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문학 이론

서로박: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

필자 (匹子) 2020. 7. 15. 11:05

 

 

 

테오도르 아도르노 (본명은 Theodor Wiesengrund, 1903 - 1969)의 "미학 이론"은 그의 사후 1년 만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간행되었다. 아도르노의 미학은 모든 이상주의적 유물론적 내용 미학을 거부한다. 그것은 자신의 헤겔 비판서인 "부정의 변증법" (1966)의 내용, "새로운 음악의 철학"에 실린 예술 이론 전반적 입장 그리고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쓴 "계몽의 변증법" (1947)에 나오는 입장 등을 포괄하고 있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미적 경험이란 철학적 인식을 보완하는 무엇이라고 한다. 철학적 인식이란 그 자체 사회에 대한 떠오르는 비판적 의식이다. 이에 비하면 예술이란 시대적 역사를 무의식적으로 기술한다. 헤겔의 이상주의적 미학에 따르면 아름다움, 즉 미란 “이념의 어떤 감각적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헤겔은 이념을 실제 현실에서 인지될 수 있는 형태로 파악한다. 헤겔에 의하면 아름다움이란 그저 이념에 종속되는 감정적인 무엇에 불과할 뿐이다. 이에 비하면 아도르노는 아름다움을 “동일화하려는”, 다시 말해 개념 속으로 포섭시키려는 사고의 현실적인 무엇 내지는 수정된 무엇으로 이해한다.

 

 

이미 "계몽의 변증법"은 미메시스 (Mimesis)를 신화와 근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의 주체가 자신의 해방을 위하여 무엇을 상실했는가? 라는 내용을 재구성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학 이론"은 미메시스를 (상기한 내용 미학의 의미에서) 자연에 대한 모방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미메시스란 아도르노에 의하면 성찰 이전의 관점, “사고의 말하자면 생리학적인 이전 형태”이다. 예술은 모방적 태도로부터의 도피이다. 주체는 -미메시스와 오성 사이의 역사적 구분 이래로- 예술이라는 인지 행위 (Aisthesis)를 통해서 다시금 자신과 다른 무엇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 아도르노는 바로 이러한 인지 관계를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명명한다. 즉 “객체로 향하는 주체의 비폭력적 밀착 (ein gewaltloses Anschmiegen des Subjets ans Objekt)”. 인지 관계는 “특정한 부정”이자 오성에 대한 결연한 반박이다. 모든 것을 동질화시키려는 오성의 사고는 -아도르노에 의하면- 지금까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내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낳았다고 한다. 그러한 한 "미학 이론"은 "계몽의 변증법"에 나타난 문명 비판을 계속 진척한 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정의 변증법"은 -철학에서 미메시스적 요소에 관한 재론이 과연 어떠한 사고를 창출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개념들 (Begriffe)은 어떤 사실 (eine Sache)과는 동일하게 위치하지 않으나, 사실을 둘러싸고 있다. 우연적으로 결합되는 개념들 그리고 번개같이 작용하는 견해들에 의해 사실에 대한 해석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해석들로 인해 사실은 압살 당한다. 이와 관련하여 예술이란 “개념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동경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린다. 다시 말해 (사실 그리고 개념 사이의) 대립적 상황은 어떤, 미적인 무엇을 마련해주는 인식론적인 형성적인 언어를 창조한다.

 

 

미메시스적인 것은 아도르노에게는 오성 (Ratio)의 어떤 수정 내지는 오성의 어떤 변형이다. 그렇기에 아도르노는 자신의 고유한 논리를 개념들과의 주사위 던지기 게임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엣세이 방식으로 전개한다. 이러한 방식은 두 가지 복합적인 견해를 요구하고 있다. 첫째로 미적 성찰은 예술의 어떤 기이한 상을 형성시키는데, 이러한 상은 “미메시스와 합리성 간의 긴장되는 형성 상태”에서 비롯한 것이다. 가령 예술이 사회적 가상에 대해 저항하는 곳에서 조차도 예술은 다만 하나의 가상일 뿐이다. 왜냐하면 의미에 관한 암시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미적인 것과 역사 사이에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긴장 관계가 온존하고 있다. 비록 예술이 단순히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것을 부정하려고 한다고 하더라도, 예술 속에는 역사가 이미 침전되어 있다. 그럼에도 미적 태도는 거짓된 전체성에 대한 비판을 지향하면서, 다음의 사실을 알려준다. 즉 합리성이 지금까지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말이다.

 

 

아도르노는 확증성의 (전략적으로 사용되는) 개념 그리고 미적인 것 사이의 팽팽한 모순 관계를 정언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는 한편으로는 예술의 유토피아적 요구를 “(상기한 모순 관계의) 가능한 화해의 지평속에 담긴 모순의 의식”으로 보존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도르노는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과는 다른- 다음의 사항을 명확히 하고 있다. 즉 예술이란 불변수 (Invariante)를 통해서 해석될 수 없으며, 오히려 변수의 법칙에 의해서 단순히 현실적인 것을 일탈하는 무엇, 어떤 다른 것으로부터 자유화되는 무엇이다.

 

 

아도르노는 1961년도의 베케트 연구, 1956년 음악과 문학의 관계를 해명하면서, "미학 이론"에 담긴 미적인 것의 변증법적 규정을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모던 예술에서 역사적 진실은 아직 표현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만이 쇼크처럼 드러날 수 있는데, 이는 오로지 예술의 “껄렁함 (desinvolture)”을 통해서 도전받을 수 있다. 예술의 껄렁함은 “주관적 의식속의 객관성”을 일탈시키고, 예술의 모든 표현 형태를 창조한다. 말하자면 아도르노는 -가령 "음악과 언어에 관한 단장" (1956)에서- 예술적 표현 형태를 “의미하는” 언어로부터 구분되는, 잃어버린 전체 언어의 반쪽에서 발견하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현실 파악 자세는 제스처로 머물고, 예술의 문자는 어떤 움직임의 반복이며, 예술의 입지점은 아도르노에게는 현실에 대한 모사가 아니라, 현실의 역사적 본질에 대한 암호의 언어일 뿐이다.

 

 

원래 "미학 이론"은 이데올로기 비판으로 향하며, 예술속에 비판적으로 잠재된 유토피아적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집필되었다. 최근에 사람들은 아도르노의 이론을 니체의 예술 철학과 관련시켰다. 이때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예술의 고대적인 요소 내지는 “무개념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속에 잠재된 쾌락주의를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학 이론"은 포스트 모던한 사고의 고고학적 작품에 속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후기 내지는 신 구조주의에서 발전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미리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