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문학 이론

발터 벤야민의 "독일 비애극의 기원" (1)

필자 (匹子) 2020. 7. 6. 09:12

 

 

 

발터 벤야민 (1892 - 1940)의 "독일 비애극의 기원"의 전편은 1925년에 씌어졌고, 1928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그는 본서를 교수 자격 취득을 위해서 집필하였으나, 거부당했다. (책의 첫 부분인) 인식론적으로 핵심이 되는 “인식 비판의 서언”은 1916년 발표된 언어학에 관한 논문 「언어 전체에 관하여 그리고 인간의 언어에 관하여」를 바탕으로 인식 이론 및 비평의 어떤 이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결국 바로크의 비애극에 적용되고 있다.

 

비평이란 -벤야민의 규정에 의하면- 예술 작품의 역사철학 및 인식 이론의 차원을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작품에 대한 하나의 무효 선언과 같다. 왜냐하면 비평은 작품 분석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 다음과 같은 과업을 지니기 때문이다. 즉 비평은 예술 작품들이 역사적 사실 내용 (소재로서의 재료 등)을 어떻게 훌륭하게 철학적 진실 내용 (이념들 혹은 언어 형태들)으로 전환시키고 있는가를 밝혀주어야 할 뿐 아니라, 이를 인식 이론적으로 증명해내야 한다.

 

예술 작품의 역사적 부호는 오로지 변형된 형태 속에서 재현되어 나타난다. 벤야민은 연구의 대상을 “비극의 이념들”로 명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비판적 처리 방식은 비애극의 언어 이념을 정확히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여기서 벤야민이 채택한 방식은 -「일방통행로」 연작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바- 몽타주의 원칙이다. 몽타주의 원칙은 일직선상의 논의로부터 거리감을 취하고, 나아가 개별적 모티브들을 종합적으로 조망하게 한다.

 

다시 말해 개별적 모티브들은 텍스트의 (몽타주) 구성을 통해서  비애극의 “언어 이념”을 인식하게 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 이념은 비극의 내용도 아니요, 비애극의 해석도 아니다. 언어 이념은 언어적 의미 혹은 언어 내용과 동일한 게 아니라, 예술 작품 속에 내재해 있는 의미에 관한 언어 형식적 조건과 같다. 그것은 어떤 언어 형태 내에서 소재 내용을 실현하게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오랜 숙고 후에 무언가를 말하는 무엇이 아니라, 오로지 표현될 수 있는 언어 형태이다.

 

"독일 비애극의 기원"에 실린 두 개의 장 「비애극 (Trauerspiel)과 비극 (Tragödie)」, 「알레고리와 비애극」)에서는 슬픔의 유희로서의 비극의 이념이 개진되고 있다. “비극 (Tragödie)”의 대상은 신화이다. 비극적 작품에 특징적인 것은 희생의 이념이다. 비극의 영웅은 죄를 사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 대신 떠맡은 희생적 행동으로 신들의 권능을 약화시킨다. 이에 비하면 “비애극 (Trauerspiel)”의 대상은 역사이다. 다시 말해 역사의 세속화로 인하여 신이 의도했던 구원의 계획은 깡그리 사라진 세상이 비애극의 배경이다.

 

비애극의 주된 정조는 우울이다. 제반 비애극은 지상의 모든 제도가 아무런 위안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함몰되고 있다. 그리하여 비애극은 바로 그러한 상황속에서 초월을 확인하려고 애쓴다. 비애극은 슬픈 것 (자?)에 관한 슬픔의 유희이다. 비애극에서는 영웅이 없고 등장인물들의 상황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물화된 세계가 더 큰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공허한 세계는 생동하고 오직 슬픔의 시각 속에서 변모된다.

 

바로크 비애극의 정조를 대변하고 있는 우울한 자는 죽은 사물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한다. 말하자면 그는 죽은 사물을 명상 속에서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죽어 사라졌기 때문에) 가치 박탈된 사물을 파기시킬 수 있도록 작용하는 것은 알레고리이다.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은 알레고리 속에서는 어떤 임의적인 다른 무엇으로 파악될 수 있다. 문자에 의해서 명확히 드러나는 알레고리는 (파괴되어 사라지는) 물질적 세계의 부분품 내지는 편린을 구출해내는 하나의 언어 형태이다. 그것은 변모의 도식으로서 언어를 파괴한다.

 

다시 말해 알레고리는 언어의 전통적 의미 그리고 언어의 단순한 전달 등의 기능을 떨치게 하며, 언어에다 새로운 표현을 부여한다. 벤야민의 분석은 -비록 나중에 알브레히트 쉐네 (A. Schöne) 등의 바로크 문학 연구로써 타당성이 입증되었지만- 아도르노의 문학 이론에 이정표가 되었을 뿐 아니라, 폴 드만 (Paul de Man) 등의 “탈 구성의 이론”으로 발전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