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문학 이론

서로박: 미셀 푸코의 문학 이론

필자 (匹子) 2021. 5. 17. 19:12

푸코 (M. Foucault, 1926 - 1984)는 그의 여러 가지 글 (「작가란 무슨 일을 하는가?」, 「루소의 대화록 서언」, 「어떤 끔찍한 지식」, 「침범의 개념에 대하여」, 「끝없는 언어」, 「광기, 존재하지 않는 작품」, 「바깥의 사고」, 「어떤 환상적인 도서관」 등)에서 인류학적 휴머니즘의 사고를 구조주의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구조주의적 해결은 어떤 형식적 규칙이라는 그물속에서 인간을 규정하고 있다. 마법에서 깨어난 인간은 어떤 구조적 상징물일 뿐, 확고한 자아를 지닌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푸코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경험에서 출발한다. 즉 “진리를 조장하는 언어는 스스로의 고유한 물질적 특성을 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부분적 방법론을 발전시킨다. 이는 사고하는 주체를 배제시키고, (토론을 위한 말 기술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 주체를 대리하는 모든 것을 차단시킨다. 언어 행위의 효과를 역사로서의 현실속에서 재구성함으로써 푸코는 그가 기술하는 담화의 그물을 떠나지 않는다. 이때 실제로 이루어지는 토론은 너무나 외부적이고 피상적이다. 그렇기에 토론은 단어들, 사실들 그리고 여러 주체의 측면에서 전혀 인지될 수 없게 된다. 토론의 효과는 -어떤한 발설자도 토론이 지니는 익명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가령 “있다”, “라고 한다”, “그건 잘 알려져 있다” 등등과 같은 대화 형식속에서 드러난다.

 

푸코의 토론 분석이 뜻과 의미를 단호하게 망각하면, 그것은 그럴수록 텍스트와 담화의 기능을 더욱더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푸코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의 내용이 아니라, 담화의 행위 자체 내지는 토론한다는 사실 자체이다. 누가 어떤 측면에서 말하는가? 어떤 체제가 말을 꺼내게 하며, 말한 내용을 저장하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라. 17세기 이래로 모든 언어는 토론으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언어의 존재는 완전히 이른바 “재현”속에서 해결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생각해 보라. 언어는 한 주체의 사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다시 말해 사고의 재현으로 통용되어 왔다.

 

19세기에 이르러 어떤 반론이 출현하였는데, 이로써 고전 철학에서 완전히 잊고 있었던 언어의 거친 존재가 새롭게 비판되었다. 그것은 문헌학에서 출발했다. 푸코는 문헌학의 역사를 “어떤 (결코 토론될 수 없는 무엇이 토론의 과정을 거치는) 역설적 전개”로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언어의 존재 그리고 인간의 존재는 문헌학의 역사에서 배제되어 있다. 푸코의 진단에 의하면 인간은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어떤 우스꽝스러운 반존재속으로 퇴보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로써 우리는 푸코의 이론에는 보르헤스의 문헌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보르헤스는 거대한 구조주의 언어학적 유형 분석을 기괴한 방식으로 기술하면서,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는) 사고가 불가능하다는 가설을 문헌학적 연구 결과로 내세웠다. 이 연구 결과는 형식 규칙을 넘어서는 토론의 한계를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게 한다.

 

푸코의 문학의 개념 역시 이를 뜻하고 있다. 그는 문학을 하나의 침범, 다시 말해 토론의 한계성을 뛰어넘는 행위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문학은 신시대의 사고인 “나는 생각한다.”를 “나는 말한다.”로 대치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토론, 소통 그리고 의미를 뜻하는 게 아니라, 주체가 담화의 외부성으로 흩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문학은 푸코에 의하면 도중에서 말하기 행위의 벌거벗은 경험이 된다. 그러므로 글쓰기란 주체의 어떤 내면이 글로써 표현된 게 아니라, 내면의 겉모습 내지는 외피가 바깥으로 향해 전개 내지는 발전된 것에 불과하다. 이는 문학의 “비 내면적인 자기 관련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학은 푸코에 의하면 작가의 사상이나 의도가 깡그리 삭제된 텅빈 공간속에서의 의미심장한 유희로서 불현 듯 출현하는 무엇이다.

 

푸코는 문학을 “도서관”이라는 공간속에서 재구성하고 있다. 도서관은 말과 문장이 형성되는 곳이 아니라, 책들이 반복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 아닌가? 따라서 도서관은 부호와 인간의 저편에서 텍스트 및 담화가 중복되고 배가되는 장소로 판명된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의 어떤 형식 존재론만이 존재할 뿐이다. 문학은 아무런 발언도 의미도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하나의 존재일 뿐이라고 한다. 문학적 상상력은 이러한 조건하에서 다만 지식의 인내에서 탄생될 뿐이다. 가상적인 것의 환영은 바꾸어 쓴 기록물에 불과하다고 한다. 현대적 상상력의 기괴함은 인쇄된 것들의 흑과 백 사이에서 탄생한다. 푸코는 여기서 아주 세밀하게 “도서관에 대한 기발한 상상 (fantqstique de bibliothèque)”에 관해 말하고 있다. 문학은 도서관의 판타지이며, -마치 도서관의 텍스트들이 꿈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처럼- 문학은 열람실이다. 문학은 지식의 보관소와 구성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