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필자 (匹子) 2016. 5. 6. 09:57

 친애하는 C,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사랑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첫사랑의 경험은 사람에 따라서 의외로 썰렁한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지요. 어쩌면 우리 같은 현대인들은 첫사랑을 찬란한 것으로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삶에서 맨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사랑의 대상이 수없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자의 설렘은 사랑의 강도를 차치하고라도 언제나 하나의 설렘으로 남습니다. 첫사랑이 아름답다면, 두 번째 사랑, 세 번째 사랑은 아름답지 않단 말인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를테면 마지막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죽음으로 인하여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경우는 무척 슬프지만, 제 3자에게는 기이한 아름다움을 전해주곤 합니다. 각설, 오늘은 러시아 작가, 이반 S. 투르게네프 (Ivan S. Turgenev, 1818 - 1883)의 중편 소설 「첫사랑」을 다루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1860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주인공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귀족계급에 속하는 젊은이입니다. 그는 늦은 밤에 자신의 집을 찾은 손님들을 배웅하고 난 다음에, 자정 무렵까지 두 명의 죽마고우와 계속 환담을 나눕니다. 이때 그는 16세 당시에 겪었던 우울하고도 창백한 사랑의 이야기 그들에게 들려줍니다. 예민할 정도로 섬세하고도 조숙했던 블라디미르는 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항상 예절만을 강조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주인공은 고독하고 우울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어느 날 블라디미르는 난생 처음으로 어느 아름다운 여자를 바라보게 되고, 그미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낍니다. 그가 느낀 연정은 무척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극도의 행복과 깊은 우울의 심연 속에 빠져듭니다. 여자는 21세의 “치나이다”라는 이름의 처녀였습니다. 치나이다의 아버지는 제후였고, 어머니는 평범한 소시민 출신의 여인이었지요. 소설 속에 분명히 나타나지는 않지만, 치나이다는 추측컨대 권력을 지닌 제후의 사랑 놀음으로 태어난 사생아인 게 분명합니다.

 

복잡한 가정사 때문인지는 몰라도 치나이다는 우아하고, 아름다웠으나, 변덕이 심하고,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여자였습니다. 그미는 수많은 남자들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교태로 일관하곤 했으니까요. 한마디로 치나이다는 많은 남성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만, 정작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는 처녀였습니다. 경험이 없는 아가씨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치기를 드러내곤 하는데, 이는 분명히 히스테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블라디미르는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먼발치에서 그미의 눈부신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미의 눈빛은 마치 깊고 고운 바다처럼 출렁거리고 있었으며, 그미의 갈색 머리카락은 매혹적으로 바람에 출렁거렸습니다. 어느 날 치나이다는 블라디미르에게 관심을 두고 그를 불렀을 때, 주인공은 몹시 설레기 시작합니다. 그미는 자신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블라디미르를 자신의 심부름꾼으로서 자신의 곁에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블라디미르는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지레짐작합니다. 즉 그미가 수많은 남자들을 제치고 자신을 연인으로 선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달랐습니다. 치나이다는 주인공에게 호감을 품었으나, 그를 남자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그미는 주인공을 다만 심심풀이 땅콩 같은 존재로, 다시 말해서 시간 때우기 위해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치나이다는 나이 어린 소년에게서도 어떤 묘한 남성적인 매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블라디미르는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왔지요. 그러나 고혹적인 치나이다는 주인공을 끌어안기는커녕, 어떠한 사랑의 언질조차 던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답답해진 주인공은 용기를 내어, 그미를 찾아가서 사랑을 고백합니다. 이때 치나이다는 작은 소년에게 퉁명스러운 어조로 면박을가하면서,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증명해보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는 어느 높은 벽에서 얼마든지 훌쩍 뛰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장벽은 16세의 소년이 뛰어내리기에는 너무 높았습니다. 그럼에도 블라디미르는 벽에서 뛰어내립니다. 무릎의 고통으로 인하여 그는 일순간 정신을 잃습니다. 그미의 발 아래로 쓰러지던 순간, 블라디미르는 사랑하는 임에게 열정적인 키스를 보냅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치나이다에 대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오랜 시간동안 주인공의 가슴을 아프게 만듭니다.

 

친애하는 C, 투르게네프의 작품은 청년 시절의 아쉬운 사랑을 시적인 언어로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맨 마지막 대목에서 독자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사항을 드러냅니다. 이는 마치 윌리엄 시드니 포터 William Sidny Porter, 다시 말해서 “오 헨리 O Henry의 종결 방식”과 같은 유형으로서, 독자의 가슴을 순간적으로 철렁 내려앉게 만들지요. 사실인즉 이렇습니다. 치나이다는 모든 청년의 우상처럼 군림하였지만, 경험 부족으로 인하여 정작 어느 누구의 사랑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살아가다가, 어느 유부남의 동물적 유혹에 걸려듭니다. 그 유부남은 놀랍게도 블라디미르의 아버지로 밝혀집니다. 블라디미르의 아버지는 이기주의적인 마초 유형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돈과 권력을 위해서 자신보다 10살이나 나이 많은 여자와 결혼하여 지루하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젊은 처녀를 만나, 그미에게 모든 동물적 욕정을 발산하게 됩니다. 이는 불쌍한 처녀에게 하나의 독약처럼 작용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사랑에 경험이 없는 치나이다는 매일 지속되는 남녀의 육체적 교합을 그저 사랑의 일감으로 착각하며 욕정의 노예로 살아가다가, 파멸하고 맙니다. 주인공이 느꼈던 사랑의 고통은 아버지에 대한 저주로 돌변하게 됩니다.

 

친애하는 C, 투르게네프의 소설이 마치 운명과 같이 커다란 상흔을 안겨주는 청춘의 기억을 다루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로 인하여 소설의 주제를 부자 사이의 삼각관계, 다시 말해서 오로지 심리학적인 측면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아무래도 성급한 처사일 것입니다. 오히려 소설은 19세기 말 러시아의 귀족 계급이 자행하던 부도덕한 생활방식을 그대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사회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제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귀족으로서의 아버지 세대는 부도덕하고 이기주의적인 관습과 나태한 생활 등으로써 결국 이들의 세대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사항을 생각해 보십시오. 소설은 주인공 블라디미르가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오로지 아버지에 의해 강탈당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9세기 봉건 후기 차르 체제에서 살아가던 귀족들의 패륜이 이를 말해주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