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브레히트: 이성의 저항력에 관한 연설 (1)

필자 (匹子) 2022. 6. 8. 11:13

약속대로 "이성의 저항력에 관한 연설"을 올립니다.

국내 초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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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국가는 요즈음 이성에 반대되는 여러 가지 엄격한 조처를 과감하게 시행하려 합니다. 국가는 이러한 조처로써 놀라운 방법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조처에 즈음하여 우리는 과연 인간의 이성이 이러한 과도할 정도로 끔찍한 폭력을 어떻게 맞설 수 있는가? 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파시즘 국가란 반드시 히틀러의 제3제국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페터 후헬은 구동독의 체제를 염두에 두면서 이 글을 의미와 형식 지에 실었다. - 역주) 사람들은 이러한 끔찍한 폭력을 서슴없이 자행하면서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낙관주의적인 맹약을 서슴없이 내뱉습니다. “결국에는 반드시 이성이 승리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약 인간의 정신이 폭력에 의해서 훼손된다면, 정신은 더 이상 자유롭게 발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말뿐이며, 실제로 행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확신에 찬 전언들은 그 자체 이성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인간의 사고 능력은 얼마든지 기괴할 정도로 훼손될 수 있습니다. 이는 개별적 인간의 이성에, 그리고 모든 계급이나 민족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입니다. 인간의 사고 능력의 역사는 부분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어떠한 결실도 맺지 못한 시기가 있었음 분명하게 전해줍니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사고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위축되었고, 왜곡된 모습으로 형성된 시기 또한 존재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사고 능력은 때로는 적절한 수단에 의해서 그리고 거대한 범위로 통제되거나 조직화될 수도 있었습니다. 자고로 인간은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2 더하기 2는 4가 아니라, 5라고 배우며 이를 자신의 뇌 속에 입력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홉스 Hobbes는 17세기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두 개의 직각을 형성한다는 공식이 상인들의 돈벌이에 커다란 손해를 가하게 된다면, 상인들은 추측컨대 모든 기하학의 책들을 수거하여 깡그리 불태워 없애버릴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추론해내야 합니다. 즉 개별 민족들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성적으로 산출해내지 않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만약 누군가 더 많은 이성적 사고를 동원하여 무언가를 산출해낸다면, 그것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제대로 수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은 실제 현실에서 원래의 생각보다 훨씬 경미한 이성을 동원하여 무언가를 산출해내곤 합니다. 요약하건대 우리는 이성 가운에 어떤 자그마한 일부만을 활용하고 있으며, 기존하는 현실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성 가운데 현재 반드시 필요한 부분만을 조금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점을 반드시 직시하고 발설해야만, 우리는 이성이 현재의 어려운 박해의 시대에 살아남으리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성은 기존하는 현실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이성은 이를 위해서 자신을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면, 나의 이러한 발언은 깊은 숙고에서 비롯한 올바른 명제일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어떤 좋은 의도에서 이성이 기존하는 현실 상태를 과감히 변형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성이 필요한 까닭은 기존하는 매우 나쁜 현실적 상태를 약간 수정하고 낫게 하기 위함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견해에 의하면 이성이 그야말로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활용되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자고로 좋지 못한 현실 상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지속되는 법입니다. 따라서 현실적 상태가 처참하고 나쁘면, 더 많은 이성이 산출된다고 우리가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주어진 상태가 악화일로에 있으면, 이성은 더욱 적게 출현한다고 말하는 게 타당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믿고 싶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기존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성이 필요한 법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그게 얼마나 많은 이성이냐? 하는 물음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 세대에 얼마나 많은 이성이 산출되어야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일단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선적으로 제기해야 할 것입니다. 기존하는 현실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성 가운데 얼마의 양이 필요로 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여러 파시즘 국가 내의 현실적 상태가 매우 나쁘다하는 것은 그 자체 질문꺼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 국가에서 인민의 삶의 수준은 그야말로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으며, 그들 국가는 체제를 고수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정책, 심지어는 전쟁조차도 불사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악한 현실적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아주 경미한 이성이 필요하다고 함부로 상상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활용하고, 지속적으로 생산하며, 단기간에 걸쳐 억압할 수 없어야 하는 이성은 결코 경미한 게 아닙니다. 설령 여기서 말하는 이성이 어떤 특수한 성질을 지닌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일단 우리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파시즘 국가에서 이성은 기형적으로 발달해 있다고 말입니다. 자고로 이성은 조절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메커니즘의 측면에서 다소 확대될 수 있으며, 때로는 축소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성은 모든 것을 광활하게 바라보아야 하고, 신속하게 나아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이성이 자신의 뜻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도록 그것을 독려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이성은 마지막에 스스로를 파괴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과연 여기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이성의 유형이 필요한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물리학자는 전쟁을 위해서 아무 먼 곳을 투시할 수 있는 놀라운 관찰 도구 내지 무기들을 수월하게 제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와 동시에 자신의 주위, 이를테면 자신의 대학교에서 전개되는 자신에게 매우 위험한 유형의 평화를 위한 여러 가지 조처들을 아예 무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다른 나라의 공격에 대항할 수 있는 방어 시설을 제작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고위 관청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퍼붓는 모든 비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까? 하고 골머리를 앓지 말아야 합니다. 그밖에 의사는 자신의 종합병원에서 자신의 환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고질적 질병인 암 (癌)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화학 가스라든가, 화생방 폭탄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추가로 연구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가스 살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처음부터 전쟁을 반대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