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서로박: 입센의 헤다 가블러 (1)

필자 (匹子) 2018. 3. 5. 11:14

 

(1) 다시 입센: 친애하는 K, 다시 헨릭 입센 (Henrik Ibsen, 1828 - 1906)의 작품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작품 “헤다 가블러 (Hedda Gabler)”는 만년의 원숙한 시기의 작품으로서, 1891년 1월 31일 뮌헨의 궁정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노르웨이어로 그해 여름에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바 있습니다. 입센은 이 작품의 발표로써 독일 극단에서 자신의 역량을 과시한 셈입니다. 이 작품이 발표되기 전에 입센은 “바다의 여인 (Fruen fra havet)”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바다의 여인”이 인간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묘사하고 있다면, “헤다 가블러”는 인간의 내면에 담긴 비극적 모순을 다루고 있습니다. 입센은 작품 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습니다. “작품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무엇을 다룰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의식 속에 도사린 것으로서 인습적인 무엇에 대항하려는 자세를 가리킨다.” 미리 말하건대 입센은 사각으로 얽힌 애정 관계 속에서의 갈등 구조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2) 학문 그리고 삶, 이 두 가지를 어떻게 도모할 수 있을까?: 이제 작품 내용을 다루어보기로 합시다. 요르겐 테스만은 문화사를 연구하는 공부벌레입니다. 그는 최근에 아름다운 헤다 가블러와 결혼하여, 몇 달 동안 함께 신혼여행을 보낸 뒤 크리스티아니아로 돌아옵니다. 친애하는 K, 당신이라면 밀월의 시기를 아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요? 그러나 요르겐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장 박사학위 논문 집필을 준비해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외국 체류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으므로, 시간을 활용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수많은 자료들은 고향에서 접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요르겐이 외국 대학의 서고를 뒤지며, 자료 수집에 열중합니다. 그런데 헤다는 밀월의 시간을 혼자 따분하게 보내야 했습니다. 남편의 무관심 그리고 아내의 불만은 귀국 후에 첨예하게 드러납니다.

 

 

(3) 아름답고, 자존심이 강하며 자기중심적인 여자들은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헤다는 어떠한 유형의 여자일까요? 그미의 아버지는 장군으로서, 딸을 마치 귀족의 딸처럼 귀하게 키웠습니다. 헤다는 자신감도 강하고 무척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성격상으로는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따뜻한 타입의 여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미는 자신만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었습니다. 헤다는 남편에 대해 많은 것을 요구하며, 모든 것을 냉혹하게 계산하는 유형이었지요. 이에 비하면 요르겐은 선하고 순수한 공부벌레였지요. 그의 관심은 온통 문화사 연구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가사에 세심하게 신경 쓰는 타입은 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요르겐은 식사, 빨래 등의 일에 불편함을 느껴, 결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K, 당신은 상기한 사실을 고려할 때, 그들의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사실 그러했습니다.

 

 

(4) 가사에 관한 부부의 견해차이: 그미는 “너무 열심히 춤을 추어 몹시 피곤해”하고 푸념을 터뜨립니다. 이때 요르겐은 그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교수직을 얻게 될 것이고, 그러면 두 사람 모두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에서 드러나는 것은 다음의 사실입니다, 즉 주인공은 아내를 귀중한 객체 내지 상징적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 말입니다. 요르겐은 나이든 고모님에 의해 성장했습니다. 고모님들은 가정 일에 충실하고,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유쾌한 분들이었지요. 이들에 비하면 헤다 가블러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인 두 정의 피스톨만을 애지중지 닦는 철없는 여성이었습니다. 따라서 헤다는 당시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가령 그미는 임신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작품 제목 역시 “헤다 테스만”이 아니라, “헤다 가블러”라는 것도 상징적입니다. 헤다는 남편을 위하여 모든 일을 행하는 그러한 여성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5) 불행한 결혼생활, 그러나 노라만큼 용기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헤다가 몰상식한 여자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남편을 대할 때 정중하지는 않지만, 시키는 대로 일하곤 합니다. 헤다는 자신의 갈망과 바람대로 살기를 원하지만, 함부로 행동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스캔들을 불러일으킬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미는 삶을 하나의 유희로 고찰합니다.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과의 마찰 내지는 대립 없이 살고 싶으며, 커다란 책임 역시 짊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에 그미는 엘레르트 뢰보르크라는 젊은이를 친구로 사귄 적이 있습니다. 엘레르트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고 방종하게 지내는 사람었습니다. 그미는 엘레르트의 나태한 태도를 고쳐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엘레르트가 정작 사랑을 요구할 때 때, 그미는 퇴짜 놓습니다. 남편감으로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게으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헤다는 정작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공허함을 느낍니다. 오로지 자만심과 허영심만이 그미의 권태에 심리적 양념을 뿌릴 뿐입니다.

 

 

(6) 옛 남친, 엘레르트 그리고 그의 변신: 어느 날 헤다는 헤어진 남친, 엘레르트와 재회합니다. 친애하는 K, 인간이란 어떤 계기에 의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고도 아름답지 않는가요? 엘레르트가 그러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방종한 삶을 청산하고, 학문에 정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엘레르트는 문화사에 관한 학술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고, 요르겐과 학문적으로 경쟁하게 됩니다. 요르겐이 제반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면, 엘레르트는 누구보다도 독창적인 견해를 담은 위대한 작품을 발표합니다. 이 때문에 문화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엘레르트를 질시할 정도이니까요. 엘레르트는 최근에 논문의 제 2권을 가지고 이곳 도시로 오게 되었는데, 이 책의 제목은 “미래의 문화 에너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