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미하엘 크뤼거의 시 "모방시"

필자 (匹子) 2020. 9. 26. 07:09

 

미하엘 크뤼거는 1943년 비트겐도르프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을 베를린에서 보냈다. 아비투어를 마친 뒤에 출판업에 뛰어들었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런던에서 도서 상인으로 일하다. 크뤼거는 1965년에 뮌헨의 한저 출판사의 편집인이 되다. 그리하여 나중에 (1976년에) 한저 출판사에서 문학에 관한 칼럼을 쓰고 문예 잡지 『악첸테 (Akzente)』를 간행하다. 특히 클라우스 바겐바흐 출판사에서 간행된 잡지 『문어 (Tintenfisch)』는 크뤼거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크뤼거는 인간의 언어에 대해 회의하는 “사고 시 (Gedankenlyrik)”를 주로 집필하였다. 인용 시 「희망에 관하여」는 1978년 뮌헨에서 간행된 『디드로의 고양이 (Diderots Katze)』에 간행된 것이다.

 

 

   모방 시

                                                 미하엘 크뤼거

 

부호는 어떤 다른

언어를 말한다.

 

언어의 그럴듯한 권리라고

우리는 확고하게

이중적 의미를

신뢰했는데,

 

이제 모욕당한 채

침묵한다. 다시금

 

우리는 확고히 낯선

의자 위에 앉아 파헤치고

수많은 종이 속에서 패배한다. 많은 것들이

다시 각운 맞추어지고,

 

그것들은 몇 년 전에 행한

어떤 실언처럼 보인다.

 

   Nachgedicht von Michael Krüger: Die Zeichen sprechen/ eine andere Sprache:// das ist ihr gutes Recht./ Wir haben uns zu fest/ auf ihre Zweideutigkeit/ verlassen,// jetzt sind wir beleidigt/ und schweigsam. Schon wieder// sitzen wir fest/ auf fremden Stühlen und wühlen/ ergeben in Papierbergen. Vieles/ reimt sich wieder,// was uns vor ein paar Jahren/ wie ein Versprecher vorkam.

 

(질문) 

1. “부호는 어떤 다른/ 언어를 말한다.”를 설명해 보세요.

2. 제목과 주제의 관련성은 어떠합니까?

 

(해설)

“모방 시”라는 제목은 잘못 번역된 것인지 모릅니다. 시인은 “Nachgedicht”라는, 사전에도 없는 조어를 제목으로 붙였습니다. 그것은 “이후의 시”라고 번역될 수도 있지만, 필자는 시적 주제를 감안하여 “모방 시”라고 명명해 보았습니다. 시인은 인용 시에서 묻습니다. 시는 그 자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할 수 있습니까? 오늘날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이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시는 적어도 미하엘 크뤼거에게는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닙니다. “부호는 어떤 다른/ 언어를 말한다.” 최소한 한 가지 코드를 지니고 있는 한, 언어는 하나의 의미 내지 하나의 특정한 느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두 가지 의미가 주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언어의 권리로 이해되었다.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언어의 권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언어학자 소쉬르 (Saussure, 1857 - 1913)의 “기표 (시니피앙)” 그리고 “기의 (시니피에)”의 구분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제 더 이상 바르지 못합니다. 언어는 적어도 시로 표현될 때 신뢰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언어의 “이중적 의미”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습니다. “기표”와 “기의”의 구분은 시의 언어에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수많은 종이”를 사용하여, “각운”을 맞추면서 시작에 임하지만, 시인은 더 이상 승리감도 성취감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시는 궁극적으로 “몇 년 전에 행한 실언”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이 시에서 자신의 문학적 절망을 표현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