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사회심리론

서로박: 일리치의 젠더 론 비판 (2)

필자 (匹子) 2021. 10. 12. 10:56

5. 인류 역사의 세 단계 (1): 일리치는 인간의 역사를 세 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태고의 시대부터 11세기에 이르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일리치의 표현에 의하면 아무런 목표 없이 “역사에서 자발적으로 성장한 성”이 주도적으로 자리하던 시대입니다. 이 시기에는 남성은 막연히 남성답게, 여성은 막연히 여성답게 활동했습니다. 일리치에 의하면 이 시기에는 인간에 관한 이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초창기의 시기에 존재하는 것이라곤 오로지 “자생 경제 Subsistenzwirtschaft”의 체제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사람들은 남자의 경우 남성적으로, 여자의 경우 여성적으로 일하면서 자급자족해 왔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밖에서 식량을 조달하고, 여성들은 집안에서 빵을 썰어서 가족들의 배를 채우고, 남편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었습니다.

 

일리치의 이러한 입장은 경제 이론가, 카를 폴라니 Karl Polanyi의 다음과 같은 견해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폴라니에 의하면 가족의 제도에 기인하며, 섹스에 의해 파괴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섹스는 매춘 이상의 다른 기능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생 경제의 시대의 남녀의 성관계는 화폐와 무관했는데, 자본주의가 도래함으로써 결혼조차도 하나의 상행위로 취급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일리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역사의 첫 번째 단계의 시대에 여성들은 여성적으로 사고하고, 그들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였으며, 그들만의 갈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성들은 일리치에 의하면 그들만의 노동을 행했으며, 오로지 남성적으로 사고하고 꿈꾸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을 넘나드는 사고는 일리히에 의하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른 성에 대한 질투와 시기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6. 인류 역사의 세 단계 (2):. 11세기 이후의 유럽에서는 한 가지 놀라운 변화가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상품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유형의 생산 도구를 발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화폐가 등장하였으며, 시장의 규모가 점진적으로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르네상스의 시기를 거쳐서 근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7세기 근대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반 일리히는 인류 역사의 두 번째 단계를 혼란스러운 “마법의 시대”라고 규정합니다. 이 시기는 젠더를 차단시키고 섹스를 탄생시키는 과도기와 다를 바 없다고 합니다. 마치 인간의 노동을 수월하게 하고, 극대화시킬 수 있는 기구들이 발명되었듯이, 질곡에 갇혀 있던 성은 이와 반비례하게 서서히 자유를 구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차단된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찢겨져 완전히 와해되었다고 합니다.

 

자본주의의 경제 발전 앞에서 가정은 그야말로 가부장이 다스리는 작은 체제로 변하였으며, 젠더의 기능은 약화되고 섹스의 기능을 출현시켰다고 합니다. 일리히는 17세기를 전후하여 인류 역사의 세 번째 단계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고대에 온존했던 젠더의 구분이 와해됨으로써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구분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의하여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카테고리 속으로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시장의 제도를 도입하여, 궁극적으로 노동력, 토지 그리고 화폐 등을 상품화시켰던 것입니다. 토지의 경우 부자들은 자신의 사유지를 확장시켰습니다. 이러한 엔클로저에 의해서 농민은 사유지 바깥으로 쫓겨나게 되었고, 과거에 공유지였던 목초 지역은 생산을 위한 사적인 자원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일리치는 이를 “자생 경제에서 희소성의 경제로의 변화”라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희소성이란 희귀성이 가치의 기준 내지 가치의 경제 지표로 작용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7. 인류 역사의 세 단계 (3): 일리치의 논리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7세기 이후에 자본주의가 정착되었는데, 이것은 인간의 젠더를 모조리 장악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노동, 시장 그리고 화폐 경제 체제는 인간의 성적 구분을 약화시켰으며, 그야말로 완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일리히는 결국 다음의 견해를 표방합니다. 즉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은 인간학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인간의 젠더를 장악하고 파괴시키며, 급기야는 파괴된 성을 깡그리 해체하기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경제적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노동이 분화되고, 도구가 개발되며, 이로 인하여 분업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중시되는 것은 더 이상 성의 구분이 아니라, 오로지 노동하는 객체, 그 자체라고 말입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잉여가치를 창출해내지만, 이들의 잉여가치는 자본가들에게 빼앗기곤 합니다. 이러한 경제적 상황 속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전혀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이로써 남성과 여성은 노동의 분화 내지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하여 더 이상 구분되지 않고, 상호 고립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현실적 조건 속에서 출현한 것은 일리치에 의하면 사람들 사이의 경쟁심, 질투 그리고 불만족이라고 합니다. 물론 산업이 발전할수록, 남녀 사이의 가시적 차이점이 사라지는 것인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산업 발전으로 인한 문명화의 과정 속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빈번하게 발생하며, 여성에 대한 차별은 더욱더 심하게 출현하게 된다고 합니다.

 

8. 찬란한 과거에 대한 동경, 혹은 과거지향의 반동주의인가?: 일리히는 인류 역사의 세 단계 중에서 첫 번째 단계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젠더의 구분이 명확했고, 여성들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리치의 이러한 입장은 곰곰이 고찰하면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1848년 혁명 이후의 시민 사회에 대한 일리히의 비판 뒤에는 이렇듯 찬란한 과거를 미화시키려는 보수주의 사상가의 의도 내지 의혹이 은밀하게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각 주위에는 과거의 봉건 사회가 더 멋있고 시적이었다는 황금의 시대에 관한 시대착오적인 노스탤지어만이 교묘하게 착색되어 있을 뿐입니다. 과거 사람들은 자유라는 무거운 짐을 지지 않았으므로 더욱더 행복하게 살았다는 일리히의 견해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계층적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남녀의 역할 역시 그런 식으로 철저히 분화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살 듯이 고대인들은 “만인에게 자신의 겻을 행하게 하라 suum cuique” (플라톤)라는, 정해진 관습에 순응하며 살았으므로, 고대의 삶은 현대의 그것보다도 더 훌륭하고 찬란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계층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이었으므로, 이무도 이에 대해 의구심을 지니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고대의 여성들은 자신에게 어떠한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무언가 결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주어진 관습과 천혜의 계층적 신분에 순응하며 살았는데, 이것이 현대의 여성들의 삶에 비해서 더 행복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분명히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