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차주일의 시: "혀의 내장과 그 거리"

필자 (匹子) 2023. 1. 11. 09:10

 

혀의 내장과 그 거리

                                                           차주일

 

여자가 엄지를 물고 펄펄 뛴다.

뚝배기에 박혀 있던 마포 설렁탕 다섯 글자와

아 뜨거, 쯤으로 들리는

삼십년은 족히 묵었을 월남 말 세 음절

바닥에 깨어져 있다

이곳에서 사라진 소리들

지구 한쪽에서 천둥으로 나겠다

나뒹군 내장과 선지 덩어리들 사이에서

혀 한 점이 바닥을 핥는다

서울과 하노이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혀와 내장은 가까워지지 않는다

혓바닥을 진동시켜 낸 월남여자의 황소 울음이

흑백 가족사진 한 장을 내 고막에 인화한다.

사진은 두려운 눈빛만큼 어두워진다

주인 할머니가 혀와 내장을 쓸어 담고

마포 걸레로 그 거리를 지운다

월남여자의 울음소리가 인화지처럼 마른다

할머니가  설렁탕 한 그릇을 쟁반 없이 들고 온다

펄펄 끓는 탕 속에 엄지 한마디 잠겨 있다

탕 속의 혀가 젖꼭지를 빤다

할머니 온몸이 쪼그라든다

나는 뚝배기에서 음습한 열대기후를 떠먹는다

두려운 눈빛 사라지는 가족 사진에서 선지빛이 돈다

하노이 맑은 하늘빛이 내 고막에서 묻어난다. 

 

시로 여는 세상 2008년 가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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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다음의 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차주일 시인은 전북 무주에서 태어나, 시를 발표헀는데, 2011년 윤동주 상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번에 걸쳐 문학상을 수상한 중견 시인입니다. 지금까지 네 권의 시집을 간행했으며, 포지션이라는 정기 간행물을 편찬했습니다.

 

"혀의 내장과 그 거리". 시인은 세계화와 이로 인한 삶의 일상적 단편을 예리하게 투시하고 있습니다. 마포 설렁탕 집에서 음식이 끓여집니다. 베트남 출신의 어느 여자가 손가락을 다쳤습니다. 너무 뜨거운 국물 때문이었을까요? 엄지가 잘려나가는 듯한 극심한 통증 탓에 그만 설렁탕을 쏟고 말았습니다. 그릇은 바닥에 완전히 박살납니다. 문득 달러, 하노이의 열대 기후는 누구의 뇌리를 스쳐 지나갈까요? 그미는 일당으로 받은 돈을 베트남으로 송금하고 있을까요? 가족 사진이 뇌리에 스치고, 검붉은 선지의 빛이 떠오릅니다. 그미는 고향을 애타게 그리워하는지 모릅니다. 향수는 귀환의 괴로움 (nostos + algos)이라고 합니다. 귀환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이 고통스러운 것이지요.

 

한마리 소에서 쓸모없는 것은 오로지 어금니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소를 키워 일하게 하고, 소가 죽으면, 어금니 외의 모든 부분을 이리저리 활용합니다. 그미는 어떠환 계기로 나라를 떠나 낯선 나라에서 뜨거운 설렁탕을 그릇에 담다가 사고를 당했을까요? "설렁탕 그릇 속에는 베트남 처녀의 엄지 한 마디가 담겨 있다." -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상상 속에서 생동하는 상으로 비칩니다.

 

"나는 뚝배기에서 음습한 열대기후를 떠먹는다/ 두려운 눈빛 사라지는 가족 사진에서 선지빛이 돈다/ 하노이 맑은 하늘빛이 내 고막에서 묻어난다." 기막힌 상상력입니다. 자본주의의 폭력이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오늘날 극동의 서울 마포 설렁탕 집의 작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사건을 마치 카메라의 앵글에 맞추듯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외국인 노동자 한 사람이 일하다가 다친 사소한 일화로 치부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베트남 여자의 부상은 전세계적으로 확장된 자본주의의 폭력 그리고 이로 인한 아픔, 그 이상을 전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