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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글의 문학세계

필자 (匹子) 2021. 12. 16. 04:11

친애하는 I, 오늘은 라인하르트 이르글의 문학 그리고 그의 장편 소설,『미완성의 사람들 Die Unvollendeten』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라인하르트 이르글은 전환기 이후에 기성 작가의 반열에 오른 늦깎이의 작가입니다. 그가 2010년에 게오르크 뷔히너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해줍니다. 이르글은 1953년에 동베를린 근교에서 자라났으므로, 구동독 출신의 작가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1971년부터 1975년까지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문학이 아니라, 전자공학을 전공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르글은 1978년에 이르러, 전자 공학을 그만두고, 베를린 인민극단에서 조명 기사로서 일하면서 습작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여러 가지 조언을 전한 선배 작가는 다름 아니라 하이너 뮐러 Heiner Müller라고 합니다. 언젠가 이르글은 어느 대화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로서 미셀 푸코, 조르지 바타이유, 에른스트 윙거 Ernst Jünger 그리고 카를 슈미트 Carl Schmitt 등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윙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슈미트를 거론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카를 슈미트는 파시즘에 공헌한 보수 인종주의를 피력하는 정치학자이기 때문입니다.

 

구동독 시절에 이르글은 아예 어떠한 작품도 발표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의 원고, 『어머니 아버지 Mutter Vater』는 1985년에 “아우프바우 (건설)” 출판사에서 작가의 정치관을 이유로 출판 거부당했습니다. 1990년 이전에 탈고된 원고들은 작가 스스로 술회한 바 있듯이 “당국에 의해서 질식사의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1990년 초에 비로소 그의 첫 번째의 장편 『어머니 아버지』가 아우프바우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전후 시대 그리고 구동독의 재건 시대의 경험은 이 작품에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용해되어 있습니다.

 

이르글은 내적 독백, 심리적 몽환적 서술을 선호합니다. 전후 시기의 가난한 삶의 체험은 기억 속에 이따금 고통스러운 환영으로 드러납니다. 이르글 문학의 특이한 것은 작품 속에서 “화자” 뿐 아니라, “동반자 자아”가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동반자 자아는 서술적인 관점을 변화시키고, 소설적 화자와는 별개로 본능적 자아에 해당하는 “이드 ID”의 성찰을 이어나가는 제 2의 화자입니다. 두 명의 화자가 개진하는 이중적 서술은 이후의 작품에서 더욱더 분명하게 각인됩니다.

 

이르글이 집필한 죽음의 삼부작은 모두 구동독의 시절에 완성된 것입니다. 작가는 서로 다른 주제의 텍스트들을 중첩시키고, 극작품 공연 시에 사용되는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게 했는데, 이는 작품 내에서 새로운 효과를 드러냅니다. 이를테면 그리스 비극이라든가 리브레토 공연을 녹음테이프에 담아서 작품 속에 삽입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르글의 소설, 『적들과의 이별 Abschied von den Feinden』은 1993년에 발표된 직후에, 알프레트 되블린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작품은 구동독의 사회주의의 현실에서 서로 적대적으로 살아야 했던 두 형제의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하면서 적으로 살아왔지만, 근본적으로 피를 나눈 형제들입니다. 이들의 마음속에 공통적으로 도사린 심리 상태는 전환기 이후 함께 아우르며 살아가야하는 오시 Ossi와 베시 Wessi사이의 애증이라는 모순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후에 발표된 『개들의 밤 Hundenächte』 (1997) 역시 동서독의 대칭적 삶 그리고 전환기 이후 서로 달리 살아온 사람들의 순간적 만남 그리고 서로 아우르며 살아가는 문제 등은 이르글 문학의 기본적인 틀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컨대 이르글의 소설은 주로 다음의 사항을 극명하게 전해줍니다. 즉 인간은 누구든 간에 자신의 고유한 과거의 체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항 말입니다. 2000년에 발표된 소설, 『대서양의 벽 Die atlantische Mauer』에서 소설의 배경은 새로운 세계에 해당하는 미국으로 확장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근본에 있어서 소설의 핵심은 독일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2003년에 발표된 『미완성의 사람들』에서 작가는 체코 독일인이 겪었던 비극적 운명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르글의 언어 구사는 독자를 휘어잡을 정도로 막강합니다. 그것은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구체적인 상을 통해서 독자의 감성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냉혹하게 해부하여 무언가를 알아내려는 독자의 지적 능력을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드는 게 이르글 문학의 강점이지요. 문학은 이르글에 의하면 근본적으로 체제파괴적인 속성을 지닙니다. 때로는 과감할 정도로 탈-인습적이고 실험적인 묘사를 통해서 그는 어떤 자신의 고유한 근원적 존재를 추적합니다. 그렇기에 텍스트는 작가의 알몸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집필은 이르글에게는 자신의 근원 모든 생각과 근원 등을 텍스트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작가는 “인간은 인간에 대한 늑대이다. Homo homini lupus.”라는 홉스의 사회 심리학적 견해에 근본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기에 이르글의 문학이 이러한 사회심리학적 견해에 커다란 관심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고로 인간의 심리는 누구든 간에 주어진 권력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특정한 시대 그리고 특정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처음부터 주어진 권력관계의 이데올로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여기서 개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자생적 심리는 끝없이 피해당한다고 합니다. 이는 작가의 급진적 회의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개인은 어쩔 수 없이 고립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남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마지막 체제에 해당하는 피조물의 육체성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바로 이러한 자신의 고유한 존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이르글은 공동적이든 개인주의적이든 간에 삶의 의미 내지 구원을 기약해주는 어떠한 구호 내지 한 치의 약속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공동의 이상을 추구하는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이며, 처음부터 변질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 속에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자아 그리고 타자의 이데올로기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르틴 부버 Martin Buber가 끝없이 갈구하던 너는 나일 수 있고, 나는 너일 수 있다는 기대감은 궁극적으로 기대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옳든 그르든 간에- 이르글의 작품 속에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혹자는 이르글의 작품에는 등장인물의 고유한 입장 표명이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비판은 그의 문학 전체를 훼손할 만큼 중요한 사항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