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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하인의 바이스케른의 유고 (2)

필자 (匹子) 2022. 5. 14. 11:17

주인공은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14년 동안 시간 강사로 일하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 자체가 상징적입니다. 독일어로 “스톨츠 stolz”는 “자부심 있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부르크 Burg”는 “성 城”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아닌 게 아니라 주인공은 “자존심 강한 꽉 막힌 인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교수자격 취득 논문 Habilitation”의 과정을 끝내지 않았으니, 정식으로 교수가 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강사 수당으로 그리고 간간이 발표하는 서평의 원고료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갑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보다도 더 가난합니다. 학자로서의 미래는 불확실한 셈이지요. 교수가 되기에는 59세라는 나이는 악재로 작용합니다. 심신이 쇠약하여 두뇌 역시 옛날처럼 신속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대학에서 문화 학을 가르치지만 몇몇 학생들만이 자신의 의무 시수를 맞추기 위하여 지루한 강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수업 내용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라도 몇몇 있어서 스톨첸부르크는 강사료를 수령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오로지 학점 취득에 혈안이 되어 있는 몇몇 학생에게 과연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스톨첸부르크의 강사직은 불확실합니다. 잘못되면 다음 학기에 더 이상 강의를 배정받을 수 없을지 모릅니다. 59세 생일을 맞이하는 그에게 대학의 연구소장은 어떠한 즐거운 말도 전해주지 않습니다.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어쩌면 그는 보따리를 싸들고 조만간 대학을 떠나야할지 모릅니다. 비록 교수자격 취득 논문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스톨첸부르크는 지금까지 열심히 연구와 교수에 몰두하며 살아왔습니다. 아침 일찍 기상하여 문헌을 뒤지면서 강의를 준비한 다음에, 대학에서 열심히 가르칩니다.

 

그의 주 전공은 빈 출신의 바로크의 작가이자 예술가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바이스케른 (Friedrich Wilhelm Weiskern, 1711 - 1768))에 관한 연구입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완성한 연구 결과물은 다름 아니라 바이스케른의 유고에 관한 연구입니다. 스톨첸부르크는 최소한 바이스케른의 유고라도 출판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두 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원고를 책으로 출판하려는 출판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바이스케른이 누구인지 모르며, 그가 무슨 일을 하다가 사망했는지에 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독백합니다.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존재야, 나와 바이스케른은.”

 

 

 

 

독일의 어느 대학은 건물을 허물고 재건축을 시도하고 있다.

 

 

스톨첸부르크가 처하고 있는 상황은 그야말로 불안정합니다. 인문학은 독일에서도 돈이 되지 않습니다. 돈벌이는 주식 시장의 몫입니다. 그러니 주인공과 같은 정신과학의 연구자들은 냉소적으로 변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화의 가치는 어디서 유래하고 누구에 의해서 조종되는지요? 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재정 청은 1만 1천 440유로를 갚으라고 요구합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어떠한 여분의 돈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게 흐릿하여, 나중에 어떻게 살아갈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국세청의 직원이 그에게 조언하여, 부채 금액을 절반으로 줄여주려고 합니다. 스톨첸부르크는 이에 대해 즐거워해야 마땅하지만,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전액이든 반액이든 그에게는 돈을 갚을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국세청의 재정 전문가는 이른 아침에 아시아의 증권 거래에 손을 대어 돈을 버는 게 더 나았을 것입니다. 국세청 직원은 주인공을 바라보고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스톨첸부르크와 같이 오랫동안 학문을 연구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적은 돈을 벌어들이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사생활의 측면에서도 주인공은 삶을 즐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혼남으로서 혼자 살아갑니다. 드물게에게서 전화로 연락 받는 게 고작입니다. 딸은 돈이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습니다. 주인공에게는 부모가 있지만, 몸이 아프거나 일상의 고충꺼리가 있으면 전화를 걸어 주인공에게 심리적으로 위안을 얻으려고 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이 자신의 고독을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은 남한과 달라서 선생과 학생 사이가 수직 구도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스톨첸부르크는 몹시 날씬한 편이며, 5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주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간간이 여대생들과 데이트하면서 경우에 따라 하룻밤을 즐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독일의 여대생들 가운데에는 학점을 핑계로 장난삼아 그와 살을 섞는 학생들이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깊은 사랑을 나누려는 여자는 주위에 한 명도 없습니다.

 

주인공은 우연히 학생 축제에 참가합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강의를 듣는 부잣집 출신의 대학생들을 만납니다. 한 학생은 공부를 접고 파리에서 알바하며 살아가고, 다른 학생은 퀘벡으로 유학하여 그곳의 대학에 다닙니다. 그는 3개월 전에 뉴질랜드에서 도쿄로 거주지를 옮겼는데, 해안가에서 서핑을 즐길 기회를 놓친 것을 너무나 아쉬워합니다. 그는 세계의 방방곡곡을 여행하면서 옷과 장신구를 수집하는 것을 취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공부에는 취미가 없고, 어떻게 해서든 학점을 취득하여 졸업하려고 생각합니다.

 

스톨첸부르크는 최근에 두 학생의 학업을 집중적으로 도와주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그의 강의를 열심히 수강하는 학생 가운데에는 홀레르트라는 남학생이 있습니다. 그는 반드시 대학교를 졸업하여 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를 물려받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졸업장을 취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주인공이 자신이 졸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 2만5천 유로를 지불할 용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홀레르트는 모든 껄끄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선생님에게 그것을 제안합니다. 그는 스톨첸부르크가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가난한 강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홀레르트를 가르쳐서 좋은 학점을 취득하도록 도와야 할지, 아니면 돈을 받는 조건으로 좋은 학점을 선사(?)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어느 대학생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포르노 사업에 뛰어든다.

 

 

스톨첸베르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은 또 있습니다. 나이 많은 여대생인데, 그미 역시 졸업하기를 애타게 갈구합니다. 캠퍼스에는 여대생들이 활보하는데, 그들의 옷차림은 패션쇼장을 방불케 합니다. 모두가 그러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책에 관심이 없고, 화장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스톨첸부르크가 도와주면, 그 여대생은 석사학위 논문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테마를 전공한 학자는 주인공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학생은 지금까지 돈에 관해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미는 어떤 다른 방법으로 도움의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는 게 분명합니다. 이유 모를 눈웃음과 미소로 미루어 그미는 자신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호텔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낼 용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뤼디거 스톨첸부르크는 지금까지 학자로서의 자부심을 지니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두 학생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결코 작은 문제로 간주할 수는 없습니다. 그 하나는 불법이고, 다른 하나는 불륜입니다. 주인공은 지금까지 가난하게 학문에 매진하여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껴왔습니다. 그렇지만 주어진 여건이 그에게 두 가지 유혹을 그냥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아마 주인공은 홀레르트로부터 거액을 수령할 것이며, 여학생의 석사 학위 논문 집필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그미와 살을 섞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당장 생활비를 필요로 합니다. 만약 그가 부정을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바이스케른의 유고에 관심이 없듯이,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요.

 

주인공은 바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있는데, 모든 게 정상입니다. 비행기는 유유자적하게 공항에 착륙합니다. 승객 가운데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무거운 생각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돈을 잘 버는 부자들입니다. 문화학자, 뤼디거 스톨첸부르크만이 그들과 전혀 다른 삶을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먹고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그는 어려운 문헌을 독파하면서 힘들게 글 쓰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그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뤼디거 스톨첸부르크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불안 속에서 계속 비행하면서 고달픈 삶을 이어가든가, 아니면 추락하여 죽음이라는 편안한 잠을 청하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어쩌면 내심 후자가 더 낫다고 생각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