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논문 자료

서로박: (2) 프리스의 "알렉산더의 새로운 세계"

필자 (匹子) 2023. 4. 16. 09:06

(앞에서 이어집니다.)

 

II. 실종된 친구의 흔적을 찾아서

 

소설에는 “베를린에서 유래한 학술원의 통속 소설Ein akademischer Kolportageroman aus Berlin”이라는 모순적인 부제가 첨부되어 있다. 알렉산더 레타르트는 동베를린의 학술원 내의 계몽주의 분과에서 일하는 학자이다. 그의 친구는 올레 크누트 베를린구어라는 이름을 지닌 통역사인데, 1979년 11월 9일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베를린구어는 쿠바의 국경일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사절단과 함께 쿠바로 떠났는데, 그가 타고 있던 비행기가 납치되어 행방이 묘연하게 된다.

 

소설은 대화 녹취록, 녹음테이프의 조서 그리고 슈타지 간부, 피트 하겐 소령이 제공한 문서 등으로 구성되는데, 말미에는 몇 개의 자료가 첨부되어 있다. 이를테면 “가옥 사용을 위한 몇 가지 사항”, “낯선 외국어 문장으로 기술된 번역 텍스트” 그리고 “레타르트 박사의 메모 목록에서 유래한 은폐된 사항” 등이 별첨 자료들이다.

 

이것들은 관점의 다양성 내지 생소화 효과를 꾀하고 있어서, 여러 가지 암시를 유추하게 하고, 다양한 화법의 가상적 현실을 떠올리도록 자극한다. 이러한 복합적 표현법 내지 다양한 관점의 도입은 서로 뒤엉킨 관점 그리고 다원주의 문화 등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방법이다. 작가 프리스는 한편으로는 에스파냐와 독일이라는, 두 개의 코드로 얽혀 있는 이중적 문화 구조를 전해주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하고도 섬세한 관점으로 문학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묘파하고 있다.

 

베를린구어는 덴마크에서 태어났지만, 문화적으로는 이베리아 반도의 켈트족 그리고 유대인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부모와 함께 체코의 프라하에서 성장하였다. 그렇기에 그가 몇 개의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그다지 놀랄 바 아니다. 레타르트는 베를린구어가 출국하기 며칠 전에 그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때 그는 베를린구어가 여러 명의 여인들과 번갈아 춤을 추는 장면을 관망하였다. 그들은 안네, 가브리엘레, 휘아친테 (레아 슈타인의 가명) 그리고 이시 등의 이름을 지닌 여성들이었다. 며칠 뒤에 베를린구어는 동료들과 함께 쿠바의 혁명 기념일에 참가하기 위하여 체코의 비행기를 타고 아바나로 떠난다. 비행기는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도중에 팔레스티나 출신의 괴한들에 의해서 피랍되었다고 한다. 동베를린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쿠바로 향하지 않고, 아프리카의 미지의 장소에 불시착하게 된다.

 

실종 사건이 세인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무렵 레타르트는 아프리카에서 송달된 소포를 수령한다. 그 안에는 베를린구어가 육성으로 녹음한 테이프들이 담겨 있었다. 녹음테이프들을 하나씩 꺼내어 청취했을 때, 레타르트는 그제야 베를린구어와 그의 동료들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베를린구어의 문란한 사생활이 카세트테이프들을 통해서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베를린구어에 의하면 모든 여자의 배후에는 제각기 다른 삶의 가능성이 도사린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삶을 즐기는 한량들의 변명이지만, 레타르트는 이 말에 묘하게 이끌리며, 친구에 관한 수기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3, 4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