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6

서로박: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1) 학교란 무엇인가?: 친애하는 H, 학교는 배우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그것은 오늘날 주로 실용적 지식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사회의 일꾼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능력과 관계됩니다. 교사와 학생들은 무엇을 전공하는가에 따라 제각기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직업인으로서의 능력을 함양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감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용적 지식은 가령 교양과 지혜를 포괄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처음부터 피교육자의 개인적 자기 발전이라든가 미래 삶에 관한 자신의 고유한 행복과는 거리감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실용적 지식의 함양도 중요하지만, 교양과 지혜를 가꾸어나가는 노력 역시 좌시될 수 없습니다. 만약 배움에 대한 피교육자의 욕망이 학교에서 충족되지 않..

44 20후독문헌 2021.10.28

모제스 로젠크란츠, 혹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쓰기 (1)

“아내여, 내가 죽으면, 당신에게 유산으로 남길 게 있어. 그건 나의 발이야. 내 발은 아주 억세고 잘 생겼어. 동쪽 발이거든. 서유럽에서는 이런 발을 볼 수 없을 거야. 어릴 때는 맨발로 눈 덮인 들판을 뛰어다녔고, 수감되어 있을 때는 동토의 땅을 맨발로 걸어야 했어. 거기에는 자갈과 뾰족한 돌들이 많았지. 고문 형무소에서, 우라늄 탄광 속에서도 나의 발은 한 번도 다친 적이 없거든. 발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고난의 삶을 헤쳐 나오지 못했을 거야.” 모제스 로젠크란츠 (Moses Rosenkranz, 1904 - 2003)는 95세 생일에 그렇게 말했다. 로젠크란츠는 1904년 부코비나의 작은 마을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유대인의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났다. 소외감, 가난, 냉대 등은 그의 입을 굳게 다물게..

22 외국시 2021.10.21

서로박: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2)

6. 서울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골트문트는 사랑에 잘 끌리고, 외로움을 잘 타는 섬세한 청년이었습니다. 외로움은 그로 하여금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단조로운 삶은 그로 하여금 어디론가 멀리 방랑하게 했습니다. 한마디로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갈망과 방랑벽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유래한 것이었습니다. 골트문트의 이러한 특성은 주인공의 친구 나르치스에게는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나르치스는 진리와 사랑을 누구보다도 신에게서 발견하려고 처음부터 작심하고 있었지요. 그렇기에 그는 세속적 삶과 사랑의 유혹을 받지 않고, 수도원 속에서 안온한 마음으로 명상에 침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사람 모두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인간 삶의 깊은 뜻을 체득해 나간다는 사실입니다. 나..

43 20전독문헌 2021.08.01

서로박: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1)

1. 주인공 수도원 생활을 영위하다: 친애하는 L, 오늘은 헤르만 헤세 (1877 - 1962)의 소설,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설은 처음에는 「어느 우정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채 1930년 발표되었습니다. 작품은 중세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젊은 선생, 나르치스는 조숙한 학자로서, 계속하여 스스로 수도원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합니다. 그는 영리하고 냉정하지만, 인간미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에 비해 골트문트는 어리석고 실수를 저지르지만,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입니다. 친애하는 L,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가 어떠한 사람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골트문트는 타의에 의하여, 그러니까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서 수도원 생활을 영위해야 합니..

43 20전독문헌 2021.08.01

서로박: 헤세의 '데미안'

친애하는 J, 오늘은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1877 - 1962)의 교양소설 『데미안』에 관해서 언급할까 합니다. 부디 나의 글이 당신의 졸업논문 집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은 1919년에 발표되었는데, “어느 청춘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당시에 헤세는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이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에 비평계로부터 호평을 받게 되었고, 나중에 헤세는 이 작품으로 인하여 테오도르 폰타네 문학상을 받게 됩니다. 나중에 오토 플라케 Otto Flake라는 평론가는 문체를 분석하여, 이 작품이 헤르만 헤세에 의해서 집필되었다는 것을 밝혀내었습니다. 1920년에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이름으로 다시 간행되었습니다. 칼브에 있는 헤세박물관 『데..

43 20전독문헌 201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