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논문 자료

서로박: (4) 프리스의 "알렉산더의 새로운 세계"

필자 (匹子) 2023. 4. 16. 10:46

 

(앞에서 계속됩니다.)

 

문제는 레타르트가 이러한 탐문의 과정에서 세 명의 여성과 깊은 관계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맨 처음 그는 친구의 결혼 생활에 관한 정보를 접한다. 베를린구어는 안네와 사귈 무렵에 그미의 아버지, 파울을 과도할 정도로 경원시하였다. 파울은 어느 서클의 행동대원으로 일할 정도로 거칠고 퉁명스러운 장년의 남자였는데, 베를린구어는 그로 인하여 피해망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파울에 대한 그의 심리적 방어기제는 급기야 결혼 전에 안네를 겁탈하는 방식으로 출현한다. 이후 베를린구어와 안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안네에게서 오직 모성의 사랑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안네는 베를린구어의 눈에 자신이 남편의 어머니로 착종된다는 사실을 몹시 껄끄럽게 여겼다. 아내에 대한 어긋난 상은 오랫동안 부부의 사랑을 방해한다. 이는 다시금 베를린구어의 외도로 이어진다.

 

레타르트의 눈에는 안네가 마치 돈환에 의해 버림받은 엘비라인 것처럼 비친다. 불현듯 레타르트의 마음속에는 그녀에 대한 어떤 야릇한 연민이 솟아나온다. 그의 연민은 어느 순간 성적 욕망으로 점화하기 시작한다. 가브리엘레의 경우도 이와 비슷했다. 안네와 가브리엘레가 왕년에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모두 솔직하고 빠른 순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라는 미지의 영역을 차례로 정복해 나가듯이, 레타르트는 친구의 연인들을 한 명씩 차례로 “섭렵”해나간다. 그의 이름이 “알렉산더”라는 것을 고려하면, 제목의 의미는 여기서 분명히 간파될 수 있다. 레타르트는 베를린구어의 이전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치 괴테의 애정행각을 추체험하려는 J, M. R. 렌츠의 욕구처럼- 친구의 삶을 대신 살아갈 때 느끼는, 일종의 모방 충동의 쾌감에 빠져든 것이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사디즘의 방탕아이자 속물, 레타르트는 친구의 연인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성적 황홀을 즐긴다. 그의 황홀감은 관음증 환자의 그것보다도 더 짜릿한 것이었다.

 

베를린구어는 동료들과 함께 알레모라는 지역의 늪지대 근처의 홍등가에 은신하고 있다고 했다. 바로 이 순간부터 레타르트는 죄의식 때문인지, 꾀꼬리의 울음소리 때문인지,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더욱이 세 명의 여인과의 교우 관계가 그를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레타르트는 밤마다 외출하여, 세 명의 여인 가운데 한명을 만나, 거의 광인처럼 성을 탐한다. 수기를 집필하는 작업 역시 순탄치 않게 된다. 불면증, 과도한 망상 그리고 방종한 성생활은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모방충동의 희생자는 동베를린의 정신 병원에 수감된다.

 

베를린구어는 녹음테이프에서 자신을 축복받은 유혹자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음탕한 한량Wüstling”이자, 여성을 음미할 줄 아는 색마이다 (Fries: 177, 136). 그렇지만 그는 사랑의 삶에 있어서 실패한 남자나 다를 바 없다. 수많은 여성을 상대하다가, 단 한 명의 가장 소중한 연인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내가 바로 베를린구어였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친구의 실종으로 인한 탐색 작업을 펼치던 레타르트 역시 카사노바의 추종자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가 추적한 대상은 친구의 여인들이었다. 마치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콜럼버스가 “축복받은 삶을 즐길 수 있는 인도”라는 지역을 발견하려 하였듯이, 베를린구어와 레타르트는 비너스의 산을 찾아 방랑하였던 것이다. 『알렉산더의 새로운 세계들』의 내용을 고려할 때, 혁명과 미지의 땅은 여성의 존재로 상징화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성은 사유재산 없는, 찬란한 미지의 땅으로 비유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