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마르크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 (3)

필자 (匹子) 2017. 9. 17. 11:05

3.

중요한 것은 연구 대상 자체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연구자의 시각내지는 관점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블로흐의 연구 대상만을 염두에 두고 이를 비난하곤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카를 카우츠키 Karl Kautsky를 생각해 보세요. 20세기 전반기의 시기에 사람들은 “종교 갈등의 시기에 활동하던 개혁론자가 계급 문제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카우츠키의 발언을 성급하게 받아들여서, 블로흐를 신비주의 수정주의 철학자로 매도하기에 이릅니다. 심지어는 블로흐의 핵심 연구가라고 자처하는 한스 하인츠 홀츠 Hans Heinz Holz조차도 블로흐의 뮌처 연구를 마르크스 사상을 흐리게 만들고 방해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용인한 바 있습니다. 말하자면 블로흐는 홀츠에 의하면 마르크스주의의 정곡을 찌르는 대신에 외부에 서성거리면서 변죽만 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

 

자고로 마르크스를 비판하지 않은 채 그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은 -극작가, 하이너 뮐러 Heiner Müller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건대- 그 자체 하나의 배반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홀츠의 견해 역시 어떤 측면에서는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견해를 내세우기 전에 일차적으로 블로흐의 문헌을 접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그의 텍스트와 사상을 부분적으로 비판해나갈 수 있습니다. 내가 판단하기에 블로흐야 말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고유한 꿈과 저항의 철학을 개진한 사상가라고 여겨집니다.

 

 

마르크스도 블로흐도 우리와 다른 현실에서 살다간 학자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학문적 체계 내지 견해 역시 그들이 처한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여 수용되어야 합니다. 자고로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현실적 배경 하에서 참과 거짓이 가려질 뿐입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수정주의 운운하는 사람의 사고 자체가 철학적 이데올로기의 편협한 사고에 차단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뮌처, 마르크스, 혹은 악마의 궁둥이” 대신에 “마르크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