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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3) 프리스의 "알렉산더의 새로운 세계"

필자 (匹子) 2023. 4. 16. 10:41

(앞에서 계속됩니다.)

 

알렉산더 레타르트는 18세기 계몽주의 문학을 연구하는 위그노 출신으로서, 돈환 그리고 세르반테스를 연구한 바 있다. 그는 베를린구어에 비해 약간 나이가 많으며, 50년대에 바우첸 감옥에서 정치범으로 수감된 적이 있었다. 다리를 약간 절기 때문에 지팡이 없이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레타르트의 마음속에도 로맨스 내지 불륜의 열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를테면 베를린구어가 볼보자동차를 몰면서, 카섹스를 즐기는 한량이라면, 레타르트는 동독의 자동차, 트라반트를 몰면서, 주차단속을 두려워하는 소시민이다. 그는 외부적으로는 당국의 명령에 비굴하게 굴복하지만, 집안에서는 근엄한 자세로 자식들에게 권위를 내세우는 표리부동한 가장이다. 레타르트는 당국의 정책을 따르는 어용학자로서 여성의 존재를 비하하는 마초이며, 특히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극단적으로 증오하는 무신론자이다.

 

언젠가 레타르트에게 충격을 가한 것은 베를린구어가 보여주었던 두 장의 그림이었다. 폴란드 출신의 화가, 타마라 데 렘피카가 그린 작품들이었다. 그 하나는 살레의 공작부인Herzogin de la Salle였으며, 다른 하나는 초록의 젊은 처녀에 관한 그림이었다. 전자는 동성연애의 욕구를 묘하게 불러일으키는, 남장 차림의 여성이며, 후자는 깊은 눈망울을 모자의 채양 속에 숨긴 채 고혹적인 미소를 짓는 여성이었다. 소설의 화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녀 (화가)는 마치 우리에게 두 여인을 떠넘기려는 듯이, 두 여자를 우리에게 결혼시키고 싶은 듯이 그렇게 애틋한 열정으로 그려놓았다. 마치 우리가 그들과의 행복에 관여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Fries: 175쪽 이하).

 

 

 

 

 

타마라 데 렘피카의 그림 살레 공작 부인. 남장을 한 여성의 모습에서 우리는 양성 인간의 모습, 혹은 동성연애자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타마라 데 렘피카의 터치는 진하고 육감적정취를 드러낸다.

 

 

레타르트는 사진 속의 여성들을 바라보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다. 원래 그림 속의 여성들은 늙지 않는다는 점에서 초상화는 시간관념 내지 죽음을 초월한 세계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다. (Bloch: 372). 소설의 화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토피아의 장점이야, 친애하는 계몽주의자여, 여자들이 늙지 않는다는 것은.” (Fries: 223). 공작부인은 당차고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베를린구어의 애인인 레아 슈타인과 무척 유사하게 생겼다. 그미는 뭇 남성에게 매혹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헬레나를 빼박은 것처럼 느껴졌다. 레타르트는 자신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린다. 그것은 어느 날 레아 슈타인과 깊은 관계에 빠진 사건이었다. 호텔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레아와 동침하게 되었던 것이다. 친구를 배반했다는 자책감이 그를 더욱 과묵하게 만든다.

 

레타르트는 녹음테이프의 자료들을 남김없이 청취한다. 베를린구어는 처음부터 하나의 환상을 지닌 에피쿠로스 신봉자였다. 어째서 그는 현실을 사랑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지니고 있었을까? (Fries: 46). 그렇다면 그가 멀리 떠난 데에는 어떤 이유가 도사리고 있을까? 레타르트는 친구의 출국 이유가 밝혀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베를린구어의 아내인 안네의 집을 찾아간다. 그미가 없는 틈을 타서 몰래 도청 장치를 설치한다. 그미의 통화 내용은 어쩌면 친구의 잠적에 관한 중요한 단서가 될지 모른다. 나아가 그는 가브리엘레 그리고 레아 슈타인을 차례로 만난다. 그들과 개별적으로 조우하여 베를린구어에 관한 여러 정보를 입수하는 게 중요한 관건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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