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서로박: 입센의 페르 귄트 (3)

필자 (匹子) 2019. 11. 4. 09:28

11.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아가는 어머니, 아들에게 집착하다: 페르 귄트의 어머니 성격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운 여성입니다. 남편 욘 귄트는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미는 남편으로부터 등한시 당하자, 오로지 아들에게 집착합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들인 페르 귄트는 더욱더 혼란스러워하고 부담감을 느낍니다. 아제의 행동에는 일관성이 없고, 모순적인 특성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제는 돼지 같은 아들을 두었다고 투덜거리는가 하면, 아들에게 마구잡이의 욕설을 퍼붓습니다. “네 놈은 살인자의 아들이야.” 그미의 이러한 태도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아제는 아들이 더욱더 자신의 처지를 더욱더 잘 이해해주기를 바라며, 어머니의 사랑을 인정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이는 아들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의 엄청난 악영향을 끼칩니다. 첫째로 페르 귄트는 정작 어머니를 잘 이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의 불안정한 심리 구조를 은연중에 답습합니다. 주인공의 방랑벽 그리고 불안한 마음은 모두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수용한 것입니다. 둘째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 욕구는 아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합니다.

 

12. 페르 귄트의 끝없는 노력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페르 귄트가 끝없이 많은 권력과 금력을 장악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하는 행위 역시 어머니에 대한 사랑, 바꾸어 말해서 어머니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욕망과 관계됩니다. 적어도 어머니가 자신에게 그토록 완강한 왕의 권력 그리고 과거의 찬란한 재화를 되찾아오라고 은근히 강요하는 한, 페르 귄트의 욕망은 결코 제어되거나 중단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그가 노인이 되어도 죽은 어머니에 대한 이러한 감정은 결코 파기되지 않습니다. 요약하건대 페르 귄트는 자식 된 도리로서 어머니가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살지 않도록 해야 하고, 어머니의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그는 마치 왕처럼 권력과 부를 차지하려고 가문의 수치를 씻으려고 끝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 편 페르 귄트는 어머니가 요구하는 바, 아버지를 대신하는 사랑의 객체로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머니의 애정에 부합해야 한다는 마음은 결국 페르 귄트로 하여금 나르시시스트로 변모하게 만듭니다. 쉽게 말해서 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누지만, 결국 그는 자신과 맞는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나르시시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13. 페르 귄트의 인성의 세 가지 특성: 이와 관련하여 페르 귄트의 인성은 세 가지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일관된 행동을 행하지 못합니다. 이는 심리적 변덕스러움 내지 자기애에서 비롯되는 현상입니다. 이를테면 배가 풍랑을 만났을 때 페르 귄트는 갑판 위의 재물을 선원들에게 나누어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즉시 자신의 결심을 철회합니다. 둘째로 그에게는 어떤 목표 지향성이 없습니다. 그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방랑하는 까닭도, 언제나 몽상에 사로잡히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세 번째 페르 귄트에게는 어떤 끈덕진 면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사항에 몰두하는 경우는 그의 행동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페르 귄트는 어머니처럼 쉽게 흔들리는 존재로서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입니다. 그에게서 결단성이 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나르시시즘의 욕구 때문입니다.

 

14. 자기 정체성 결여에서 비롯하는 나르시시즘: 페르 귄트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실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그가 옷을 자주 갈아입는 것 역시 정체성의 결여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세상은 페르 귄트에게는 하나의 연극 무대와 같습니다. 그가 많은 여자를 사귀지만, 정작 한 명의 여인을 깊이 사랑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내면의 거울상을 사랑하는지 모습니다. 이러한 거울상 속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죽을 때에 그는 마치 배우처럼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아제의 죽음 앞에서 페르 귄트는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성 베드로의 목소리를 흉내냅니다. 그의 이름이 페르 다시 말해서 페트루스를 연상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페르 귄트는 영우이며 성자로 연기하는 것입니다.

 

15.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성은 없다. 그렇기에 그는 아니트라 그리고 솔베이그 사이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밖에 페르 귄트에게는 마음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한 명도 없습니다. 그가 배려해야 하는 유일한 인물은 오로지 어머니밖에 없습니다. 페르 귄트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과거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즉 과거에 살던 부모의 왕궁을 다시 건설하는 일 그리고 가급적이면 많은 재화를 벌어서 가난에 대한 어머니의 두려움을 해소시키는 일을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가 죽은 뒤에도 자신의 행동은 어머니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적어도 페르 귄트의 내면에 어머니의 거울상이 있는 한 그에게는 자기, 다시 말해서 자신의 고유한 특성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 페르 귄트는 평생 고유한, 결코 대치될 수 없는 자기 존재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양파에 대한 비유 역시 자신의 비어 있는 행적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