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레싱의 안티 괴체

필자 (匹子) 2021. 8. 23. 14:36

레싱의 "안티 괴체. 괴체 목사의 자유 기고문에 대한 필연적 기고문 (Anti-Goeze. Das ist Notgedrungene Beyträge zu den freywilligen Beyträgen des Herrn Pastors Goeze)"는 함부르크의 주목사, 요한 멜히오르 괴체 (1717 - 1786)의 글을 반박하는 신학적 논쟁의 글이다. 이 글은 1778년 4월에서 7월 사이에 씌어졌다. 그러나 이 작업은 계속 추진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1778년 7월 13일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레싱이 더 이상 반박문을 쓰지 못하도록 조처했기 때문이다.

 

논쟁의 발단은 17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부르크 출신의 동방 연구가, 헤르만 사무엘 라이마루스 (1694 - 1768)는 아주 방대한 책, "이성적인 신 예찬자를 위한 변호 혹은 옹호의 글 (Apologie oder Schutzschrift für die vernünftigen Verehrer Gottes)"를 쓴 바 있다. 레싱은 이 책 가운데 한 부분인 「자연신론자의 인내에 관하여. 익명 작가의 단장 (Von Duldung der Deisten. Fragment eines Ungenannten)」을 채택하여, 자신이 편찬한 책에 실었다. 그때 레싱은 어느 누구로부터 종교 문제로 반박의 글을 접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계속하여 라이마루스의 글을 차례대로 게재하였다. 가령 「익명 작가에게서 나온 더 많은 글들」, 「계시록과 관련하여」, 「정신 그리고 에너지의 증명에 관하여」, 「요한복음」 등이 바로 그 글들이다.

 

이로써 레싱은 제도적 교회의 종교보다는, 자연 종교의 이른바 이신론적인 입장을 더 낫다고 주장하였다. 이신론에 의하면 신은 세상을 창조했지만, 뒤이은 모든 계시의 작업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라이마루스의 글은 “그리스도가 세상을 모조리 창안한 게 아니라는 입장을 초지일관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프로테스탄트의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반박 당하게 된다. 이들에 의하면 예컨대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의 계시로 인해 발생한 순간이지, 결코 한 인간의 비참한 죽음에 관한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한다.

 

레싱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신격화하는 데 반대하였다. 그는 1778/ 79년 겨울에 프로테스탄트 계몽주의자들의 견해에 반대하는 글을 쓰게 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괴체와의 격렬한 논쟁이 발생하였다. 레싱은 "안티 괴체" 외에도 여러 산문을 썼으며, 우화들을 집필하기도 했다. 레싱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제반 종교의 모든 시스템은 “어떤 특수하게 건축된 궁궐”이나 다름이 없는데, 근처에 살고 있는 모든 시민들은 기본적 골격을 마냥 추측하여, 이러쿵저러쿵 따지고 싸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번도 궁궐 속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레싱은 생동감 넘치는 종교적 특성을 요한복음에서 찾고 있다. 가령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레싱에 의하면 “아이들이여, 서로 사랑하라 (Kinderchen, liebt euch!)”라는 말로 축소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레싱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음절들은 정신이 아니다. 성서는 종교가 아니다. 따라서 음절들, 성서 등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바로 정신 그리고 종교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레싱에 의하면 지금까지 성서에 씌어진 글들은 조금도 의심 없이 연역적 진리로 숭상되어 왔다고 한다. 레싱은 “성서의 역사를 살펴보면, 성서의 구절들은 성서 사제단에 의해서 조금씩 수정되고, 가필 정정되지 않았는가?” 하고 묻는다.

 

이에 비하면 괴체는 성서에 기술된 내용을 그 자체 독단적 진리로 파악하면서, 레싱을 공격하고 있다. 라이마루스는 마치 범죄 수사관처럼 4대 복음 속에 담긴 많은 모순된 내용들을 세밀하게 발견하여, 이것들을 문제 삼고 있는데, 이러한 처사는 괴체의 견해에 의하면 기독교를 모독하는 짓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레싱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종교란 복음서와 사도들이 가르쳤기 때문에, 참이라기보다는, 역으로 종교가 진실이기 때문에, 복음서와 사도들이 그것을 가르쳤다고 한다. “성서는 종교가 지닌 것보다도 더 많은 무엇을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발언은 그 자체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즉 성서가 이러한 더 많은 내용 속에서 어떠한 오류도 지니지 않는다, 라는 발언 말이다.”

 

레싱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괴체는 교회의 독단론을 옹호하면서, “절대적 진리는 결코 반박될 수 없으며, 또한 반박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괴체는 레싱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레싱은 교회의 권위를 파기하고, 개개인에게 종교적인 무질서를 은근히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개인이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교회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유로운 영역을 지니게 되면, 이는 교회의 권위에 대한 거대한 도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레싱은 강하게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즉 원시 기독교의 신앙의 규칙 (regula fidei)은 본질적으로 나중에 성서로 씌어진, 경직하기 이를 데 없는 교회의 독단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통해서 레싱은 개개인들로 하여금 교회의 철칙이라는 질곡으로부터 약간 해방시키려고 애를 썼다. 개인의 주관적인 입장이 교회의 독단론의 입장과 어긋난다고 해서, 그것이 전적으로 억압당해서는 안 된다는 게 레싱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레싱은 당국으로부터 더 이상 종교에 관한 글을 쓰지 못하도록 압력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압력이 결국 레싱으로 하여금 「현인 나탄」을 집필하게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