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서로박: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필자 (匹子) 2020. 4. 7. 14:56

노르웨이의 작가, 크누트 함순 (Knut Hamsun, 1859 - 1952)은 20세기의 기이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모든 인습을 거부하는 저항자이자, 낭만주의자이다. 함순은 충동적 삶 그리고 인간의 개인적 창조력을 말살시키는 모든 장애물에 대해서 처절하게 저항한 작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순은 방랑자 혹은 여행자 등에 대해 동정심을 느꼈다. 왜냐하면 방랑자 그리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은 인습적 세계가 얼마나 인간의 행복을 차단하고 있는가를 꿰뚫어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크누트 함순은 여러 곳을 방랑하였다. 나이 20이 되던 해에 그는 북 아메리카로 여행하며, 그곳에서 모든 직업을 전전하면서 살아간다. 1882년 오슬로로 되돌아온 함순은 폐결핵에 걸려 고생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1886년 다시 아메리카로 건너간다. 약 2년간 행했던 그의 직업은 전차 운전수, 농부, 어부 등이었다. 때때로 함순은 그곳 사람들에게 노르웨이 문학에 관하여 강연하기도 했다. 1888년에 그는 다시 귀국한다. 함순의 마음속에 증오심을 불어넣은 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 영혼을 말살시키는 앵글로아메리칸 문화, 바로 그것이었다.

 

 

 

 

 

 

 

 

 

 

"굶주림 (Sult)"은 1890년 간행되었다. 소설 속에는 거의 스토리가 없다. 주인공, “나”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유추하며, 성찰한다. “나”는 도시, 크리스티아나를 배회하며, 굶주린다. 주인공은 내성적인 지식인으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오랫동안 굶으면서, 존재의 가장 밑바닥을 체험한다. 지금까지 “나”는 전당포에서 물건을 저당 잡히면서 근근히 몇 푼을 얻었다. 지금까지 “나”는 끊임없이 원고를 써서 여러 잡지사에 보냈지만, 원고들은 언제나 거절당하곤 했다. 굶주림은 소설의 핵심적 모티브인데, 여러 단계 속에서 차례로 묘사된다. 문제는 오랫동안 빵 한 조각도 먹지 않아서 주인공이 정신병리학적인 쇠약 증세에 빠져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굶주림을 통하여 주인공의 오관은 가장 첨예하게 되고, 부위의 현상은 가장 분명하고도 예민하게 감지된다는 데 있다.

 

 

극도의 굶주림은 주인공 “나”의 감각을 아주 예리하게 만들고, 나아가 서서히 죽음에 직면하는 상태를 뼈저리게 체험하게 만든다. “혼란스러운 상태는 온 몸으로 퍼져나가고, 나의 귀에다 가장 광적인 속삭임을 들려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순서에 따라 하나씩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굶주림에 의해서 야기된 정신분열의 양동 양상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이를 악물면서, 자존심을 지킨다. 다시 말해 “나”는 가장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고, 주위의 모든 도움을 거절한다. 이로 인하여 주인공은 어떤 끔찍한 육체적, 심리적 파국으로 향해 치닫게 된다.

 

 

사랑의 이야기가 소설 네 번째 단락의 모티브로 작용하며, 하나의 사건을 이어나간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난다. 그러나 이 여자는 주인공의 아주 예민한 감성을 광증으로 곡해한다. 여자의 태도는 주인공의 상황을 더욱더 위험 속으로 빠뜨린다. 존재의 마지막 순간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기이하게도 어떤 일시적 탈출구를 발견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방황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습작이었다. 다시 말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주인공은 마치 미로와 같은, 대도시의 도로를 따라 방황하거나,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조금도 의식하지 않은 채 정신나간 사람처럼 글을 갈겨대곤 한다.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어쩌면 신이 나를 파멸하려고 의도하고 있는가 아닐까?”

 

 

 

 

 

 

 

 

 

 

위기의 정점에 다다랐을 때 주인공은 어떤 우연에 의해서 구조된다. 러시아의 어느 선장이 그를 선원으로 택하여,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 태운다. 소설은 함순의 자전적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1886년경에 노르웨이의 수도에서 수많은 글을 써서 궁핍하게 생활했으며, 미국으로 여행한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함순 소설을 이해하는 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관찰, 성찰 그리고 심리적 진행 과정에 대한 해명이다. 문제는 주인공이 굶주려야 하는 사회적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자신에 관한 주인공의 관찰 그리고 묘사는 독자에게는 서술자의 외향성으로 뒤바뀐다.

 

 

작품에 나타나는 내적 독백, 체험 화법의 표현 수단 등은 프루스트 (Proust) 그리고 조이스 (Joyce) 등을 연상시킨다. 함순은 서술된 시점 대신에 서술하는 시점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서술의 기법은 현재화된 현재 그리고 기억되는 과거 사이를 끊임없이 이전하고 있다. 따라서 주인공의 심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주위 환경과 시간이 그의 유추하는 의식에 의해서 나뉘어지는 부분이다. 따라서 다음의 사항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즉 함순이 1891년 어느 강연에서 입센 (Ibsen), 비오른센 (Bjørnsen), 킬란트 (Kielland) 등으로 대표되는 노르웨이 문학적 전통을 청산하고, 이른바 (니체에 의해서 파생된) 반문명적 경향을 지닌, 어떤 심리 문학을 주창하는 사항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