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서로박: 스트린드베리의 다마스커스로 향하여 (1)

필자 (匹子) 2017. 7. 24. 12:03

스웨덴의 대표적인 극작가, 아귀스트 스트린드베리 (A. Strindberg, 1849 - 1912)의 "다마스쿠스로 향하여 (Till Damaskus)"는 삼부작으로 이루어진 극작품이다. 5막으로 이루어진 제 1부는 1898년에 발표되었으며, 1900년에 스톡홀름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4막으로 이루어진 제 2부는 역시 1898년에 발표되었으나, 먼 훗날 (1924년)에 공연되었다. 그러나 제 3부는 나중에 씌어졌다. 네 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제 3부는 1904년에 발표되었으며, 1922년 괴테보리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스트린드베리는 처음부터 삼부작을 완성할 계획을 품지는 않았다. 주위 여건은 작가로 살기 힘들 정도로 암담했으며, 극작가의 세계관 역시 어둡고 염세적이었다. 1989년에서 1901년 동안 작품의 구상 자체가 전폭적으로 수정되었다. 게다가 줄거리 그리고 등장인물의 성격 역시 원래와는 달리 다루어지기도 했다.

 

아귀스트 스트린드베리 (1849 - 1912) 

 

 

 

 

제 1부는 총 17개의 엄격하게 구별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면은 교회 앞의 도로 모퉁이 그리고 커피숍을 보여준다. 거기서 작가는 “낯선 자”로 서성거리고 있다, 그는 평생 행복을 찾아다니지만, 도전적인 작품을 집필한 대가로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며 가난과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 어느 여자가 등장한다. 그미는 “낯선 자”에게 자신의 남편에 관해 이야기한다. 남편은 늑대 인간과 흡사한 의사라고 했다. “낯선 자”는 남편과 헤어지고 자신의 뒤를 따르라고 여자에게 애원한다. 이때 주인공이 마주치는 것은 도심지를 행군하는 장례 행렬이다. 행렬 속에는 시체가 누워 있는데, 주인공과 매우 닮았다. 주인공은 기이한 거지와 마주친다. 이로써 분위기는 불확실하고도 의혹으로 휩싸인 답답한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낯선 자”는 소포를 찾아가라는 쪽지를 받지만, 우체국에 가지 않는다. 보나마나 재판과 관계되는 서류들이 도착해 있으리라고 주인공은 짐작한다. 서류 속에는 분명히 자신도 모르게 법을 어긴 죄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으리라고 믿는다. 여자의 남편인 의사는 오랫동안 자신의 집에서 “낯선 자”를 기다렸다고 했다. 그는 주인공과 함께 학교를 다닌 자로서 주인공의 방문을 오래 전부터 예견하였다. 의사의 집에는 자칭 카이사르라고 불리는 정신병자가 거주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주인공의 그것과 동일하다. 그곳에서 “낯선 자”는 옛날에 본적이 있는 사람들과 마주친 데 대해 전율을 느낀다. 쓰라린 피해 의식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낯선 자”는 여자와 함께 도주한다. 의사의 집은 말하자면 “시체, 거지, 정신병자, 인간의 숙명 그리고 유년 시절의 기억” 등을 알려주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어느 특정한 장소에 오래 머물 수 없다. 언제나 기이한 불안이 그들을 어디론가 떠나도록 충동질한다. 그들은 경제적 어려움, 사회의 냉대를 피부로 절감한다. 게다가 두 사람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의해 추적당하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들은 상대방에 대해 사랑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들의 환경은 결혼하여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기에는 너무도 비참하다. 아무도 그들에게 숙소를 제공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여자의 부모님 집에서 은신처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간 곳은 여자의 부모님 집이 아니라, 마녀의 부엌이었다. 마녀의 부엌에 모인 사람들은 “낯선 자” 그리고 여자를 악의 화신이라고 단정한다. 여자는 주인공과의 약속을 어기고, 어머니의 독촉에 못 이겨 “인식의 나무”에 관한 묘한 책을 읽는다.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혼자 그곳을 떠나야 한다. 여러 곳을 방랑하다가, 언덕에서 미끄러져 추락한다. “낯선 자”는 심하게 다친다. 고립된 사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의식을 잃은 “낯선 자”를 구출하여, 간호한다. 주인공은 열병을 앓으며 공상에 잠긴다.

 

 

“낯선 자”는 사원에서 요양한다. 이때 그는 수도사를 만난다. 수도사는 주인공에게 성서 속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령 영원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은 젊은이는 악몽을 꾸면서, 꿈속에서 과거에 접했던 사람들과 재회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젊은이에 의해 상처받거나 실망을 맛본 적이 있다. 여러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의 내면은 서서히 변화를 거듭한다. “낯선 자”는 더 이상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불행과 고통 등을 통해서 심리적으로 순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거지의 다음과 같은 충고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당신은 오로지 죄악만을 믿고 있으므로, 얻는 것이라곤 죄악 밖에 없습니다. 이제 선함을 믿으려고 시도해 보세요!”

 

 

“낯선 자”는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왔던 삶의 길을 거꾸로 걷기로 결심한다. 지금까지 그는 -여자의 어머니가 주장한 바처럼- “예루살렘을 떠나 다마스쿠스로 향해” 걸어온 셈이었다. 주인공은 점차적으로 인간적이고 형이상학적 가치에 대해 새롭고도 긍정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제 1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낯선 자”는 맨 처음 장면과 동일한 장소에 앉아서 모래 속에다 무언가 그리고 있다. 모래 속에 그려진 부호는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과정, 바로 그것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낯선 자”는 다음의 사실을 알아낸다. 즉 우체국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은 재판의 서류가 아니라, 송금환 증서였다. 누군가 주인공을 위해서 돈을 부쳤던 것이다. 과연 주인공, “낯선 자”가 -여자가 부탁한 대로- 교회로 발걸음을 옮길 것인가? 그러나 이는 확실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