 예로 들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극론이 프랑스 의고전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잘못되게 수용되었는가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연극의 3일치 법칙은 극작가가 반드시 고수해야 할 철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비극은 무엇보다도 동정심 (ελέος)과 공포 (φόβος)로써 사람들에게 작용합니다.

 

레싱 역시 이를 수용합니다. 여기서는 공포라는 단어 대신에 레싱은 프랑스어인 “경악 (terreur)”이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르네이유는 동정심과 공포를 서로 다른 두 개의 감정으로서 상호 교환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서로 대치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비극은 오로지 “경악”만으로 얼마든지 작용할 수 있다는 논리가 아닌가요? 레싱은 바로 코르네이유의 바로 이 점을 근본적 하자로 삼았던 것입니다. 레싱은 코르네이유의 이러한 태도를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을 잘못 수용한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6) 동정심과 공포는 무엇인가?: 레싱은 동정심을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이는 레싱의 친구이자 철학자인 모제스 멘델스존과의 『인간 감정에 관한 서한문집 (Briefen über Empfindungen)』(1755)에 씌어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동정심이란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어떤 불행에 대한 혐오감이 뒤섞여 있는 감정이다.” 이에 비하면 공포는 레싱에 의하면 “우리 자신이 극작품에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과의 유사할지 모른다는 예견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레싱에 의하면 동정심과 공포는 결코 구분되는 감정 상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동정심을 생겨나게 하는 근본적인 요소는 오로지 그러한 공포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동정심과 공포로 인해서 나타난 정서적 혼란은 긍정적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극작가는 관객으로 하여금 비극적 영웅과 스스로 동일하다고 느끼도록 조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관객은 어떤 순화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7) 완전히 사악하지도, 완전히 선하지도 않는 영웅이 비극의 주인공이다.: 비극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하나의 영웅을 필요로 하는데, 그는 전적으로 착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사악한 인간형도 아니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레싱은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적당하지 않는 인물로서 기독교 순교자라든가, 광포한 괴물 같은 악한을 들고 있습니다.

 

비극작가가 자신의 영웅을 반쯤 착하고 반쯤 악하게 묘사할 때, 작품의 성공을 거둘 확률은 높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물을 통하여 관객은 동정심과 공포를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영국의 시민주의 극작품, 프랑스의 라모트-우다르 (Lamotte-Houdar), 스덴 (Sedaine), 피에르 클로드 니브 데라 쇼스 (P. C. Nevelle de la Chausee)의 극작품들 그리고 자신의 「사라 삼손 양」그리고 「에밀리아 갈로티」등의 작품을 시민 비극의 전형적 작품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8) 연극의 삼일치 법칙은 철칙이 아니다.: 나아가 레싱은 연극의 삼일치의 특성이 고대 비극에서도 결코 하나의 철칙으로 간주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는 행위의 일치를 거론하면서 “하루”라는 기간을 그저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코르네유는 연극의 삼 일치를 하나의 바꿀 수 없는 철칙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레싱은 극적 개연성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볼테르에 대해서도 사정없이 채찍을 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레싱은 카타르시스에 관한 논의를 통하여 코르네이유의 견해를 사정없이 비난했습니다. 예컨대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에 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비극이란 동정심과 공포를 통하여 그러한 이와 유사한 열정을 순화시키게 하는 어떤 행위의 모방이다.” 코르네유가 극작품에서 나타나는 모든 열정이 하나도 빠짐없이 순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레싱은 순화되어야 할 대상을 오로지 동정심과 공포라고 규정합니다. 왜냐하면 동정심과 공포는 극중 등장인물의 감정이 아니라, 관객이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9) 그러면 함부르크 연극론의 가치는?: 친애하는 K, 이제 레싱의 작품 속의 내용 그리고 작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유추하시겠지요? 상기한 내용을 고려할 때 레싱의 『함부르크 연극론』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독일 시민 비극의 이론적 논거를 위한 초석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진보적 독일 시민으로 하여금 더 이상 궁정의 허례허식의 연극 질서를 따르지 말고, 비극을 나름대로의 각도에서 비판적으로 이해하도록 집필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