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서로박: 입센의 헤다 가블러 (2)

필자 (匹子) 2018. 3. 5. 11:14

 

(7) 여친 테아, 그미의 새 애인은 주인공의 옛 남친, 엘레르트이다: 헤다는 이 모든 소식을 친구 테아 엘브스테드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미는 우연히 길에서 테아를 만나, 담소를 나눕니다. 이때 헤다는 옛 남자친구 엘레르트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테아는 일찍이 자식 달린 어느 이혼남과 결혼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엘레르트가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집 여자인 테아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테아 역시 그의 고백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테아는 결국 남편과 이혼한 뒤, 몇 달 전부터 엘레르트와 함께 동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엘레르트는 테아를 만나기 전에 충격에 싸여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사랑하는 헤다 가블러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헤다는 여자 친구인 테아에 대해 질투심을 품습니다. 왜냐하면 테아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테아에 비하면 자신은 너무나 순응적이고, 소극적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8) 다시 솟구친 사랑, 그리고 질투심과 뒤엉킨 히스테리: 친구가 전해주는 엘레르트에 관한 이야기는 주인공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테아와 대화를 나눈 뒤에 헤다는 자신이 엘레르트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친애하는 K, 당신은 아시겠지요, 괴테는 어느 부부와 다른 남녀 사이의 사각 관계를 “친화력”으로 설명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주인공 헤다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미는 끝내 엘레르트와 테아 사이의 애정 문제에 개입하여 이들의 사랑을 파괴하려고 작심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남편 요르겐과의 잘못된 결혼을 청산하고, 엘레르트와 결합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작전이 필요합니다. 그미는 “내 생에 단 한번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9) 남친과 여친을 서로 갈라놓게 하기: 헤다는 옆집에 사는 브라크 판사를 찾아가서 한 가지 사항을 부탁합니다. 그것은 엘레르트가 이혼녀, 테아와 절교하도록 하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이때 판사는 주인공이 남편과 이혼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려고 한다는 것을 간파합니다. 그는 헤다의 의도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그미를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어느 날 엘레르트는 브라크 판사의 초대를 받습니다. 몸이 약해서 술 마셔서는 안 되는데, 그날 밤 엘레르트는 술을 많이 마십니다. 친애하는 K, 엘레르트는 -입센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처럼- 불행하고 자기 파괴적인 특성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그는 만취 상태에서 자신의 원고를 잃어버립니다. 원고를 주은 사람은 다름 아니라 요르겐이었습니다. 요르겐은 원고를 우연히 주어서 아내에게 건네주면서 잘 보관하라고 합니다.

 

(10) 원고의 분실 그리고 엘레르트의 자살 미수: 그 다음날 엘레르트는 헤다에게 자신의 원고 분실을 절망적으로 털어놓습니다. 이때 헤다는 원고를 돌려주는 대신에 아버지가 남긴 피스톨을 건네줍니다. 두 사람의 강렬한 사랑을 위해서 테아를 살해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엘레르트가 떠난 뒤에 주인공은 아까운 원고를 불태워 없애버립니다. 왜냐하면 엘레르트의 원고는 엘레르트와 테아를 하나로 결속해주던 대상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엘레르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테아를 살해하지 않고, 자살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총탄이 대퇴부를 관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1) 브라크 판사의 흑심, 그의 협박 그리고 유혹: 그런데 또 한 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브라크 판사는 헤다를 도와주면서, 모든 정황을 간파합니다. 그는 침묵을 지키는 대가로 헤다에게 사랑 내지 하루 밤의 정사를 요구합니다. 브라크 판사의 태도는 아첨과 위선 속에 은폐된 사회의 잔혹성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헤다는 본의 아니게 브라크 판사의 비밀스러운 정부 (情婦)로 생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 남편 요르겐 그리고 친구 테아는 서로 힘을 합하여 잃어버린 원고를 복원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러한 공동 작업을 통해서 두 사람 사이에 서서히 애정이 싹틉니다. 말하자면 헤다는 이들 사이에서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 셈입니다. 주인공 헤다는 고통과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부끄럽더라도 모든 사건들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할까? 아니면 브라크 판사의 성적 노예로 비굴하게 연명해야 할까? 헤다는 전자를 선택합니다. 그미는 옆방으로 건너가서, 나머지 피스톨로써 자신의 머리를 쏩니다. 총알은 그미의 관자놀이를 관통하고, 주인공은 즉사합니다. 브라크 판사는 주인공의 시신을 바라보면서 망연자실합니다. 그의 입에서는 “이런 일을 어찌 함부로 저지를 수 있을까...”하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12) 입센의 명작, 그리고 히스테리의 현상: 친애하는 K, 이 작품이 마음에 드는지요? 원래 입센은 여성의 비극적 삶을 묘사하려고 한 게 아니라, 개인의 태도 그리고 운명 등을 당대에 유효한 사회적 현실과 관련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19세기에 불행을 맞이한 안나 카레리나, 보바리 부인, 에피 브리스트 등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 사항을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헤다가 보여주는 “히스테리”의 증상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제기되기 전에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히스테리의 성향을 가장 생생히 보여준 작품은 바로 입센의 “헤다 가블러”였습니다. 헤다 가블러는 사랑하는 인간을 소유의 도구로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의 품에 안겨 있다고 생각할 때 그미의 마음속에서는 참을 수 없는 강렬한 질투심이 솟아올랐던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가 그러했습니다. 권력의 농간으로 헛된 그리고 너무나 강한 질투심으로 인하여,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임을 찔러 죽여야 하는 비운을 맞이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요?

 

친애하는 K, 인간은 소유물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임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자체 아름다운 법이지요. 그러나 오로지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안간 힘을 쓰는 순간, 질투심은 영혼을 잠식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