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페늘롱의 베티카, 살렌트 (2)

필자 (匹子) 2023. 4. 6. 09:02

(앞에서 계속됩니다.)

 

8. 현실적 위기는 법을 무시하는 독재자의 인위적인 정책에서 비롯한다.: 페늘롱은 고대의 유토피아 작가와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삶의 이상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이상의 범례는 일견 초시대적인 범례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주어진 사회정치적 현실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페늘롱이 처했던 당시 현실적 위기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원인은 개별 군주들이 주어진 법에 따라 정책을 펼치는 게 아니라, 법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 것을 통치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두 번째 원인은 인간의 도덕적 양심적 잣대를 무시하고 파괴하는 사치스러운 사고를 가리킵니다.

 

페늘롱은 첫 번째 원인과 관련하여 고전적 의미에서의 폭군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폭압적으로 통치하는 제후는 자연법과는 무관하게 행동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고유한 야심, 자신의 고유한 향락 그리고 자신의 고유한 명예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자라는 것입니다. (Fénelon: 385) 이러한 입장을 지닌 자가 통치하면 그 결과는 뻔합니다. 독재자의 정치 행위에는 어떠한 기준도 없고, 모든 사항은 인위적 방식에 의해서 처리될 뿐입니다. 특히 조세 제도와 관련하여 폭군은 제 멋대로 백성들의 피고름을 쥐어짜곤 합니다. 전제주의 군주에게는 중립적인 자세로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득에 혈안이 된 책사의 말만 골라서 청취할 뿐입니다.

 

9. 절대 군주들은 백성들을 수탈함으로써 자신의 묘혈을 파고 있다.: 절대적 군주들은 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끔찍한 일을 저지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군인들로 하여금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그 나라를 모조리 황폐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명예욕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전쟁을 벌이고, 패망한 국가의 백성들을 잔인하게 살육하며, 혼란스럽게 만들곤 합니다. 나아가 끔찍한 공포 정치를 감행함으로써, 외국의 주민들을 무력화시키고, 당혹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식민지로 변한 땅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굶주림, 고통 그리고 절망 속에서 목숨을 연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민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근본적 이유는 군주의 거짓된 명예욕 그리고 다른 나라를 정복하려는 야심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폭군 그리고 제후들은 페늘롱에 의하면 무제한적인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힘을 거의 지니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일견 그들은 국가를 전적으로 소유하고 있지만, 전제정치는 자신의 권력의 초석이 되는 기본적 바탕을 모조리 없애도록 작용합니다. 이를테면 군주들은 자신에게 복종하는 모든 인간들을 노예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자신의 나라에 더 이상 사람들이 많이 살지 못하게 만듭니다. 폭군이 지배하는 곳의 농경지는 나중에 황무지로 변화되고, 사람들 사이의 상품 교환이 줄어들며, 도시는 더 이상 번영하지 못하게 됩니다. 폭군의 전제 정치가 사람들의 따뜻한 인간애를 말살시키고, 경제적으로 패망하게 만듭니다. (라보에시: 94). 절대 군주는 페늘롱의 견해에 의하면 스스로 자신의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더 이상 자신의 국가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전제 군주의 권력과 금력은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백성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페늘롱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10. 페늘롱의 제후 비판: 독재자의 대부분 정책은 자연법사상에 위배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구잡이로 시행됩니다. 제후들은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고, 명예욕을 드높이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책의 실천은 결국에 가서는 권력 구조를 무너뜨리도록 작용합니다. 이는 그야말로 하나의 역설과 같습니다. 이는 국가를 사치스럽고도 방만하게 다스리거나, 국민들을 전쟁터로 몰아가면, 국가의 경제가 파탄에 빠지는 경우와 같은 논리입니다. 만약 권력자가 끝없이 사치스러운 정책을 추구하게 되면, 이는 공동체의 구조를 파괴시키게 할 것입니다. 미덕을 중시하는 시민들은 제후의 이러한 사치스럽고 방탕한 정책을 용납할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달리 방도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전쟁이 발생하면, 만인은 만인에 대항하여 적대적으로 처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별적 인간은 굴욕스럽고 더러운 질시와 탐욕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생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제후들의 명예욕, 공포 그리고 탐욕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Fénelon: 146). 한편으로는 궁성과 궁궐 내부는 찬란한 대리석, 금 그리고 은으로 뒤덮여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궁성 밖 빈민촌에서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은 가난과 굶주림에 처절한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비록 자연은 수많은 인민들이 최소한 먹고 살 수 있는 식량과 자원을 제공하지만, 소수에 해당하는 제후들이 이들의 식량과 자원을 과도한 세금으로 거두는 까닭에 대부분 사람들은 제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끼니조차 연명하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11. 가상적으로 설계된 베티카와 살렌트의 상: 그렇다면 개별 인간들이 형제자매처럼 서로 돕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회 정치적인 전제조건이 마련되어야 할까요? 이미 앞에서 암시한 바 있듯이, 페늘롱은 두 가지 유토피아의 대안으로써 최상의 공동체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작품 속에 묘사되고 있는 베티카 그리고 살렌트 Salent”의 상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베티카의 사람들은 단순한 자연을 깊이 연구하면서 거기서 모든 지혜를 발견해내고 있습니다. 나아가 살렌트라는 국가를 건설하는 데에도 자연의 정언적 명제가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베티카 그리고 살렌트의 가상적 상에도 불구하고 작가 페늘롱은 당시의 사회 정치적 토대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베티카의 구성적 시스템을 가급적이면 18세기 초의 프랑스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12, 베티카와 살렌트의 타국과의 관계: 베티카는 자연 조건에 의해서 다른 국가와 구분되어 있습니다. 한쪽은 대양이며, 다른 한쪽은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다른 나라의 사람들로부터 지리적으로 차단되어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접촉 역시 공동체의 재화를 생산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살렌트의 경우는 이와는 다릅니다. 살렌트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농업 외에도 상업을 중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는 자국민들의 외국과의 교역을 장려합니다. 이에 비하면 베티카는 다른 나라와의 교역 자체를 처음부터 배격하고 있습니다. 베티카가 과거 황금의 시대의 훌륭한 삶을 재현하고 있다면, 살렌트는 황금의 시대와는 전혀 다른 공동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13. 베티카와 살렌트의 건축 구조와 환경: 베티카 유토피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자연주의의 특징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페늘롱의 유토피아 설계에서 르네상스 유토피아의 오랜 전통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습니다. 도시는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건물들은 이상적 공동체의 계획에 따라 합리적으로 축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베티카 사람들은 모든 인공적으로 축조된 건축 자체를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 까닭은 그들이 집을 짓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이란 그저 추위를 막고 강우를 피하면 족하다는 게 베티카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나중에 살렌트를 설계할 때 페늘롱은 이러한 생각을 철회하였습니다. 살렌트 유토피아에서 건축물은 일원적인 구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집들은 대가족 구성원의 생활에 알맞게 지어져 있습니다. 모든 건물들은 위생적 측면을 고려하여 하나의 살롱 곁에 기둥을 둘러싼 내부의 정원 그리고 작은 방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크기에 상응하여 축조된 건물들은 규칙적인 형체를 드러낼 뿐, 아름다움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살렌트 사람들은 불필요한 방을 철저히 배격하고, 사치스러운 치장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최소한의 자원을 활용할 뿐, 어떠한 사치도 낭비도 용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즉 살렌트 사람들은 사원의 건물만은 숭고하고 고결한 느낌이 들도록 찬란하게 건설해놓고 있습니다. 도시 주위에는 농경지와 숲이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프랑스의 황무지와는 전혀 다른 상과 같습니다.

 

14. 페늘롱의 사유재산 제도 비판: 베티카 사람들은 물질의 부당한 분배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은 땅을 사유화하지 않고 함께 살아갑니다. 모든 재화는 그들 공동의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베티카에서는 사유재산제도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살렌트에서는 사유재산제도가 존속되고 있지만, 사유재산의 활용에 있어서 국가가 세부적 규정으로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모든 가정은 자신의 직분에 따라서 필요한 만큼의 토지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법은 만인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므로, 땅을 강탈하거나 무력으로 점유하는 행위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인구가 과도하게 증가할 경우 국가는 인접 지역을 식민지로 활용합니다. 상인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상품을 모조리 소유하면서, 이를 판매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는 상인이 파업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미리 처벌 조항을 정합니다. 상인들이 제 아무리 수입과 이득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살렌트의 관리들은 이들의 사업에 개입하여 무리한 사업의 확장이라든가 이윤 추구의 행위를 사전에 차단시킵니다.

 

15. 베티카 사람들의 일감: 베티카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행하는 일감은 경작 그리고 목축입니다. 베티카의 기후와 토양은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는 데 매우 적격입니다. 이를테면 이모작을 통해서 1년에 두 번 수확할 수 있습니다. 베티카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양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자급자족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은 농기구를 만들어,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는 일에 매달리는 반면에, 여자들은 옷을 만들고, 빵을 구우며 요리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여성들은 양의 가죽으로 가족들의 신발을 만들거나 천막을 제조합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집을 짓지 않고 가축의 가죽과 나무껍질을 활용하여 천막을 만듭니다. 사람들은 과일 채소 그리고 우유 등을 아무런 규칙 없이 골고루 나눕니다. 베티카 사람들 가운데에는 한 곳에서 정착해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특정 지역의 열매와 채소 등을 채집하여 생활하는데, 더 이상 먹을 것을 얻지 못할 경우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살아갑니다. (Fénelon: 147). 지역과 지역 사이의 상업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으므로, 금과 같은 귀금속은 전혀 교환가치를 지니지 않습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람들은 금과 은을 그릇 만드는데 활용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베티카 사람들은 귀금속을 쟁기와 같은 농기구 제작에 활용합니다.

 

16. 살렌트 사람들의 일감, 농업과 상업 그리고 국가의 관리 감독: 살렌트 사람들의 경제 시스템은 두 가지 점에서 베티카 공동체와 유사합니다. 살렌트는 최대한의 수입 추구가 아니라, 인민의 욕망을 필요한 만큼 충족시키는 것을 공동체의 목표로 정하고 있습니다. 살렌트에서는 농업과 목축업 뿐 아니라, 매뉴팩처 (가내 수공업)가 중요한 수입원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살렌트 주민들 가운데 남자와 나이든 아들은 주로 농사를 짓고, 여성과 나머지 가족들은 가축의 젖을 짜고 음식을 장만합니다. 중심가 사람들과 변두리 사람들 사이의 빈부차이를 없애기 위해서 국가는 도시에 있던 사치스러운 물품 생산 공장과 생업을 위한 공장들을 시골 내지 지방으로 이전시켜 놓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티카와 살렌트의 살림 사이의 차이를 간파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베티카는 세금을 관리하는 관청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있는데 비해서, 살렌트에서는 국가가 세금을 거두어서 어떤 적극적 정책을 수행합니다. 국가는 인민의 경작을 돕고, 상인 그리고 사업 조합 등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살렌트 사람들은 베티카 사람들과는 달리 농업 외에도 상업을 통해서 경제적 수입을 얻습니다. 국가는 모든 상인들을 관리 감독하면서, 인접 국가와 무역의 관계를 맺는 상인들에게 수당을 지급합니다. 대신에 어떠한 사치스러운 품목의 수입은 철저히 금지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경제 정책이 루이 14세의 중상주의의 정책과 대립된다는 사실입니다. 루이 14세는 국가의 농업과 목축업을 정려하지 않고, 매뉴팩처 기업이라든가 사치품의 생산에 대해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3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