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비판 (2)

필자 (匹子) 2018. 1. 24. 11:50

6. 법은 정의와 폭력을 결합시킨 것인가? (1): 법은 아감벤에 의하면 정의와 폭력을 인위적으로 결합시킨 것입니다. 만약 법의 내부에 폭력의 특성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다면, 법은 정의롭지 않은 명령으로 인간을 옥죄이게 됩니다. “최상의 법은 최상의 불법일 수 있다. Summum ius summa iniuria.”라는 음험한 명제를 생각해 보세요. 키케로는 자신의 의무론 De officiis에서 이러한 명제로써 명백한 법적 정의를 흐릿하게 희석시키고 중화시켰습니다. 하기야 법 자체가 처음부터 정의와 폭력 두 가지 사항을 담고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법에 대해서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아감벤이 법이 정의와 폭력의 인위적 결합체이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하는 한, 그의 사고는 처음부터 법적 정의 구현을 위한 노력이라든가, 자연법 이상을 실현시키는 노력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7. 법은 정의와 폭력을 결합시킨 것인가? (2):: 법이 정의와 폭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견해의 법철학적 이유로서 아감벤은 네 가지 논거를 제시합니다. 놀라운 것은 법적 정의가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활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의회 민주주의의 틀 자체는 상대적 가치를 지닌 규범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로 아감벤은 솔론과 헤시오도스에 대항하는 핀다로스의 입장에 동의합니다. 솔론이 스파르타의 공명정대한 규범이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골몰한 반면에, 핀다로스는 폭력과 정의를 역설적으로 결합시킨 것이 바로 권력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헤시오도스에게 노모스란 폭력과 정의, 다시 말해서 동물 세계와 인간 세계를 구분 짓는 힘인 반면에, 핀다로스는 폭력과 정의가 결합되어 구별되지 않는 무엇이라고 했습니다. (Agamben 2002: 67f).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여서 아감벤은 주권을 다음과 같이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주권이란 폭력과 정의 사이의 구별되지 않는 점 ()이며, 폭력이 정의로, 정의가 폭력으로 둔갑하는 문지방이다.” (Agamben 2002: 44f), 여기서 주권을 행사하는 주체는 개개인이 아니라, 권력을 지닌 특수한 엘리트 계층의 사람입니다. 따라서 논의의 대상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 (민초들의) 행하는 능력facultas agendi”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하달되는 “(공권력의) 행하는 규범norma agendi”을 가리킵니다. 주권의 행위는 아감벤에 의하면 특수 엘리트 계층의 법적 권리로 확정되어 있습니다. (블로흐: 521)

 

8. 법은 정의와 폭력을 결합시킨 것인가? (3): 두 번째로 아감벤은 일견 플라톤에 대항하는 소피스트들의 입장에 동의하는 것 같지만, 처음부터 법의 본질에서 당위성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법은 아감벤에 의하면 정의로움에 입각해 있지만, 폭력의 속성을 일탈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플라톤은 올바른 지배의 토대를 무엇보다도 정의로움에 설정하려고 했습니다. 법은 정의에 근거해야 하며, 국가는 정의를 실천하는 체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엘리스 출신의 히피아스는 법 자체가 인간을 억압하는 폭군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알카다마스Alkadamas, 뤼코프론Lykophron 등은 노예제도를 저주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정의롭지 못한 노예 제도를 하나의 법적 미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플라톤이 주어진 현실적 정황을 거의 무시하고 제반 논리를 추상적으로 설정하여, 자신의 논의를 개진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법이 폭력과 직결된다고 하더라도 히피아스의 논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더 이상 정의에 대한 미련을 품지 못하도록 작용합니다. 어쨌든 소피스트들은 노모스에 대항하여 피지스를 옹호하였습니다. 아감벤은 피지스와 노모스의 구분 불가능성을 지적하면서, 여기서 법이 정의와 폭력의 결합체라는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9. 법은 정의와 폭력을 결합시킨 것인가? (4): 세 번째로 아감벤은 일단 한스 켈젠의 이론에 반기를 드는 카를 슈미트의 입장에 동의합니다. 국가는 켈젠에 의하면 법적 당위성의 총합체입니다. 켈젠은 객관적 법질서야 말로 국가의 핵심적 특징으로 규정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개인의 정신적 자유를 보호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켈젠은 법적 당위성의 규범을 확립하기 위해서 아돌프 메르클Adolf Merkl의 규범적 피라미드 이론을 인용한 바 있는데, 개별적 법 규범은 보다 높은 법 규범, 이를테면 헌법의 근거로 마련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Merkl: 313). 중요한 것은 메르클에 의하면 법적 당위성의 규범인데, 이것은 참됨 그리고 선함이라는 미덕과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급한 것은 입법 시에 상부의 법적 규범이 개별적 규범과 얼마만큼 상호 관련되도록 애쓰는가? 하는 물음일 것입니다. 파시즘의 법 이론가, 카를 슈미트는 노모스의 개념에서 모든 논의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노모스는 그리스어에 의하면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노모스 νομός가 그리스어로 장소의 의미로서 구역을 뜻한다면, “노모스νόμος는 법적 차원에서의 법을 지칭합니다. 이를 고려할 때 영토는 슈미트에 의하면 법적 질서의 토대와 근원으로 작용합니다. 타민족의 땅을 차지한다든가, 지역 내에서 땅을 소유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컨대 아메리카 정복자들의 무주물선점 (無主物先占)의 논리는 이러한 맥락에서는 어떠한 법적 근거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노모스는 슈미트에 의하면 공간의 확장을 획책합니다. (Schmitt 1950: 171). 여기서 공간의 확장은 공간의 점유, 다시 말해서 법질서의 확장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외부 영역을 취득하여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행위를 아울러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할 때 슈미트의 노모스는 궁극적으로 제국주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사는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 대양의 힘에 대한 땅의 힘의 투쟁의 역사로 설명될 수 있다는 슈미트의 입장을 고려해 보세요. (슈미트 2016: 17).

 

10. 슈미트에 대한 아감벤의 태도: 그렇다면 아감벤은 카를 슈미트의 파시즘의 입장에 동조한단 말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카를 슈미트에 대한 아감벤의 태도는 불분명합니다. 한편으로는 아감벤은 슈미트의 악랄한 정치적 국수주의를 부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법 이론적 논거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슈미트가 언급한 과실 책임의 한계성을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법이 정의와 폭력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발언을 조건 없이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슈미트가 개진하는 과실 책임은 인민의 주권을 고려한 법의 이상을 거부하고, 처음부터 개개인을 법적 올가미로 구속하려는 주권 권력의 억제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Nulla poena sine lege.”라는 자연법학자, 안젤름 포이어바흐Anselm Feuerbach의 발언은 개개인의 고유한 권리를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하지 않는가요?

 

11. 만인의 주권이 고려된 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여기서 주권이란 개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개개인이 가진 것 없고, 처음부터 힘없는 존재라면, 주권은 허례허식적인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주권을 언급하지만, 사실은 만인의 주권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실 맨 처음 탄생한 로마법은 근본적으로 가진 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태동한 것입니다. 울피아누스Ulpian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로마법이 채권자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슈미트는 유럽 내의 주권과 타 지역의 주권을 구분했습니다. 유럽 내에서 주권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서 유럽 국가 내에서 동등한 것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주권 없는 땅, 이를테면 신대륙의 경우는 주권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주권은 슈미트에 의하면 영토에 근거하는 것으로서, 국가가 자신의 법적 권한의 가능성 없이 최후로 행사할 수 있는 폭력입니다. (Schmitt 1993: 19). 이로써 슈미트는 파시스트의 비상사태의 권한을 무제한적으로 용인하고 있습니다. 아감벤은 싫든 좋든 간에 주권이 슈미트의 견해에 따라 규정되고 있음을 시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아감벤은 이른바 정치적 견해가 배제된 슈미트의 법 이론을 짜 맞추기 식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