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

필자 (匹子) 2020. 4. 19. 11:33

 

소포클레스의 백 여 편 가운데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은 불과 약 7편 정도입니다. 그 가운데 작품 「아이아스」는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기원전 약 500년 50년대 후반부에 작가는 이 작품을 집필한 것 같아 보입니다. 작품 집필의 간격으로 미루어 「아이아스」는 소포클레스의 오랜 숙고 과정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소포클레스 초기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양분 구성 (Diptychon)”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소포클레스는 「아이아스」에서 그리스 비극의 핵심적 테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실수, 그리고 이에 대한 후회 등을 지칭합니다. 작품은 인간이 처한 처절한 비극적 운명이 오로지 죽음을 통하여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맨 처음 대목 (1행 - 133행)은 어느 인간의 고립화 현상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디세이는 수상한 발자국을 따라 아이아스의 막사로 가다가 여신 아테네를 만납니다. 여신은 오디세이와 대화를 나눕니다. 여기서 아이아스의 광적 행위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Datei:Hephaistos Thetis at Kylix by the Foundry Painter Antikensammlung Berlin F2294.jpg

 

 

헤파이스토스는 무기를 만들어서 테티스 여신에게 건네준다. 여신은 자신이 애호하는 영웅 아킬레스를 위해서 놀라운 무기를 만들어달라고 불의 신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아이아스는 죽은 아킬레스의 무기를 놓고 오디세이와 경쟁하다가 그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 장수들이 오디세이가 아킬레스의 유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날 밤 아이아스는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그리스 장수들을 마구 죽이고 돌아업니다. 그러나 아이아스가 살해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소 떼들이었습니다. (혹자는 아이아스가 양 떼들을 그리스 장수로 착각하고 마구 칼을 휘둘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실 가축들을 그리스 장수로 착각하고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사실인즉 아테네 여신이 그를 미워하여, 일시적으로 광증에 사로잡히도록 조종한 것이었습니다.

 

 

 

아이아스는 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여신과 대화를 나누며, 그미에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거사에 대해 의기양양해할 정도입니다. 아테네는 광증에 사로잡힌 주인공에 대해 연민의 정을 지니고 있는 오디세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들에게는 인간들의 겸손한 태도가 아름답게 보이고, 만용과 자만심은 증오스럽게 보일 뿐이야.” (이렇듯 소포클레스에게는 신들의 활동은 인간에게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수수께끼로 나타날 뿐입니다.)

 

 

 

아이아스의 아내 테크메사는 아들 에우리사케스를 끌어안고 통곡하고 있다.

 

아이아스의 아내 테크메사는 스스로 명예를 더럽힌 남편을 맞이합니다. 광란의 어두움은 어느새 그의 눈에서 사라지고, 아이아스는 마침내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인식하게 됩니다. 물론 그는 이에 대한 보복이라든가 용서를 요구할 정도의 죄의 범행을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과실에 불과합니다. 이는 소포클레스 비극에서 그야말로 유형적인 것입니다. 주인공은 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과실, 다시 말해 실수를 저질렀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신으로부터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아이아스는 인간으로서 명예를 잃었다는 굴욕감을 견디지 못합니다. 여기서 영웅의 자존심은 파괴되지 않습니다. 그는 아가멤논 왕족 그리고 오디세이 등을 여전히 증오하고 있으며, 자신의 품위 그리고 강한 능력에 대해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아스의 광란은 세인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이로 인해서 그의 품위는 처참하게 능욕 당한 것입니다. 결국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아이아스는 헥토르로부터 선물 받은 불행의 칼을 어딘가에 숨겨두겠다고 거짓말하며, 집을 나섭니다. 마지막으로 독백하면서, 헥토르로부터 선물 받은 칼을 해안가에 수직으로 세워놓고, 그 위에 뛰어들어 자살합니다

 

 

 

아이아스의 이복동생 토이크로스는 아가멤논 왕가 사람들과 갈등을 빚습니다. 이들은 죽은 자의 묘지 문제로 강도 높게 노래합니다. 지금까지 그리스에서 자살한 자를 성대하게 매장시킨 경우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연극 이론가들은 아주 지루하다는 이유에서 이 대목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비난은 결코 정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대목을 통해서 비극적 사건이 내적인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이는 아이아스가 좋은 땅에 매장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오디세이는 죽은 자의 명예 그리고 고결한 용기를 인정함으로써 사회적 우주적 질서를 바로잡을 뿐 아니라, 나아가 그리스 군대로 하여금 단결하게 조처합니다. 맨 마지막에 오디세이는 영웅의 끔찍한 불행에 대해서 인간적 위대함으로 보여주고, 인간 존재의 어두운 면에 대해 동정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결코 꺾일 수 없는 용기 그리고 자부심은 아이아스를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이에 대립되는 인간형은 명상적이고도 지혜로운 오디세우스입니다.

 

 

 

아이아스의 모습

 

아이아스는 명예를 고수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장수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에서 우리는 한 가지 특성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아이아스가 영웅성에 근거하는 어떤 영원한 철칙을 고수한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이름에 달려 있는 아에이 aei”는 항상 내지 언제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반대말 우포Oupote”와 함께 영웅시대의 가치는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전해줍니다. 어쩌면 그의 죽음은 시간에 대항하며, 인간의 유한한 삶에 저항하는 저항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아이아스는 신에게 이리저리 조종당하는 인간의 변화불측한 유한한 삶을 벗어나서 하데스로 향해 떠나고 싶어 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데스의 공간은 모든 변화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고려할 때 오디세우스가 아이아스의 광기를 고찰하면서 중얼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은 그 자체 의미심장합니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는 단지 이미지, 실체가 없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마치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의 관점에서 고찰하면 지극히 어리석게 비치겠지만, 자신의 고결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사유가 얼마든지 신의 뜻에 좌지우지 되지 않고, 인간의 자의의 행동으로 일관성 있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욥에 대한 해답 Antwort auf Hiob(1952)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을 신 또한 똑같이 경험하지 않는 한 신과 인간의 화해는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아이아스의 몸에는 검은 피가 흐릅니다. 그의 검은 피는 인간과 신 사이에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임철규: 그리스 비극 246쪽 참고). 결국 아이아스는 자신의 파멸을 인정하지만, 자신의 패배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