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라블레의 '팡타그뤼엘 그리고 가르강튀아' (1)

필자 (匹子) 2022. 4. 9. 09:00

1. 자발성의 유토피아, 라블레의 텔렘 사원: 엄밀히 따지면 라블레의 장편 소설,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제 2권에서 묘사되고 있는 텔렘 사원은 르네상스 유토피아의 카테고리 속에 편입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하나의 이상적 공동체로 규정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텔렘 사원의 사람들의 슬로건인 그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라는 규정에 관해서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텔렘 사원의 규정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삶에서 르네상스의 유토피아의 놀라운 특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상기한 이유로 인하여 우리는 이 자리에서 라블레의 장편의 내용을 속속들이 살펴보는 대신에, 우리 논의의 촛점을 작품에 부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텔렘 사원에 맞추려고 합니다.

 

2. 르네상스의 인간형, 개인 주체로서의 지식인: 라블레는 자신이 르네상스 시대의 유형적인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문학과 철학 뿐 아니라, 의학과 법학에도 관심을 가지는 등 백과사전식의 방대한 지식을 섭렵한 사실 또한 르네상스의 지식인들의 경우와 같습니다. 라블레는 특히 고대 그리스 문학을 진심으로 숭배하였습니다. 라블레는 스콜라 학문을 따분하게 생각했으며, 수도사들의 사원에서의 삶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자유와 아름다움을 무엇보다도 사랑했던 그는 르네상스 시대정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전형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개혁 운동의 시대라기 보다는 개인의 주체가 강조되던 시대였습니다. 휴머니스트들은 직접적으로 휴머니즘을 설파했다기 보다는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 내지는 개인 존재의 중요성을 내세웠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체제 내지는 교회 체제의 권위를 처음부터 거부하고,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내세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유를 위해 투쟁하거나 대중의 권한을 노골적으로 요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3. 팡타그뤼엘 그리고 가르강튀아, 라블레의 대작: 작품 팡타그뤼엘 그리고 가르강튀아는 라블레의; 대표작으로서 도합 다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래의 작품은 디프소텐 왕, 위대한 거인 가르강튀아의 아들인 유명한 팡타그뤼엘의 끔찍한 전율을 일으키는 모험과 영웅적 행위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편의상 제 1권을 팡타그뤼엘, 2권을 가르강튀아라고 명명합니다. 3권부터 5권까지는 팡타그뤼엘 제 3”, “팡타그뤼엘 제 4”, “팡타그뤼엘 제 5라고 명명됩니다. 다섯 권의 책은 1532, 1534, 1545, 1552년 그리고 1564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마지막의 책은 레블레가 사망한 다음에 발표된 것입니다. 책의 제목에는 알코프리바스 나시어 선사에 의해서 새롭게 편찬되었다.”라는 부연설명이 첨부되어 있는데, “알코프리바스 나시어 Alcofrybas Nasier라는 이름은 작가 자신의 이름, “프랑스와 라블레 François Rabelais의 음절을 뒤바꾸어 표현된 것입니다. “팡타그뤼엘이라는 이름은 식욕을 뜻하는 pantagruélique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며, “가르강튀아라는 이름은 멋진 식사와 관련되는 gargantuesque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작가는 인간의 욕망의 근원을 식욕으로 규정하고, 그 다음에 성욕과 명예욕을 설정한 게 틀림없습니다.

  

4. 5부작의 간략한 줄거리 (1): 라블레의 소설은 온갖 상상 속의 이야기를 동원하여 독자를 미소짓게 만드는가 하면, 부자유의 사회에 대한 쓰라린 독설을 온통 드러내기도 합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라블레는 독자들의 몸에다 온갖 유머러스한 따뜻한 물, 온갖 시니컬한 찬 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작품이 감정의 온탕, 이성의 냉탕” (장 파울)으로 평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릅니다. 1권에서 팡타그뤼엘은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몸의 크기를 마구잡이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로써 독자는 모든 것이 허구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팡타그뤼엘은 보통 사람의 크기로 변신하여 어느 법정에 참석하여 재판에 귀를 기울이는가 하면, 엄청난 거인으로 변신합니다. 서술자는 팡타그뤼엘의 입속에서 약 6개월을 살면서 이빨 위에서 생활하는 기이한 사람들과 조우하기도 합니다. 2권은 팡타그뤼엘의 아버지 가르강튀아가 경험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서양 철학에 관한 기발한 비유가 등장하는가 하면, 말미에 우리가 다루게 될 텔렘 사원에 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5. 5부작의 간략한 줄거리 (2): 3권은 다시 팡타그뤼엘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친구, 파누르지를 만납니다. 파누르지는 결혼이 과연 어떠한 장단점을 지니고 있는지, 혼인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를 깊이 고심합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럴듯한 해답을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팡타그뤼엘과 그의 친구는 범선을 타고 신의 물병을 찾아 나섭니다. 신탁에 의하면 신의 물병은 결혼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전해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의 물병이 중세 문학에서 자주 나타나던 성배와 비너스의 산에 관한 비밀과 관련된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4권은 범선 여행을 다루고 있습니다. 신의 물병을 찾는 두 사람의 여정은 오래 이어집니다. 이 와중에서 팡타그뤼엘과 파르누지는 기이한 사람들과 조우하게 됩니다. 5권에서 드디어 두 사람은 신의 물병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의 물병은 인간의 궁극적 행복, 평화로운 축복의 삶 그리고 사랑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비너스 산에서의 쾌락과 관련됩니다. 한마디로 라블레의 작품은 문학이 지니고 있는 두 가지 특성을 모조리 드러냅니다. 그 하나는 농담과 해학, 유머와 판타지와 관련되는 긍정적 온탕을 가리키며, 다른 하나는 쓰라림과 냉혹함, 그로테스크와 진지함과 같은 부정적 냉탕을 가리킵니다.

 

 

6. 엘리트들을 위한 새로운 유토피아: 이제 라블레가 다루고 있는 텔렘 사원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텔렘 사원은 어떤 이상적인 왕궁, 이상적인 대학, 혹은 이상적인 시골 별장 등과 같은 건물,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르네상스의 새로운 관료주의의 유토피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텔렘 사원은 권력과 경제적 풍요로움에 근거한 공간이 아니라, 지식과 지적 능력에 바탕을 둔 이상적인 공간으로 이해됩니다. 라블레는 이곳에서 거주하는 남자와 여자들이 지적으로 탁월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고결한 심성을 지닌 자들이라는 점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텔렘 사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법과 변호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정치가도, 설교자도 전혀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화폐가 유통되지 않으므로, 고리대금업자가 사람들을 괴롭히지도 않고, 종교가 필요 없으니, 교회도 수사직도 무용지물에 불과합니다. 텔렘 사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규정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의미 있게 그리고 가장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외부 사회에서 전해지는 도덕적 강요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원천적으로 정직하고 고결한 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남녀 사이의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4. 귀족과 같은 풍요로운 삶: 텔렘 사원은 마치 프랑스의 투렌 성 Château Touraine처럼 휘황찬란한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값비싼 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성주는 수많은 보물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이곳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텔렘 사원에서의 모든 삶이 누구보다도 하인들의 도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라블레의 유토피아는 고대의 노예 경제의 구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많은 하인들과 수공업자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텔렘 사원으로부터 가까운 숲속에는 거대한 건물이 위치하는데, 이곳에서는 금 세공업자, 보석 가공업자, 베짜는 사람들, 재단사, 양탄자 제조업자 등이 살면서, 제각기 자신의 수공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일은 오로지 텔렘 사원에서 살아가는 남녀들을 위해서 행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