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

필자 (匹子) 2016. 5. 27. 15:38

친애하는 B, 오늘은 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 1929 - )의 베스트셀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Nesnesitelná Lehkost Bytí』(1984)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체코어로 집필되었지만, 1984년에 프랑스어로 간행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송동준 교수에 의해 번역되어, 한국에서도 상당히 많이 팔린 바 있습니다. 쿤데라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이론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체코 출신의 작가입니다. 그렇기에 쿤데라의 문학성이 상당 부분 음악과 결부되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예컨대 그의 작품들은 마치 악보처럼 정교한 구도에 의해서 직조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는 항상 어떤 멜로디와 결부되어 있지요. 이 점에 관해서는 아마도 나중에 학문적으로 구명될 것입니다.

 

 

어째서 존재는 그토록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무엇인가?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삶과 같기 때문이다.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현대인들의 사랑의 실현 가능성에 관한 문제를 치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울러 체코라는 사회주의 현실이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우선 줄거리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인공 토마스는 이른바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외과의사입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자이며, 심리적으로는 어디서도 정처하지 못하는 방랑아입니다. 그러한 한 토마스는 돈환 Don Juan이자 동시에 트리스탄 Tristan입니다. 주인공은 수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지만, 정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오지 않습니다. 그는 우도 린덴베르크 Udo Lindenberg의 표현을 빌자면, “동침한 뒤에 잠든 여자의 집을 훌훌 떠나는 아스팔트 카우보이”이지요. 젊은 여성들은 하룻밤의 정사를 나눌 수 있는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어느 날 토마스는 사비나라는 여류화가를 사귀게 됩니다. 주인공의 눈에 그미는 삶의 기쁨을 누릴 줄 아는 독립적인 여성입니다. 그래서 토마스는 아무런 부담감을 느끼지 않은 채, 사비나와 잠자리를 함께 하며 철학적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한마디로 두 사람은 인간의 삶 자체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부류입니다.

 

 

 

두 사람은 카레닌이라는 개와 함께 살아갑니다.

 

 

 

토마스는 우연히 어느 식당에서 일하는 접대부, 테레사를 사귀게 됩니다. 테레사는 배운 게 없는 평범한 여자이지만, 순정파입니다. 그미는 주인공과 살을 섞은 뒤에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토마스 역시 테레사에게서 다른 여자에게서 느낄 수 없는 어떤 인간적 진지함을 접합니다. 주인공은 지금까지 어떠한 여자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적이 없는데, 그날 밤 두 사람은 토마스의 집에서 함께 잠듭니다. 그들은 상대방에 대해 애정을 느끼고 동거에 들어갑니다. 그런데도 토마스의 바람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자신이 수많은 여자들과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테레사에게 거리낌 없이 털어놓습니다. 이때 그미는 사랑과 성에 관해서 각자가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테레사는 질투심을 느꼈지만, 모든 것을 감내하기로 작심합니다. 토마스는 여러 여자들과 교우하면서도 사비나와의 관계 또한 청산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따금 사비나를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이때 사비나는 친절하게도 테레사에게 사진술을 가르쳐줍니다.

 

 

1968년 프라하에서는 민주화의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테레사는 사진 기자로 일합니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데모대의 행렬과 소련군 탱크의 진압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을 무릅쓴 곡예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결국 개혁을 추진하는 알렉산더 두브체크 Alexander Dubček는 권좌에서 물러나고 맙니다. 수많은 민주 인사들이 대대적으로 체포되기 시작합니다. 사비나는 골치 아픈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기 싫어서 스위스로 망명해버립니다. 그러니 검거 열풍에 휘말린 자는 토마스와 테레사 두 사람이었습니다. 토마스는 몇 년 전에 스탈린주의에 관한 비판적인 기사를 집필하여 신문에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문 기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스탈린주의의 정책은 토마스에 의하면 오이디푸스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 그 까닭은 적이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체제적인 표현으로 인하여 토마스가 당국의 표적이 된 것입니다. 또한 테레사 역시 서방세계의 기자들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넘겨주었다는 이유로 체포 대상이 됩니다. 토마스와 테레사는 스위스로 향하여 도주합니다.

 

 

 

영화의 한 장면

 

 

 

토마스는 스위스에서 외과의사로서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스위스 젊은 여자들과 바람을 피웁니다. 테레사는 그저 허드렛일로 생활비를 벌어야 합니다. 가난은 참을 수 있었지만, 주인공의 엽색행각을 도저히 감내할 수 없었습니다. 토마스는 바쁜 와중에도 이따금 사비나를 만나, 성 도락을 즐깁니다. 한국인의 시각으로 고찰하면 도덕적으로 문란한 자가 바로 토마스이지요. 토마스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가슴이 아파오지만, 테레사는 그와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가 반드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막연하게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사비나는 스위스의 기혼남, 프란츠와 사랑에 빠집니다.

 

프란츠는 제네바의 대학 강사로서 무척 낭만적이면서도 진지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사회적 불의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마음먹는 남자가 바로 프란츠였습니다. 프란츠는 처음에는 가족을 버리고 사비나와 재혼하려고 결심할 정도로 사비나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비나는 사회적 윤리와 도덕에 관심을 두지 않는 향유하는 예술가 한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이때 프란츠는 깊은 실망감에 빠집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인연을 끊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그는 나중에 유럽 좌파 지식인으로서 아시아의 대장정에 가담하다가 사망하지요. 사비나 역시 프란츠의 이중적 태도에 실망감을 금치 못합니다. 대중과 지식인 사이의 괴리감이 문제였습니다. 그미는 모든 지인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체코로 되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