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필자 (匹子) 2019. 1. 8. 13:07

친애하는 O, 오늘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Metamorphoseon Libri』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비디우스의 본명은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 나조 (Publius Ovidius Naso)이며, 기원전 43년에 태어나 기원후 17년, 혹은 18년에 사망하였습니다. 오비디우스의 아버지는 기사 출신으로서 나라에 공헌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비디우스는 아버지의 뜻대로 관리의 길을 걸으려고 하였으나, 도중에 시인으로서의 뜻을 굳혔습니다.

 

오비디우스는 두 번 결혼했으나 실패하고, 망명을 떠날 때까지 세 번째 아내와 다정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일찍 여러 번 결혼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시와 음악을 사랑하는 천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름다운 연애시를 작사하여 노래 부르는 시인은 한 마리의 꿀벌이었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성들은 갓 피어오르는 장미덤불로서 시인을 유혹했지요. 어쨌든 두 번째 결혼에서 딸이 태어났는데, 그의 딸은 세 번째 아내와 함께 오비디우스의 말년의 시구에서 그리움의 대상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자고로 시인은 권력자의 곁에 서성거리든, 권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든 간에 피해당하지 않으면, 외면당하는 숙명을 지닙니다. 시인과 권력자는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물과 기름과 다를 바 없습1니다. 오비디우스는 왕족의 처녀 총각들과 친분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는 기원후 8세기에 엘바 섬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흑해 지역으로의 망명 생활을 하라는 황제의 칙서를 받게 됩니다. (흑해 지역은 오늘날 루마니아에 속하는 콘스탄차라는 곳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바에 의하면 그의 연작시,『사랑의 기술 Ars amatoria』의 몇몇 행이 아우구스투스황제의 엄격한 도덕성에 재를 뿌렸다는 것입니다. 사실인즉 오비디우스의 시구가 문제된 게 아니라, 시인이 왕족의 사생활에 묘하게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습니다. 오비디우스는 황제의 손녀, 줄리아의 어떤 애정행각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는데, 이를 간파한 아우구스투스는 행여나 왕족의 풍기 문란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 시인을 아무도 살지 않는 흑해의 먼 곳으로 귀양 보낸 것입니다.

 

오비디우스는 재산을 뺏기고 아내와 생이별 후에 로마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위대한 시인은 끝내 타향에서 17년 동안 고독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연작시 『고독 Tristia』을 읽으면, 우리는 그가 얼마나 외로움 속에서 허송해야 했으며, 고통 속에 살아갔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 누워있는 나, 달콤한 연애이야기의 시인인 나조는 자신의 재능으로 파멸하고 말았네/ 지나가는 그대는 나조의 뼈가 여기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Hic ego qui iaceo tenerorum lusor amorum/ Ingenio perii, Naso poeta, meo.”

 

오스트리아 작가,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Christoph Ransmayr는 1988년에 장편소설『최후의 세계 Die letzte Welt』에서 망각 속에서 이어진 오비디우스의 마지막 삶을 생동감 넘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장희권 교수에 의해서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어서, 2006년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간행된 바 있습니다.

 

 이제 『변신이야기』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서사시 『변신이야기』는 판본에 따라 도합 700행에서 900행의 다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비디우스는 기원전 1세기에 집필을 착수하여 기원후 10년경에 탈고하였습니다. 변신이야기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전해 내려오는 250개의 전설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설은 모조리 변신, 다시 말해서 형체의 변화에 바탕을 두고 있지요. 아닌 게 아니라 “변신”이란 엄밀히 따지면 “형태의 변화 (μετα + μορ- φή)”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들, 반신들, 요정들 그리고 영웅들은 어떤 놀라운 계기에 의해서 다른 형체로 변화되는데, 오비디우스는 바로 이러한 형체 변화에 착안하여 모든 전설을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오비디우스는 과거의 실제 사실에 비중을 둔 게 아니라, 특정 인물을 둘러싼 변신이라는 서사적 요소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피조물의 삶을 관장하는 고대의 종교적 기능이 은밀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서사시에는 한 사람의 핵심적 주인공이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중심적인 뼈대 역시 결여되어 있지요. 일견 수많은 소재들이 일관성 없이 열거되는 것 같지만, 소재 내지 육체가 줄거리 속에서 기이하게 변화하는 게 특징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마치 신화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변신을 위해서 서술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태초의 시대, 창세기, 신의 집회, 거대한 홍수 등의 이야기가 언급되는가 하면, 최고의 권능을 지닌 제우스, 아폴론을 둘러싼 신비로운 이야기, 영웅 카드무스, 페르세우스,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등과 관련되는 무용담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뒤이어 트로이 전쟁을 둘러싼 우여곡절 그리고 트로이의 최후의 장수로서 나중에 로마 건립에 초석을 닦은 명장, 아이네이스에 관한 행적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물론 오비디우스가 살던 시대에는 인간의 실질적 삶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종교적 권능이 여전히 온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영웅들에 관한 변신 이야기에서 숙명으로서 관여하는 신의 권능이라든가 종교적인 계명 등의 영향이 어느 정도 약화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당시의 헬레니즘 문화의 배경을 고려할 때 매우 혁명적인 서술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비디우스는 변신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신의 능력으로부터 상당 부분 벗어나서, 특히 “사랑”과 “질투”, “갈망”과 “동경”, “의지”와 “명예욕” 등과 같은 심리적 정서를 강조하였습니다. 변신이야기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신의 뜻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담겨 있는 심리적 에너지에 의해 느끼고 행동합니다. 이를 고려할 때 오비디우스는 인간 심리의 섬세한 분석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오성 ratio” 그리고 “정서 furor” 사이에서 갈등을 빚는 인물들도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등장인물들은 겉으로는 개인적 도덕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감정과 정서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미가 사랑하는 임에 대한 배신으로 인하여 이러한 갈등구조는 현대인의 심리적 왜곡 현상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점에서 문학 치료의 문헌으로서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는 오늘날 심리학 영역에서 자주 다루어지곤 합니다. 가령 자아의 균열과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논할 때 오비디우스가 자주 언급되곤 합니다. 가령 메데아 Medea를 예로 들어봅시다. 오비디우스는 타키투스의 글 그리고 에우리피데스의 극작품을 바탕으로 메데아에 관한 서사시를 구상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메데아는 콜히스의 공주로서 멀리 코린트에서 온 금발의 백인 남자인 이아손을 사랑합니다. 그미는 사랑하는 임 때문에 조국과 부모를 배신하여 타국에서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그미에게 이아손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메데아는 이아손로부터 배신당합니다. 이아손이 자신을 저버리고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품에 안겼을 때, 그미는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화에 의하면 남편에 대한 질투와 보복으로 인하여 자신의 쌍둥이 아들을 살해하는 잔악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남성의 관점에서 파악된 사실과는 전혀 다른 거짓된 전설일 수도 있습니다. 독일의 작가 크리스타 볼프는 소설 『메데아』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자식을 죽이는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남성적 이데올로기는 한 명의 속죄양을 필요로 했고, 이로 인하여 메데아가 악녀로 둔갑하여 전해졌다고 합니다.

 

친애하는 O, 『변신 이야기』의 내용을 낱낱이 서술하는 것은 장황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를 빌어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와 관련되는 시링크스 이야기만을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첫 번째 시링크스 이야기는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에 실려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바위 산 속에 살고 있는 인디언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즉 젊은 인디언은 평원으로 내려가서 피리를 불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임과 헤어져 있어야 하는 슬픔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그러면 그가 사랑하는 여성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간에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 목양신 (牧羊神)은 아름다운 요정들 가운데 하나인 나무의 요정, 시링크스의 뒤를 추적한다.

 

시링크스는 가느다란 허리와 백옥 같은 피부를 지닌 여성처럼 보입니다. 목양신이 사랑을 고백했을 때, 시링크스는 두려운 듯 그에게서 도망칩니다. 벙어리 냉가슴 앓던 목양신은 어느 날 꿈에 그리던 시링크스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미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합니다.

 

시링크스는 그를 피해서 숨으려고 하나, 강물이 그미를 가로막는다. 요정은 ‘물의 자매 liquidas sorores’인 파도에게 애타게 간청하여, 자신을 변신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목양신은 나무의 요정 시링크스를 붙잡는다. 이때 그의 손아귀에 포착된 것은 갈대뿐이었다. 목양신은 잃어버린 연인에 대한 슬픔을 몹시 한탄하며, 통곡한다. 그 동안에 바람은 갈대의 구멍을 통하여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게 한다. 갈대의 아름다운 소리에 목양신은 너무나 감동한다. 이때 그는 갈대를 꺾어 묶는다. 앞쪽에는 긴 갈대, 뒤쪽에는 짧은 갈대로 배열하여 단계를 지어, 왁스로 접합시킨다. 목양신은 첫 번째 음을 불어본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바람의 숨결처럼 들렸지만, 즉시 목양신의 시링크스에 대한 그리움, 사랑의 상실에 대한 한탄을 표현해냈다. 이로써 목적 (牧笛)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 제 4권, 열린책들 2004. 2223쪽 이하.)

 

친애하는 O, 여기서 오비디우스가 전설 속의 변신 이야기만 막연히 들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비디우스는 악기가 탄생한 최초의 모티프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타악기를 제외하면 이 세상에서 제일 처음 만들어진 악기는 피리입니다. 갈대를 엮어 만든 팬파이프 (팬플룻)를 생각해 보세요. 목양신은 아름다운 요정을 낚아채지 못했습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갈대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임을 상실한 아쉬움으로서의 깊은 한숨은 갈대의 구멍을 통하여 아름다운 음으로 배출됩니다.

 

바로 이 순간 아름다운 음이 갈대를 흘러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요정과의 어떤 성적인 결합에 대한 위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적어도 그의 손에 피리의 음이 남아 있는 한, 사라진 아름다운 요정 시링크스는 그의 곁에 머무는 셈입니다. 음이란 멀리 떠나 있는 임을 갈구하는 소리이며, 음악이란 멀리 떠나 있는 임과의 대화입니다. ㅎㅎ

 

 

 

문헌 소개: 오비드 신화집: 변신이야기, 김명복 옮김, 솔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