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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하인의 '바이스케른의 유고'(1)

필자 (匹子) 2022. 5. 14. 11:11

친애하는 H, 오늘날 모든 가치는 돈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과거 사람들은 공부하여 출세한 다음에 금력을 차지하였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은 공부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적인 스포츠맨 혹은 인기 있는 연예인이 매달 벌어들이는 거액의 정확한 액수를 정확히 압니다. 또한 그들은 교수가 한 달에 몇 백만 원의 월급을 받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은 책 속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구차하게 사느니, 차라리 통 크게 돈 벌면서 살아가는 게 더 낫다고 여기지요. 한마디로 지식인들은 일반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나름대로의 어떤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지만,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자본의 시대에 돈의 힘은 너무나 어마어마하게 켜졌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주식과 부동산 놀이 등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문제는 돈이 결국 학문의 영역마저 침해하여 우리의 대학, 학문이 거의 고사 직전의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2012년 1학기 로슈토크 대학교에 등록한 신입생들이 대생길 수업을 듣고 있다.

 

 

 

이는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한의 대학들은 심하게 말하면 학문을 전수하는 곳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남한의 대학의 수는 너무 많기 때문에 학생 수를 줄이는 게 국가의 차원에서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모든 학과의 학생 수를 일률적으로 줄이려고 시도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이를테면 대학들은 물리, 화학 수학 등과 같은 기초 자연과학의 영역 그리고 문학 역사 철학 등과 같은 기초 인문과학 영역의 학생 수를 대폭 줄이는 반면에, 응용과학의 영역이라든가 사회 과학의 영역에 대해서 어떠한 메스를 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장에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순수학문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견해는 일견 타당하지만, 그 자체 근시안적입니다. 순수과학이 무너지면 응용과학은 그야말로 학문의 껍질밖에 남지 않는 법입니다. 이는 당장의 통계자료에 근거하는 견해가 아니라, 앞날을 내다보면서 대학의 미래를 숙고하는 자들의 견해입니다.

 

또 한 가지 서글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시간강사들의 비참한 생활상입니다. 그들은 남한의 대학 시스템 속에서 어렵게 버티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HK 연구 교수의 제도로 인하여 몇몇 실력 있는 강사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어느 정도 면할 수 있지만, 이러한 혜택은 거대한 종합 대학 출신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특히 순수 자연과학 그리고 순수 인문학의 강사들은 오랫동안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학위를 취득했지만, 국내에서 전입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몇 년 전에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한 어느 강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교육의 영역에서도 온존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학교와 병원만큼은 돈과 무관한 곳으로 만들어내야 할 텐데, 주어진 상황은 20년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모든 대학들은 전임 교원의 수를 늘이는 데 몹시 인색합니다.

 

친애하는 H, 그렇다면 독일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통일된 독일에서 대학의 기능 역시 서서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여전히 학문을 탐구하는 장소이지만, 학생들의 취업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독일의 대학이 신분 상승의 기관으로 전락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학 졸업자들은 사회 내에서의 어떤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남한과 같이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는 돈독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독일의 연구자들은 같은 동학의 트러스트를 형성하여 대학이든 산업체든 막론하고 동창에게 무작정 힘을 실어주지는 않습니다.

 

물론 독일의 학자들이 강인한 계파 트러스트를 형성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 담합하여 연구비를 독식한다든가, 남한의 경우처럼 교수 채용에 있어서 같은 출신의 학위 소유자를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대학 출신자들이 타 대학 출신자들과 대립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동학이라든가 학문적 계파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통일된 독일에서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학문은 인문과학 자연과학의 순수 학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당국은 최소한의 예외규정을 인정하면서 순수 학문을 보호해줍니다. 왜냐하면 인문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간에 순수 학문의 수준이 높아야 응용 분야의 수준 역시 자연스럽게 향상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응용학문은 순수학문의 자양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독일에서도 사립대학이 많이 생겨났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독일 종합 대학은 국립이므로 그나마 그러한 정책이 가능했습니다. 독일 대학의 상황이 약간의 실용주의적 성향을 띄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대학의 구조조정이 전폭적으로 추진되지 않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국가가 대학의 대부분의 비용을 관장하기 때문에, 독일의 교육부는 남한의 정부처럼 백년대계로서의 교육 정책을 조령모개 식으로 처리하지는 않습니다.

 

또 한 가지 독일 대학의 장점은 모든 학과는 폐쇄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학생 TO를 국가에서 제한하는 경우는 없으며, 교수 TO 역시 사립대학의 재정을 고려하여 제한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유사 학과는 항상 학제적으로 강의를 개설하며, 서로 소통하고 협력합니다. 모든 교수는 학과에 소속된 게 아니라, 단과 대학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학과 폐쇄 내지는 정원 감축 등으로 고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독일의 학자는 다른 전공자들로부터왜 남의 영역에 침범하는가? 자네 밥그릇만 잘 지켜라.”라는 비난을 듣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독일의 대학 교원들이 심리적으로 인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학문 연구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가령 독일에서 교수가 되려면, 박사학위는 물론이며, “교수 자격 취득 Habilitation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박사 학위를 마친 뒤에 다시 교수 자격의 과정을 마쳐야 교수가 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누군가가 교수 자격 취득을 위한 논문을 집필하면, 그의 남편 혹은 아내는 집을 떠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수년에 걸쳐 공부만 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좋아할 애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교수 자격 취득의 과정은 힘이 듭니다. 교수 자격 취득의 과정과 관련하여 한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교수 후보자라면 누구나 박사학위 취득한 바로 그 대학에서 교수가 될 수 없으며, 3년간 타 대학에서 근무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모든 학자는 객관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H,지금까지 우리는 남한의 대학의 상황 그리고 독일의 대학에 관한 제반 사항을 간략히 언급해 보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크리스토프 하인 (Christoph Hein, 1944 - )의 신작 소설 『바이스케른의 유고 Weiskerns Nachlass』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2011년에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습니다. 67세의 작가는 황금만능주의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독일 대학 사회의 슬픈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느 인간의 삶은 작가에 의하면 하나의 값싼 비행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주인공 뤼디거 스톨첸부르크는 비행기를 타고 바젤로 향하는 중입니다. 그렇다고 불안해할 이유는 없습니다. 값싼 좌석을 구매하여 그런지 몰라도 좌석이 약간 불편합니다. 간헐적으로 귀가 멍멍하고,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창밖을 바라보니, 비행기는 일순간 구름 속으로 조용히 빨려 들어갑니다. 조만간 비행기가 추락하리라고 암시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인공의 눈에는 비행기의 플로펠러가 순간적으로 정지하여 자신의 몸이 땅 아래로 추락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플로펠러는 훌륭하게 작동되는 터빈에 의해서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불안하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스톨첸부르크는 어떤 묘한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