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전독문헌

서로박: 헤세의 유리알 유희

필자 (匹子) 2018. 7. 26. 11:52

헤르만 헤세 (1877 - 1962)?유리알 유희. 루디 요제프 크네히트의 삶 그리고 크네히트가 남긴 글들에 관한 모든 서술의 시도?1943년에 발표되었습니다. 헤세의 마지막 작품인 ?유리알 유희?1930년에서 1942년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헤세 문학의 총결산인 셈입니다. 여기서 작가는 히틀러 시대의 경험 및 이에 대한 우려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고, 시대를 초월하는 정신적 공동체에 관한 기본적 사고를 피력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1932년 발표된 소설 동방의 여행에서 이미 약술된 바 있습니다. 소설은 유리알 유희의 내용 및 본질에 관한 언급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가상적인 연대기 서술자로서, 2200년경의 미래에 나타나게 될 카스탈리아 공동체에 관해 기술합니다.

 

유희알 유희는 한마디로 인류 문화의 모든 내용과 가치를 지닌 유희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희의 이념은 고대 중국, 고대 그리스 로마, 그노시스 주의자 및 중세 스콜라주의 내지 인문주의에서 영향을 끼치던 것입니다. 가령 주인공 크네히트는 피타고라스, 라이프니츠, 헤겔 그리고 노발리스를 선구자로 지목합니다. 유리알 유희는 이른바 인류의 통합과 화해를 위한 정신적 욕구 내지 영원한 이념으로 구현됩니다. 이러한 유희는 19세기에서 20세기 사이에 형성되었는데, “이 시기에 정신은 전대미문의,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너무나 커다란 자유를 구가하고 있었으며 (...), 그렇기 때문에 유리알 유희에 대한 어떤 진정한 새로운 권위라든가 합법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20세기의 몰락은 그렇지만 인간으로 하여금 본질적 자유를 누리게 하는 어떤 금욕적인 영웅적 삶의 형태가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에 관한 사상은 양심적인 학자, 음악 연구가 등에 의해서 전해져서 동방 여행자의 동맹을 결성합니다. 바로 이들이 유리알 유희 공동체를 받아들여, 인간의 오만 및 유희의 기술적 훈련을 떨쳐버리게 합니다. 이곳에서 탁월한 재능을 지닌 영재들이 엄격한 방법으로 선정되어 교육받고, 그들로 하여금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도록, 카스탈리엔 교육 주에서 수련을 쌓게 합니다.

 

 

 

2은 석사 루디 요제프 크네히트의 삶에 관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200년에 교육 주는 파괴될 수 없을 정도로 번창해 있습니다. 크네히트는 여기서 충실히 교육받고, 가장 높은 단계까지 올라가, 마침내 유리알 유희의 장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는 12살에 베로핑어의 라틴어 학교에 다녔고, 음악적 재능으로 인하여, 에쉬홀츠의 영재 학교에 다닙니다. 그곳에서 크네히트는 음악 연주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처음에는 교육주의 이상에 대해 회의감을 표명합니다. 훌륭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주인공은 발트첼이라는 유리알 유희자들의 가장 훌륭한 발트첼 영재 대학교에 예속됩니다. 그는 선택된 자들의 서클에 포함된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저 에쉬홀츠에서 사귀었던 친구 데지그노리와의 이별만이 못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주인공 크네히트는 1년에 한번씩 자신의 삶의 행적을 보고합니다. 소설의 제 3장 그리고 마지막 장은 주인공의 보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보고는 소설 속에 연속적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크네히트의 기록을 통해서 소설의 핵심적 주제, 교사와 학생의 관계, 공동체를 위한 희생 등을 첨가시킵니다. 4장에서는 주인공 크네히트가 18세기의 신학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 장은 헤세가 죽은 뒤에 1965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이제 크네히트는 34세로서 카스탈리엔 종파의 일원이 됩니다. 두 번에 걸쳐 그는 마리아펠스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을 찾습니다. 여기서 (헤세가 존경했던 역사 신학자, 야콥 부르크하르트 Jakob Burckhardt를 연상시키는) 역사가 페터 야코부스와 만나 우정을 쌓게 됩니다. 야코부스를 통하여 카스탈리아의 문화가 다만 일시적인, 기독교 서양 문화의 이후 형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크네히트가 나이 40이 되었을 때, 장인 루디로 선출됩니다. 그는 유리알 유희자들의 엘리트 그룹을 동료로 사귀게 되었는데, 이들을 통해서 카스탈리아 교육주를 위협하는 요소를 접합니다. 관료주의적 자만심, 능력을 무한대로 과시하려는 태도, 삶으로부터 무기력하게 폐쇄된 생활 방식 등이 그것들이었습니다. 삶의 정점에 이르러 주인공은 다음의 사실을 깨닫습니다. 즉 카스탈리아 그리고 유리알 유희가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게 바로 마지막까지 측정된 가능성을 위한 자기실현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일전에 주인공은 야코부스를 통해서 인간 삶에 있어서 변모와 변신만이 인간에게 유일한 지속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특권을 저버리고 교육 주 밖에 있는 학교의 교사로 일할 것을 청원합니다. 그러나 그의 청원은 안타깝게도 거절됩니다. 이때 그는 옛 친구 데지그노리를 만나게 되고, 그의 아들 티토의 선생으로 일하게 됩니다.

 

크네히트의 그 다음 행적은 그의 제자에 의해서 기술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벨푼트라는 지역에서 티토를 가르치며 하루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냅니다. 벨푼트는 알프스 산맥 사이에 있는 어느 호수가의 지명입니다. (실제로 헤세는 알프스 산맥의 호숫가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날 잠을 설친 주인공은 호숫가에서 자신의 제자 티토를 만납니다. 티토는 여행으로 인해 몸이 지친 선생에게 수영을 가르쳐달라고 요구합니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제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반쯤 얼어붙은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주인공 크네히트는 이때 익사하고 맙니다. 제자 티토는 자신이 선생을 죽게 했다고 자학하게 됩니다. 티토는 자신의 이러한 잘못이 나중에는 지금까지 스스로 요구한 것보다도 더 큰 무엇을 요구하리라고 예견합니다.